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적자 김 지사, 멀어진 대권 꿈
이낙연, 친문과 전략적 동맹 끝까지 갈까
이 지사, 이슈파이팅으로 ‘언더독’전략 통할까


[홍영식의 정치판] 김경수 경남지사의 2심 유죄 선고는 더불어민주당 내 대권 경쟁에 여러 의미를 던져준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김 지사는 대권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분위기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 9일 실시된다. 보통 대선 주자들은 선거 1년 앞둔 시점을 레이스 시작 신호탄으로 여기고 신발끈을 조여매기 시작한다. 그 때까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지 못하면 김 지사는 대선 레이스에 올라타기 힘든다. 1심 판결 뒤 2심 판결까지 1년 반 넘게 걸린 점을 감안하면 대법원 판결까지 6개월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 2심에서 모두 유죄를 받은 만큼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지사가 사실상 대권 꿈에서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선주자로 꼽혀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낙마에 이은 유력 대선 주자 한 명을 또 잃었다는 것이 민주당의 분위기다. 민주당에 남은 유력후보로는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양강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가 변수로 남아있다. 유력 대선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야 주목도를 높여 흥행을 가져올 수 있다. 남은 대선 기간 약 1년 4개월 간 유력 주자 두 세명 만으로 끌고 간다면 국민에게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대선 레이스 도중 유력 후보 한 명이라고 예상치 못한 상처를 입는다면 민주당으로선 큰 손실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대선 경선 흥행을 위해서라도, 대세론을 형성한 주자가 혹여라도 중도에 낙마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후보자들이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벌이는 것이 당으로선 바람직한데, 유력 후보들의 잇단 탈락은 당으로선 큰 내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김 지사의 유죄 판결로 최대 관심은 친문(친문재인)계의 선택이다. 김 지사는 친문 적자(嫡子)로 꼽혀왔다.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 친문계가 아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이 자기파 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대선 구도를 흔드는 형국은 아이러니다. 이 때문에 이 대표와 이 지사가 친문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대선 경선에서 최대 관건이다. 좋든 싫든 친문을 업고 갈 수 밖에 없는 국면이다.

이 대표는 친문과의 한 배를 타는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8월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것 부터 그렇다. 친문 주류 쪽에서 이 대표의 대표 경선 출마를 강력하게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대표직 수행을 통해 이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얼마나 잘 뒷받침할 것인지 시험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한 친문 중진 의원은 “이 대표의 출마는 친문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지난 9월 23일 한국 방송기자 클럽 토론회 발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표는 이른바 ‘문빠’들로 표현되는 강성 친문 지지자들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강성 지지라고 해서 특별한 분들이 아니라 상식적인 분이라고 볼 수 있다”며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에너지원”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3월 민주당 대선 경선 승리 직후 ‘문빠’들의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을 더 이렇게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친문과 이 대표의 동맹이 끝까지 지속될 지는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과 지지율에 달렸다. 호남을 제외하고 당내 기반이 그리 강하지 않은 이 대표가 친문과 거리를 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으나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폭이 클 경우 달리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 대표가 친문 지지보다 국민들의 여론 지지율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친문과 선을 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 정권 말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당의 차기 주자들이 청와대에 반기를 든 사례들은 많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때 문 대통령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면서 친문과 악연을 맺었다. 소수파인 이 지사의 전략은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이다. 이슈파이팅이다. 이 대표에 비해 열세이던 지지율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국면을 만든 것도 이 전략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론 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연구소장은 “대선 주자가 주목도를 높이는 방법은 이슈 파이팅”이라며 “이 지사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현안에 대해 맨 앞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고, 그런 점이 젊은 세대들을 열광하게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슈파이팅으로 여론을 선점해 지지율을 끌어 올려 대세론에 올라타 국민 여론을 무기로 경선에서 불리한 구도를 깨겠다는 전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더독(약자가 유권자들의 동정으로 지지도가 올라가는 현상)’전략과 비슷하다. 이 지사 측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이 지사의 약점인 친문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지지율이 깡패”라며 “친문도 대선 본선 경쟁력이 높은 사람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친문의 생각은 어떨까. 경기 지역의 한 친문 직계 의원은 “친문의 범위가 넓어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며 “대선이 아직 1년 4개월 남아있다. 적어도 문 대통령과 직접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의원들은 중립”이라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대세론을 형성했을 땐 그 쪽에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 지사가 치고 올라오면서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라며 “관건은 누가 이런 과업을 완수할 가능성이 크냐는 관점에서 확고하게 ‘밴드왜건(선거전에서 우세하다고 보이는 정당 또는 후보에 이목이 쏠리는 현상)’에 올라탄 주자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후보 측과 친문 측의 전략적 동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당내 어떤 후보도 확고한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친문을 끌어들이고, 친문 측은 될 사람을 밀어주되 차기 정권에서 계파의 이해와 전략의 유지를 조건으로 내거는 서로 ‘윈-윈’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다.

친문으로선 대선 경선 판을 손에 쥐고 정국 구도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대선 이후다. 이런 전략적 동맹으로 대선 승리할 경우, 권력 속성상 양측 간 파워게임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홍영식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