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ABC] [한경비즈니스 칼럼=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우리 사회엔 자동차보험이나 생명보험 등의 민영 보험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이나 정책보험 같은 공영 보험이 있다. 공영 보험이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건강보험의 중요함을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절실히 깨닫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기초 보루로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산재보험, 졸지에 직장과 수입을 잃은 이들을 위한 고용보험은 최근 사회적 관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책 보험으로는 무역보험공사에서 운영하는 무역보험과 예금자 보호를 위한 예금보험이 대표적이다. 공사에서 운영하는 정책 보험은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살림을 하는 만큼 보다 효율적으로 또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운영돼야 마땅하다. 정책 보험 제도에 대한 평가는 다각적인 기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크게는 형평성 기준과 효율성 기준으로 나뉜다. 제도의 형평성은 수평적 형평성과 수직적 형평성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은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수평적 형평성과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은 다르게 또는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배려’하는 수직적 형평성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제도의 효율성 또한 경제적 효율성, 제도 운영상의 효율성, 제도 목적 달성의 효율성 등 여러 기준으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경제적 효율성은 정책 보험 제도의 비용·편익 기준에서 한계 비용과 한계 편익을 일치시키는 차원의 시스템을 뜻한다. 제도 운영상의 효율성은 관리 비용 절감, 관료주의 지양, 정치적 리스크 감소 등을 의미한다. 정책 보험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 달성 차원에서도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책 보험은 형평성 제고 노력과 함께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타파하면서 지속 가능성을 지향해야 한다.
필자는 1995년 6월 건국대에 부임하기 전 1년간 한 연구소에서 일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는 상승세 그 자체였다. 1960~1970년대의 산업화와 1980~1990년대 초반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이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 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 다 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던 때로 기억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앞두고 자본 시장 자유화, 금융 시장 개방이 연일 회자됐다.
1994년 말로 기억된다. 당시 재정경제원에서 정책 연구 과제가 연구원에 전달됐는데 바로 예금보험제도 도입 건이었다. 은행·증권·보험권의 박사들이 모여 선진국 제도를 벤치마킹해 대한민국 최초의 예금보험제도 초안을 만들었다. 당시 제도 도입을 연구하면서도 ‘은행이 망할 리 있나’, ‘이렇게 만들어진 예금보험제도가 언제나 쓰일까’하며 연구위원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화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예금보험제도가 도입된 후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외환 위기가 터지고 많은 수의 금융회사들이 망하면서 초보 수준의 예금보험제도가 부랴부랴 운전대를 잡게 됐다.
이후 20여 년이 흐르면서 예금보험제도는 외형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도가 급작스레 확대 시행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쌓였고 여기저기 파열음이 들려온다. 금융업권 간 형평성 문제, 예금보험료율의 적정성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업권이 과도하게 큰 부담을 진다면 제도 운영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부적절하게 높은 보험료율은 결국 금융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최근 예금보험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다. 정책 보험제도 운영에 있어서는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 유지가 더없이 중요하고 경제 상황의 변화에 대처하는 유연성 또한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유례없는 경제 불황기에 오히려 금융회사의 예금 보험료 부담이 가중된다면 소위 ‘경기 순응성(procyclicality)’ 문제가 증폭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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