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천 전 수석 “멀고 불편, 부산시민 무지몽매한 멍텅구리로 보면 안돼”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 “남부 발전 기폭제 박형준 ‘선거용’ 비판해도 탓 않겠다
-예비타당성 기준 완화 … 여야, 너도 나도 지역 토건 예산 늘리기 경쟁
천영우 “가덕도 신공항, 대사기극” … 불붙은 ‘신 土建 정치’ 논란 [홍영식의 정치판]
“솔직히 여론이 때리면 때릴수록 표에 도움이 된다. 2022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부산시장을 놓칠 수 없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 이유로 따라오는 것 아닌가.”

부산·경남(PK) 지역의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권이 김해공항 확장안을 뒤집고 부산 가덕도를 동남권 신공항으로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물론 갈수록 뒤처지는 지역 경제를 위해 경제적 유발 효과가 큰 가덕도를 신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산 시민들의 절박한 마음도 있다”며 “표를 위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정의당마저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속전속결,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 신공항 검증위원회가 11월 17일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직후 이낙연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검증위의 김해 신공항 백지화로 부산·울산·경남 시·도민의 오랜 염원인 가덕도 신공항 가능성이 열렸다”며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합법적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검증위원들이 김해 신공항 백지화를 뜻한 것은 아니고 가덕도를 신공항 부지로 결정한 것도 아닌 데도 민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10조원 안팎의 국비가 필요한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에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까지 했다. 1999년 도입된 예타는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지원 사업은 300억원) 이상의 경우 사전 타당성 조사를 받도록 한 제도인데, 이를 면제하는 것은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고속도로’를 깔아 주는 것이다.

예타를 면제하는 이유는 내년 4월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 선거 전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조기에 기정 사실화하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예타 조사를 하게 되면 최소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보궐 선거 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가시화되기 어렵다.
천영우 “가덕도 신공항, 대사기극” … 불붙은 ‘신 土建 정치’ 논란 [홍영식의 정치판]
여권, 성추행 물타기·득표 도움·野 분열 ‘일거삼득’

가덕도 신공항은 여권에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둘 묘수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 원인이 된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 물타기를 기대할 수 있다. 가덕도 신공항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면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들은 출마를 선언한다는 계획을 잡아 놓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분열에도 성공했다. 검증위원회 발표 이후 국민의힘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가덕도 공항을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대변인은 “선거를 노린 졸속 검증”이라고 비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대구·경북 의원들은 “천인공노할일”이라고 들고일어난 반면 PK 의원들은 민주당보다 한 발 앞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일심동체’로 적극 찬성하고 있다.

4선 출신으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유기준 전 의원은 “포퓰리즘적 사고로 접근하는 게 아니다”며 “경제적 기폭제 역할을 위해서라도 가덕도 신공항은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의원의 주장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고추와 멸치를 말리는 것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부산을 이대로 두면 요코하마에 밀려 일본 제3의 도시로 전락한 오사카의 길을 걷게 된다. 고추와 멸치를 말리는 곳이 아니라 영양 고추, 남해 죽방멸치를 항공 화물로 실어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2016년 국제기구 평가에서 가덕도가 김해·밀양에 밀려 3위를 한 곳이다.

“제대로 된 국제공항이 되려면 24시간 운항과 안전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김해 공항은 인근에 민가가 많아 확장하기 쉽지 않고 저녁 9시 이후 아침 6시 이전에는 이착륙이 안 된다. 중국 민항기가 2002년 김해 돛대산에 충돌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밀양은 산을 여러 개 깎아야 한다. 2016년 결정 때는 안전 문제보다 비용 측면을 많이 고려했다. 가덕도는 돈이 많이 든다. 바다를 매립해야 하고 철도와 도로를 새로 깔아야 한다.”

▶그럼에도 가덕도를 선택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경제적 유발 효과를 보면 그렇지않다. 가덕도 신공항 수요 조사를 했더니 연 2000만~2500만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화물은 수출하고 여행객은 한국으로 와야 하는데 24시간 운항이 돼야 가능하다.”

▶지리적으로 보면 가덕도는 김해와 밀양에 비해 TK와 울산에서 더 멀다.

“큰 차이가 없다. 20~25km 더 달리면 된다.”

▶내년 보궐 선거, 2022년 대선용이라는 비판이 많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부산·울산 시민, 경남 도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

역시 부산시장에 출마한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선거를 의식해 (가덕도 신공항을)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든다고 (비판)해도 탓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정권 차원에서는 부산·경남 민심을 얻고 차기 정권 창출에 활용하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가덕도 신공항은 남부권 전체 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 이후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 것도 이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의 가덕도 신공항 지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천영우 “가덕도 신공항, 대사기극” … 불붙은 ‘신 土建 정치’ 논란 [홍영식의 정치판]

김해공항 확장 결정 참여 전 관료 “정치 논리에 경제 질식”

하지만 같은 PK 출신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현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가덕도 신공항을 “나라에 해를 끼치는 대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천 전 수석은 “먼 거리에 있는 공항을 가까이 옮기기 위해 돈을 들인다면 모르지만 가깝고 편리한 곳에 있는 공항 확장이 가능한데 멀리 간다면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부산 시민들이 가덕도 신공항이 얼마나 멀고 가기 불편한지 계속 모르는 것을 전제로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산 시민들을 무지몽매한 멍텅구리로 보면 안 된다. 신공항이 개설되는 순간 대사기극에 속았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만이 아니다. 여권은 내년 보궐 선거뿐만 아니라 2022년 대선을 겨냥해 토건 사업을 계속 늘릴 계획이다. 이낙연 대표는 여야에 대구와 광주 지역 신공항 건설과 관련한 특별법도 협의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국제·국내선 공항 15곳 중 10곳이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제안이 실현되면 국비 수십조원이 들어가게 된다. 더욱이 예산 절감의 마지막 보루인 예타 면제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심사 문턱을 낮춰 토건(土建) 사업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초반 이명박 정부를 ‘토건 정부’라고 몰아붙이면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도 SOC 예산을 올해보다 11.9% 늘려 26조원을 편성했다. 여야 의원들도 지역 개발 예산 증액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여당을 향해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매표 행위를 한다고 비판만 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꼭 필요한 건설 사업은 해야 하지만 여야 할 것 없이 현대판 고무신 매표 행위, ‘신토건 포퓰리즘’에 올라타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해 신공항 확장 결정 과정에 참여한 전직 고위 관료는 “선거를 앞두고 또 정치 논리에 경제가 질식 당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5호(2020.11.30 ~ 2020.12.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