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과거 삼성전자·SK하이닉스 특허분쟁 막아준 ‘크로스 라이선스’ 주목
ITC 최종 판결 임박한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대첩’…최후 승자는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1년 5개월이 넘게 이어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10월 5일로 예정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이번 판결 결과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양측의 합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지난 2월 미국 ITC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결정으로 LG화학의 손을 들어준 이후 두 회사 간 배상금 협의가 시작됐지만 합의가 성사됐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 17개월째 이어진 진실 공방…곧 결판

인력 유출 문제로 시작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갈등은 특허 분쟁으로 번졌다. 양 사가 벌이는 법적 다툼의 핵심은 2019년 4월 LG화학이 미국 ITC에 제기한 영업 비밀 침해 건이다. LG화학은 2017년부터 시작된 SK이노베이션의 자사 인력 빼가기로 인해 배터리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LG화학은 2년간 자사의 전지사업본부의 핵심 인력 76명을 SK이노베이션이 채용했고 이 중 LG화학이 폭스바겐과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 인력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배터리 핵심 인력들을 빼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도 즉각 반박하며 법적 대응으로 맞불을 놓았다. SK이노베이션 주장의 핵심은 두 회사의 배터리 기술과 생산 방식이 다르고 이미 핵심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어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 비밀이 필요하지 않고 모두 자발적인 이직이라고 밝히고 있다.
ITC 최종 판결 임박한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대첩’…최후 승자는
그동안 양 사는 배터리 소송 관련 변곡점에서 지속적인 난타전을 벌여 왔다. 한쪽이 성명문을 내면 거기에 대해 상대방의 반박에 다시 재반박이 이어지는 식이었다. 이들의 날선 공방전은 ITC의 최종 판결을 약 한 달 앞두고 더욱 과열됐다.

9월에는 1년 전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영업 비밀 침해로 제소당하고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제기한 ‘994 특허’를 가지고 SK이노베이션의 이 특허가 LG화학의 선행 기술인지 아닌지에 대해 반박·재반박을 펼쳤다.

이들은 협상을 통한 합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하지만 최종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쟁에 이미 4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 대화를 위해 양 사 최고경영자(CEO)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비공식 회동을 가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 SK 최종 패소 땐 3조 투자한 미국 사업 차질

‘제2의 반도체’로 불리며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는 전기차 배터리를 두고 선두 업체 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끼리 공방전을 벌여 중국·일본 등 경쟁국이 수혜를 누리는 게 아니냐는 국익 훼손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올해 850만 대, 2025년 2200만 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5년 뒤 182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1위, SK이노베이션은 6위를 차지하고 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의 배터리 3사가 독보적인 성장세를 나타내며 올해 세계 전기차 시장의 35%를 차지했다. 경쟁사인 중국 CATL과 일본 파나소닉의 점유율은 대폭 하락한 가운데 한·중·일 배터리 삼국지에서 현재 한국이 1위다.

중국은 4사 32.9% 점유율로 바짝 뒤를 추격하고 있다. 소재 원천 기술 분야에서 3국이 박빙을 이루는 만큼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인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소송전이 장기화하면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ITC 최종 판결 임박한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대첩’…최후 승자는
전기차 배터리 등 2차전지 사업은 두 회사의 주력 사업이자 미래 먹거리인 만큼 쉽게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17개월째 이어진 배터리 소송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데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추가 법적 대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도 수년간 소송전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삼성전자와 애플의 ‘3G 이동통신 특허 침해 소송’도 7년을 끌어오다 2018년 합의로 마무리된 바 있다.

올해 초 ITC가 SK이노베이션에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SK이노베이션은 다소 불리한 상황이다. 최종 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는 결과가 나오면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서 배터리 제품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공격적으로 관련 투자를 단행하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의 북미 시장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 당사국인 미국 조지아 주에 총 3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1·2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폭스바겐과 포드에 공급할 예정인데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포드와 GM, 독일의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ITC 최종 판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폭스바겐과 포드는 2022년부터 각각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ID.4’, 트럭 ‘F150’ 등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패소가 확정되면 폭스바겐과 포드의 전기차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 전기차 배터리팩은 각 차량에 맞게 설계돼 인증 전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배터리 공급 업체를 변경하기 어렵다.

이에 지난 7월 폭스바겐과 포드는 한국의 배터리 제조사들 간 법적 분쟁이 주요 전기차 부품 공급 중단과 미국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을 ITC에 전달한 바 있다. 반면 LG화학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를 건설하는 GM은 지난 4월 “지식재산·영업비밀이 철저히 보호돼야 한다”며 LG화학의 편을 들었다.

물론 조기 패소 결정 이후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2공장 추가 투자 등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강조하고 SK이노베이션의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과 포드가 ITC에 SK이노베이션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국면 전환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 사용료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2년 SK는 SK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발생한 삼성전자와의 특허권 문제를 크로스 라이선스(상호 특허 협력)를 통해 해결한 바 있다. 기술 사용료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해 불필요한 소모전을 막는 용도다. 양측은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로 특허에 따른 잠재적인 분쟁 가능성을 예방하고 신기술 개발과 기술 혁신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5호(2020.09.19 ~ 2020.09.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