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허물어지기 시작한 디파이와 시파이의 경계…‘리스크와 우려’는 파트너십으로 해결
막 오른 ‘디지털 자본 시장 3.0’ 시대 [비트코인 A to Z]
[한경비즈니스 칼럼=김백겸 해시드 선임심사역] 블록체인업계에서는 ‘웹 3.0’이라는 단어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웹 3.0은 개별 사용자에게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화된 웹’을 의미한다. 웹 3.0에서는 개인 맞춤형 인터넷이 각자에게 제공되고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데이터’가 가지는 힘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핵심에는 블록체인 기술이 있다.


그러면 자본 시장은 어떨까. 전 세계를 강타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했고 어느덧 디지털 자산을 다루는 자본 시장의 거래 규모도 일일 50조원이 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신음하며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시점에 다시 한 번 디지털 자본 시장 진화의 변곡점이 되는 주요 시기를 짚어 보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예측해 본다.


1.0 시대를 연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

디지털 자본 시장 1.0은 2017년 암호화폐 공개(ICO) 붐의 출현과 몰락까지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7월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 거래소가 개장한 이후 코인베이스와 코빗 등 몇몇 초창기 거래소가 개인들에게 법정화폐와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했다. 하지만 당시 디지털 자산 거래는 완전히 새롭게 태동한 분야였던 만큼 기존 은행들의 안정적인 지원을 받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고 필연적으로 테더와 같은 스테이블 코인이 등장했다.


다양한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규제가 확정되지 않고 시장 유동성 또한 확보되지 않아 기관의 진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소 거래소들이 난립하면서 보안이 취약한 거래소들을 노린 해킹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던 중 2017년부터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쏟아지며 ICO 붐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번졌고 신규 투자자들이 폭발적으로 유입되며 디지털 자본 시장의 첫째 황금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시장은 아직 이러한 성장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되지 못했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당시의 버블은 2018년 초 시장의 폭락과 함께 마무리됐다.


디지털 자본 시장 2.0은 시장의 폭락 이후 현재까지다. 2018년부터 디지털 자산 거래 시장은 소규모 개인 투자자 위주에서 기관의 접근이 가능한 시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불과 2년 사이 디지털 파생 상품 거래량은 25배 이상 증가한 반면 매도 호가의 스프레드는 10배 정도 감소하며 거래가 더 용이해졌다. 비트코인을 기축통화로 삼고 비트코인의 등락에 함께 흔들리며 위태로워만 보이던 디지털 자산 시장은 어느덧 안정성을 찾으며 성숙해지고 있다.


좀 구체적으로 보면 대출 시장이 등장했다. 일반 유저 대상으로는 블록파이·블록체인닷컴·셀시우스 등의 서비스가 등장했고 기관들을 위한 제네시스 트레이딩 같은 서비스도 생겼다. 현재 총 3조원이 넘는 규모의 대출 자원이 제공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기축화를 통한 시장 안정화가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거래 페어가 비트코인 가격 기반으로 환산되던 초기에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등락할 때마다 다른 자산에까지 불필요한 가격 혼란과 유동성 증발이 야기됐다. 이제 USDT를 필두로 한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량은 10배 이상 늘어 20조원이 넘었다.


기관 대상 서비스가 출현했다. 커스터디, 대출·대여, 전자 거래, 컴플라이언스, 보험 등 기존의 전통적인 자본 시장에서 존재했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 자본 시장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들이 출시되고 있고 기업 간 인수 혹은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기관을 위한 장외거래(OTC) 서비스들은 완전히 자동화된 전자 거래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파생 상품은 현물 시장의 유동성을 추월했다. 파생 상품 시장은 현물 시장의 4배 이상 규모에 달하는 약 30조원 이상의 거래량을 보이고 있다. 특히 비트맥스 거래소에서 처음 출시한 퍼페추얼 콘트랙트(perpetual contract) 트레이딩은 높은 자본 효율을 보이며 빠르게 성장했고 다른 거래소에서도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막 오른 ‘디지털 자본 시장 3.0’ 시대 [비트코인 A to Z]
1년 새 예치금 20배 성장한 디파이 시장


