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한국 산업 현장의 한 가지 수수께끼 [김태기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일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가 산업 현장에 있다. 한국은 산업재해 사고율이 미국과 독일 등에 비해 4분의 1 이하로 낮지만 산재 사망률은 정반대로 4배 정도 높다. 사고율과 사망률이 비례하는 게 정상인데 한국은 예외다.


한국은 산업안전법을 위반하면 처벌이 7년 이하 징역으로 미국·일본(6개월 이하), 독일·프랑스(1년 이하)보다 훨씬 무겁다.


처벌이 엄격하면 산재 사망이 작은 게 상식인데 오히려 많다. 한국은 산재 사고가 노조가 있는 원청 대기업에 많고 산재 사망은 영세 하청 기업에 많다. 산재 사망이 생길 때마다 안전 보건 규정을 늘려 1222개나 될 정도로 복잡하고 많지만 산재는 늘었다.


산재 사고율과 사망률의 반비례는 정책과 현실의 괴리에 원인이 있다. 산재는 위험한 일이라 작업자의 스킬과 작업장 분위기와 깊이 관련된다.


위험에 대한 보상, 스킬, 노사 협력이 산재 줄이기의 핵심 변수다. 사고를 냈다고 처벌만 강화해 해결하기 어렵다. 처벌이 너무 무거우면 사고를 은폐하다가 사망 사고라도 터져야 할 수 없이 외부에 노출된다.


한국은 노조가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집중돼 있다. 노조는 작은 사고라도 문제 삼기 때문에 대기업은 사고율이 높지만 사망률은 낮다.


위험 업무는 외주로 넘기니 사망 사고는 하청 기업에 집중된다. 이런 슬픈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기준과 처벌만 강화하는 산업 안전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처벌 위주 정책의 모순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독일과 스웨덴 등 북부 유럽은 산재 사고율과 사망률이 모두 낮다. 프랑스와 남부 유럽은 한국처럼 산재 사고율과 사망률이 반비례하지는 않지만 이들 국가보다 3배 높다.


독일과 북부 유럽은 노사 관계가 협력적이고 훈련이 강화되고 반면 프랑스와 남부 유럽은 반대다. 하지만 산재 발생에 대한 책임은 프랑스와 남부 유럽이 독일과 북부 유럽보다 훨씬 엄격하다. 프랑스는 산업 안전 기준이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하지만 산재 사망률이 독일보다 8배 많다.


예방 중심의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점은 미국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은 산업 안전 관련 법과 거버넌스를 만드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는데 처음에 처벌에 중점을 뒀다가 실효성이 낮아 바꿨다. 산업 안전 기준을 자발적으로 이행하도록 중복 규제를 없애고 명료하게 했다.


산업 안전 거버넌스도 당사자 중심으로 바꾸고 산재 예방을 위한 당사자의 노력에 인센티브를 줬다. 사업장 특성에 맞춰 안전 진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상담 기능을 강화해 노사 협력을 촉진했다. 산업 안전을 위한 훈련과 작업 시스템 개선에 자금도 지원했다.


한국은 거꾸로다. 올해 초 산재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다. 그래도 효과가 없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묻지 마 식’ 엄벌을 하려고 한다. 정의당이 발의하고 기이하게도 국민의힘이 찬성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발을 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사업주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도 사망 사고가 나면 최소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자기 책임 원리와 과잉 처벌 금지 위배로 위헌 논란만 생길 뿐 산재를 줄일지 의문이다. 정치권은 무시무시한 처벌로 산재를 해결한다는 반문명적·반민주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5호(2020.11.30 ~ 2020.12.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