[AI·tech=인공지능 따라잡기]
- AI는 모든 부문에서 ‘만능’ 될 수 없어…확실한 목표에 기반해 기술 개발 시작해야

[AI 따라잡기] ‘올바른 문제 정의’가 AI 활용의 첫걸음
[이종석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노벨상 수상자이며 명실 공히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라고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3단계를 제시했다.


첫째, 문제를 쓴다. 둘째, 열심히 생각한다. 셋째, 답을 쓴다. 파인만 알고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이 세 단계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절대로 오류를 찾을 수 없는 알고리즘인 것은 자명하다. 특히 첫째 단계는 문제 정의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정확히 정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열심히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답을 제시한다고 한들 그 답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할 때 파인만 알고리즘의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으로 AI를 최적화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다. ‘최적’의 단어 그대로의 의미는 가장 알맞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바둑 AI는 대국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알맞은 한 수를 결정하도록 설계돼 있다. 음성 인식 AI는 소리의 형태로 주어진 음성 신호와 가장 알맞은 문자를 산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참고로 수학으로 표현하는 최적화 문제에서는 이러한 가장 알맞음의 대상을 가리켜 목적함수라고 부르고 목적함수는 그 함숫값을 결정하는 여러 결정변수라고 정의된다.



‘목적함수’와 ‘결정변수’가 핵심
제조 현장의 AI 적용에도 최적이 필요한 대상을 명확히 정의하면 올바른 문제를 정의하기 수월하다. 제품의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공정 조건을 찾는 것,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며 동시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설비의 제어 조건을 찾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생산량 그리고 품질이 목적함수이고 공정 조건과 제어 조건이 결정변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를 시작한 이후 제조업에서는 항상 고민해 왔던 질문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해당 도메인의 전문 지식에 기반해 경험적으로 해법을 찾아왔지만 AI의 도입에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여러 학습 알고리즘(learning algorithms)과 최적화 알고리즘(optimization algorithms)을 활용해 기존의 경험적 최적화보다 더 나은 해법을 발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파인만 알고리즘의 둘째 단계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화학 공정은 통상 반응과 정제의 연속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의 어느 화학 공장의 모습은 최대한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 최대한 불순물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한 관련 전공자들의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완성된 산출물일 것이다. 이미 상당히 최적에 가까운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최적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데이터로부터 그 해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AI의 활용이다. 실제로 한화솔루션은 케미칼 제품의 생산량 증대를 위해 공정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당 공정에 특화된 AI을 개발함으로써 기존의 설비 변경 없이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공정 조건을 산출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올바른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라기보다 기존에 늘 고민해 왔던 문제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는 제조 현장에 성공적으로 AI를를 도입한 기업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이 지정하는 ‘등대 공장’에 선정됐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고 쇳물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냉각시켜 슬래브라고 불리는 두꺼운 강을 만들며 그것을 눌러 얇게 편 강판을 만든 후 그 위에 다른 금속을 도금하는 제선·제강·연주·압연·도금에 이르기까지 포스코는 전 공정의 곳곳에 AI를 구현해 활용하고 있다. 강판 위에 목표하는 용융 아연을 정밀하게 부착할 수 있는 AI 기반의 초정밀 도금량 제어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된 바 있다.
[AI 따라잡기] ‘올바른 문제 정의’가 AI 활용의 첫걸음


보텀업으로 구현되는 게 데이터 플랫폼
도금 공정은 코일의 형태로 감긴 얇은 강판을 풀어 표면을 닦고 열처리를 하고 아연이 녹아 있는 욕조를 통과시킨 후 냉각과 추가적인 표면 처리를 한 후 강판을 다시 코일의 형태로 감아 최종 제품을 산출하는 공정이다.


강판이 도금 욕조를 통과함으로써 강판의 표면에 액체 상태의 용융 아연이 부착되는데 에어 나이프(air knife)의 압력(강판의 표면에 적용되는 바람의 세기) 그리고 에어 나이프와 강판 사이의 간격으로 부착하고자 하는 도금량을 제어한다.


이때 정확한 도금량은 아연이 완전히 응고된 후에야 측정할 수 있어 실시간으로 목표하는 도금량을 달성하기 위해 에어 나이프를 제어하는 것이 그동안의 난제였다. 참고로 제어 시점에서 품질 특성을 측정하기까지 시간 지연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목표하는 품질을 달성하기 위한 실시간 제어가 어려운 것은 여느 제조 현장에서도 공통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도금량을 측정하기까지 시간 지연에 기인해 기존의 피드백 수동 조업으로는 코일의 선단부에 도금 편차가 크게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공정 데이터를 활용해 도금량을 예측할 수 있는 신경망 모형을 학습시킨다. 학습된 신경망 모형을 활용함으로써 실제 도금량을 측정하기 이전에 에어 나이프의 어떠한 조건에서 목표하는 도금량을 달성할 수 있는지 예측해 선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다.


해당 알고리즘의 적용으로 기존 수동 조업 시에는 편면 기준 ㎡당 도금량 편차가 최대 7g이었다. 하지만 AI 기반 자동 조업 시에는 0.5g으로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제품의 품질은 더 좋아지게 되고 아연을 절약함으로써 생산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생겼다.


AI의 도입 이전에도 포스코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해왔다. 여기서 우리는 도금량 제어 문제가 AI 도입을 위한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예전부터 고민해 왔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AI 활용에 의한 큰 효과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올바르고 정확하게 정의함으로써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그리고 AI에 의한 미래 변화의 거센 물결에서 파인만 알고리즘의 첫 단계를 간과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빅데이터·머신러닝·AI 등의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것 자체에 매몰돼 문제를 정의하는 단계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하고 빠르게 둘째 단계로 넘어가는 형국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조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AI 탑재 범용 솔루션의 개발을 들 수 있다.


앞선 성공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제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는 AI 알고리즘들은 해당 문제에 특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최하위의 여러 공정단계에서 어떤 공통 문제를 도출하고 해법을 찾음으로써 범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출시된 국내외 제조 산업용 솔루션들을 살펴보면, 그리고 정부 주도의 관련 사업을 살펴보면 문제 정의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실패한 사례가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의 프레딕스가 아닐까 한다. 유사한 예로 데이터 플랫폼을 들 수 있다. 거대한 데이터 저장소를 만들고 그로부터 데이터 사용자가 필요한 데이터를 가져가 AI 적용 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논리적으로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다. 데이터는 많이 모을수록 좋은 것은 맞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각 응용 단에서 필요한 형태로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정보와 형태를 정의하는 것은 데이터가 활용되는 각각의 응용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의하고 해법을 찾아 가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톱다운의 형식이 아니라 보텀업의 형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 데이터 플랫폼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2호(2020.08.31 ~ 2020.09.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