디지털 자본 시장 3.0은 디파이(DeFi : 탈중앙화 금융)와 시파이(CeFi : 중앙화 금융)의 결합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디지털 자산 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디파이였다. 디파이 서비스에 모인 전체 예치금은 1년 동안 20배 이상 늘어나 현재 약 12조원에 달하고 있다. 탈중앙화 철학이 실제 서비스에서 구현되며 사용자 스스로 서비스에 대한 오너십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우리가 지금까지 꿈꿔 온 ‘웹 3.0’에 가장 근접한 형태를 갖춘 서비스가 되고 있다. 디파이와 시파이의 결합은 기관의 자본을 보다 ‘크립토 네이티브’한 방식으로 사용자들에게 나누게 될 것이다.


먼저 자동화 마켓 메이커(AMM)의 기존 거래소 유동성 추월했다. 기존까지는 중앙화된 거래소에서 벌어지는 거래량이 압도적이었지만 이제는 AMM를 위시한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 발생하는 거래량이 기존의 거래소를 압도하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도 이제 디파이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디파이의 우월한 사용자 경험도 눈에 띈다. 커스터디가 필요 없는 디파이 서비스는 기존의 중앙화된 서비스들보다 우월한 보안성을 제공한다. 이는 곧 사용자들이 중개자 없이도 직접 금융 시장 자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디파이 서비스는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전통적인 금융 플랫폼의 애플리케이션(앱)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기발한 설계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마치 재미있는 소셜 앱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우월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중앙화 거래소와 디파이 서비스가 결합하고 있다. 기존 거래소가 디파이에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은 거래소에서의 자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디파이 서비스를 직접 이용하는 것에 비해 낮은 수수료, 보다 자유로운 유동성, 추가적인 마진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아직은 중앙화 서비스의 경험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유치하고 이들이 거래소 계정을 통해 온체인 프로토콜에 접속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디파이와 시파이의 결합이 발생하고 있다. 커스터디 없는 트레이딩이 보편화되고 있다.


바이낸스에서 제공하는 바이낸스 체인, FTX에서 운영하는 탈중앙화 거래소 세럼 등의 사례는 결국 커스터디 없는 거래 채널을 제공해 주는 것이 기존 거래소가 나아갈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거래소에서 플러그인 형태로 커스터디 없이 거래할 수 있게 해 주는 아르웬이나 디파이 자본을 거래소에서 온체인으로 정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해시플로 같은 서비스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다. 반대로 탈중앙화 거래소에서도 빠르게 기존 거래소의 서비스 수준을 따라잡고 있다. 디와이디엑스는 이더리움의 롤업(rollup) 기술을 활용해 가스 비용을 줄이고 거래 속도를 대폭 향상시키고 있다.


기관을 대상으로 한 디파이 서비스도 출시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기관이 디파이에 접근하는 것에 여러 장애물이 있다. 디파이 서비스를 통해 발생한 수익의 회계 처리 방법도 불분명하고 규제의 불확실성에서 발생하는 법률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하지만 여러 디파이 프로젝트들이 기관들을 위해 기존 금융과 유사한 방식으로 디파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개척하고 있다. 어쩌면 법률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참여자들의 신분 증명(KYC)이 완료된 유동성 풀(pool)이 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기관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탈중앙화된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넥서스 뮤추얼과 같은 프로젝트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자본 시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그 변화 속도는 전통 금융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어제까지 존재하던 리스크와 우려가 오늘 출시되는 프로젝트와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완되고 있다. 디파이와 시파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구현되는 새로운 자본 시장의 출현, ‘디지털 자본 시장 3.0’ 시대의 가능성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