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FOCUS]
-그룹 계열사 인사 마무리…손보 등 금융사 실적 탄탄히 유지하고 미래 동력 찾아야

속도 내는 ‘뉴 DB그룹’…100일 맞는 김남호 회장의 과제는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김남호 회장이 DB그룹 회장에 취임하며 2세 경영의 막을 올린 지 100일이 다가오고 있다. DB그룹은 제조와 금융을 아우르던 사업 모델에서 금융업 중심으로 변신하면서 성장을 위한 활로를 모색해 왔다. 재계에선 김 회장이 오랜 기간 후계 수업을 받으며 구상했던 ‘뉴 DB그룹’의 청사진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DB그룹은 7월 1일 이근영 회장이 물러나고 김 회장이 신임 그룹 회장에 선임됐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은 2021년 초 정기 주주 총회를 거쳐 그룹 제조서비스 부문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DB아이엔씨(DB Inc)의 이사회 의장도 맡을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날 자신의 경영 원칙으로 ‘경청과 소통’을 제시했다. 김 회장이 5년 전부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자기소개 화면에 띄운 단어다. 김 회장은 “선배 세대의 경험과 지혜에 귀 기울이는 한편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임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일을 잘하는 임직원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각 사 경영진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상품 기획·생산·판매·고객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컨버전스 구축과 ‘온택트’ 사업 역량을 강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온택트는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에 인터넷을 통한 연결을 의미하는 ‘온’을 결합한 합성어다.

김 회장은 취임식 직후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열고 향후 전략 방안 등을 검토했다. 축하와 덕담을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DB그룹 관계자는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에 속도를 내 달라는 주문했다”고 말했다.
속도 내는 ‘뉴 DB그룹’…100일 맞는 김남호 회장의 과제는
◆손해보험 중심 금융업에서 매출 90% 올려


김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그룹 지분을 승계해 DB손해보험과 DB아이엔씨 지분 9.01%와 16.83%를 각각 보유한 최대 주주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DB금융투자·DB캐피탈 등 금융 계열사를,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DB메탈 등 제조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DB그룹은 김 회장의 아버지인 김준기 전 회장이 1969년 설립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철강·소재·농업·물류·금융 등 국가 기간산업에 잇따라 투자해 성장 발판을 다졌다. 창업 30년 만인 2000년엔 1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DB그룹은 1997년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DB하이텍을 설립했고 2007년 동부제철의 당진 공장을 세우며 제조업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던 두 시기에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채권단과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압박에 DB그룹은 2014년부터 동부고속·제철·건설·팜한농·대우전자 등 주요 계열사들을 매각해야만 했다.

DB그룹은 이 같은 구조 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금융그룹’으로 변신했다. DB손해보험·DB생명·DB금융투자 등 금융 계열사가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 부문을 포함한 자산 규모는 66조원, 매출은 21조원으로 재계 30위권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김 회장은 기존 DB그룹의 경쟁력을 한층 키우면서도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40대의 김 회장이 DB그룹의 수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란 안팎의 기대담이 크다.

김 회장은 취임하면서 “경영자로서 내 꿈은 DB를 어떠한 환경 변화도 헤쳐 나가고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며 “두려움을 뒤로하고 회장을 받아들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주들을 대표해 앞장서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한 책임감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룹 경영에 오랜 기간 참여해 온 만큼 김 회장은 취임 후 비교적 빠르게 DB그룹을 ‘김남호 체제’로 바꿔 가고 있다. ‘사장단 인사’를 통해서다. DB 사장단 인사의 특징은 승진 대상자 대부분이 기존 계열사 소속을 유지한 채 직급이 올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DB그룹은 추후 예정된 조직 개편에서 급격한 세대교체보다 조직 안정에 기반한 변화를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DB그룹은 7월 13일 부회장과 사장 등 경영진 인사를 했다. DB그룹은 구교형 그룹 경영기획본부장(사장)을 비롯해 이성택 DB금융연구소 사장, 김정남 DB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장,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 사장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또 김경덕 DB메탈 부사장은 대표이사 사장으로, 정경수 DB손해보험 자산운용부문 부사장은 자산운용부문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정인환 DB아이엔씨 부동산사업부 사장은 DB월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동했다. 또한 창업자 김 전 회장과 그룹을 이끌어 왔던 최연희 DB아이엔씨 회장과 윤대근 금융연구소 회장은 그동안 그룹 회장직을 맡아 온 이근영 회장의 퇴임과 함께 용퇴하며 후진에게 길을 터줬다.

DB그룹은 9월 1일 김영만 DB손해보험 부사장을 DB생명보험 대표이사 사장으로, 윤재인 DB캐피탈 사장을 DB저축은행 대표이사 사장으로, 이명기 DB금융투자 상무를 DB캐피탈 대표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속도 내는 ‘뉴 DB그룹’…100일 맞는 김남호 회장의 과제는
◆안정적 세대교체 이루는 중


김남호 체제가 순항하기 위해선 DB손해보험·DB금융투자 등 주요 금융 계열사들이 꾸준히 실적을 내줘야 한다. 실제로 DB그룹의 외형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알짜 금융사’들은 안정적인 모습이다. 올 1분기 DB그룹 금융 부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매출 5조8000억원, 순이익 1600억원을 올렸다. 금융 계열사 중 간판 격인 DB손해보험은 국내 손해보험 시장 ‘빅4’ 중 하나다. 해마다 3000억~6000억원대의 순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해 사이판에 본사를 둔 태평양 지역 중견 보험사 CIC를 인수하는 등 해외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다만 보험업의 업황이 좋은 편은 아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DB손해보험은 운전자보험의 전통 강자로 1위를 유지하며 잘 운영되고 있다”면서도 “손보업계 전체가 초저금리로 운용 자산 이익률이 하락했고 정비 수가 인상과 의료 이용량 증가로 실손·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오르는데 감독 당국의 통제로 보험료 인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보기술(IT)·테크핀 업체가 온라인 플랫폼 영향력과 편리성으로 금융업의 경계를 허물면서 고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DB그룹은 다른 종합 금융사들과 달리 제1금융업이 없고 보험 위주 사업 구조여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의 극적인 성장이 힘들기 때문에 제조 계열사를 중심으로 새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이 DB하이텍에 주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DB하이텍은 2014년부터 영업이익 기준 흑자 전환해 2017년 1432억원, 2019년 1813억원으로 규모가 늘었다.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발달로 아날로그 반도체 수요가 늘어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업체들의 8인치 웨이퍼 수주가 증가한 덕분이다. 재계에선 DB하이텍 출신인 구교형 경영기획본부장과 최창식 DB하이텍 대표이사가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유가 DB하이텍의 위상을 높여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돋보기]김남호 DB그룹 회장은…
김남호 DB그룹 회장은 2009년부터 경영에 참여해 DB그룹의 중·장기 전략 계획을 수립해 왔다. 1975년생으로 창업자 김준기 전 회장의 장남인 그는 경기고와 미국 웨스트민스터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서 일하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겸손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동부제철 아산만관리팀 차장으로 입사해 동부제철 인사팀 부장, 동부팜한농 부장을 거쳤다. 2015년 동부금융연구소에서 금융전략실장으로 일하면서 금융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실무 경험을 쌓았다. DB손해보험 부사장을 거쳐 2020년 7월 1일 DB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97호(2020.09.26 ~ 2020.10.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