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최소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부터 설정해야…상대의 ‘최저 한계선’ 파악도 중요해
협상 끝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기준점’을 만들어라 [이태석의 경영 전략]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협상이 끝나면 누구나 자신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번 거래에 만족하는지 아니면 조금 아쉬운 것은 없는지 혹은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할 수는 없었는지 등이다.


누구나 협상이 끝나면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거래의 대상이 서비스이든 돈이든 상관없다. 과연 협상을 마친 뒤 이런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협상 중에 발생한다. 이것이 협상의 속성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불확실성을 감안한 전략을 짜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야 덜 아쉬울 테니까 말이다.


협상의 기준점을 설정하는 방법

자신의 직장에 꽤 만족하며 다니던 정보기술(IT) 전문가 김예슬 씨는 얼마 전 글로벌 최고의 기업이자 평소 선망의 대상이었던 A사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급여·인센티브·기타 복지 혜택 등 높은 보상을 바라고 있지만 과연 A사가 그에게 얼마를 제시할지 알 수 없는 노릇. 그는 자신이 최소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하한선을 계산해 봤다. 어림잡아 1억원의 연봉과 업계 최고 수준의 복리 후생을 제안해 온다면 거절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직으로 인한 리스크를 생각하면 약간 주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개인적인 성과도 쌓았다. 또 이직한다면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와의 관계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1억원의 연봉을 자신의 기준 거래로 일단 정했다.


기준점을 정한 그는 노트에 자신을 만족시키는 여러 가지 조합을 적었다. 만약 1억원이 아닌 그 이하의 연봉을 상대가 제시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차액은 어디에서 만회해야 할까. 1억원 미만의 연봉은 당연히 거절하겠지만 계약금 형태의 ‘사이닝 보너스(signing bonus)’나 출퇴근 서비스 제공, 자녀 교육비 지원, 1개월 휴가 등을 제공한다면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줄어든 연봉 때문에 생활비를 아껴야 하지만 사이닝 보너스가 상쇄해 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회사에서 줄 수 있는 복리 후생 혜택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산해 보니 최소한 1억2000만원의 연봉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자신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보다 나은 보상을 바란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고민 끝에 적어도 자신이 어떤 조건 이하로는 거절하고 어떤 조건 이상은 수락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한 거래 조건들을 준비했다.
협상 끝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기준점’을 만들어라 [이태석의 경영 전략]
이렇게 준비하고 나니 막연했던 인사 담당자와의 협상이 한결 명쾌해진 느낌이다.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세워져 그렇다. 세 가지 조합보다 조건이 나으면 수락하는 것이고 못하다면 거절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협상을 하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변수들이 있을 수 있다.


협상 테이블에 등장하는 변수에 대비하라

협상에는 종종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상황이 바뀌었는 데도 종전의 기준점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다. 당연히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협상 도중 현 직장에서 그에게 승진과 함께 연봉 인상을 제안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그에게 새로운 협상 대안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 : 협상 결렬 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가 개선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조합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A사에서 제시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상황 변화가 좋은 쪽으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원래 기준점보다 못한 조건을 수락해야 할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어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올려 줘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예금 통장이 넉넉하지 않다면 목돈이 필요할 것이다. 이때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사이닝 보너스다. 한꺼번에 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거래 조건 변경을 의미하며 기준점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A사와의 협상 결과는 자신의 협상 능력뿐만 아니라 여러 외부 요인에 의해서도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외부 변수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냥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얘기는 무책임하다. 기준점을 그려 보고 현재 시점에서 예상 가능한 외부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되고 나아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의 최저 한계선을 추정하고 움직여라

협상 타결은 양측의 이익이 얼마나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얻을 수 있었던 거래에서 그냥 마무리한다면 너무 아쉽다. 이런 거래를 막으려면 상대가 어디까지 양보해 줄 수 있는지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즉 상대의 최저 한계선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를 쉽게 알기가 어렵다. 누구든지 자신의 마지노선까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것이 알려지면 베이스 라인까지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상대를 한계선까지 밀어붙여 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대신 과장된 언행을 보이거나 얼버무릴 확률이 높다. 따라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먼저 상대방의 관점이 돼 보는 것이다. A사 관점에서 협상을 바라보자. 회사는 그가 제시하는 조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사내 급여 체계를 기준으로 볼 때 연봉 수준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 연봉 인상 대신 특별 성과급이나 주택 구입용 무이자 대출 지원 제도를 제시할 수 있다. 상대가 보는 시각은 자신과 다르다. 이 때문에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을지 판단하는 데는 늘 오류가 뒤따른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신도 상대도 아닌 제삼자의 객관적인 판단이다. 제삼자는 새로운 각도에서 협상을 바라본다. 그들의 의견은 당신이 확신하고 있던 것과는 다를 수 있다. 이때 당신의 판단에 혼선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확신보다 훨씬 낫다. 다행스럽게도 지인 중 A사에 근무하고 있어 보상 체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이 상대의 최저 한계선을 추정하고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여러 경우의 수를 미리 가늠해 보라. 그러면 어느 부분에서 융통성을 발휘할지 미리 대비할 수 있다. 각각의 조건에 대한 상대의 관심사와 우선순위를 감지할 수 있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를 활용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협상에서 상대의 생각을 읽기는 어렵다. 자신의 카드를 숨기려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협상의 불확실성은 커진다. 불확실성은 각자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 어떤 이는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고 어떤 이는 최악의 결과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협상이 끝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기준점을 미리 설정하라.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대비해 상대의 최저 한계점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집중하라.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