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이정희 사장 취임 이후 체질 개선 성공
-5년 새 파이프라인 3배 늘고 기술 수출 5건 성공
잇단 기술 수출...‘투 트랙 R&D 전략’ 결실 맺은 유한양행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내년 창립 95주년을 맞는 유한양행이 연이은 연구·개발(R&D) 성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이정희 사장이 2015년 취임 이후 추진한 ‘투 트랙 R&D 전략’이 결실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한양행은 자체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발굴은 물론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으로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매출액 대비 R&D 비율 10% 이상 전망

유한양행은 ‘100년 기업’을 앞두고 회사의 미래 성장 동력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인 R&D 부문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유한양행의 지난해 R&D 투자 금액은 1382억원으로 2017년 1037억원 대비 33.3% 증가했다. 지난해 9.3%였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올해 10%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신약 개발은 오랜 기간과 많은 투자가 선행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인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R&D 부문의 경쟁력을 최우선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단기적 이익 성장에만 몰두하지 않고 노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부분에 역점을 뒀다”며 “신약 개발만이 미래의 희망이 된다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R&D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이 사장 취임 후 신약 개발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경영진은 외부 유망 기술이나 과제 발굴에 대한 중앙연구소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 적극적 소통을 통해 조직 문화의 변화를 모색했다.

경영진의 의지는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공감대가 전사적으로 확산됐다. 연구원들은 외부로 나가 최신 동향을 살피고 유망 파이프라인이나 기술을 찾아 발로 뛰기 시작했다. 2015년 초 9개였던 파이프라인은 올해 12월 기준 30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외부 공동 연구 과제다.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은 도입한 기술이나 약물의 가치를 극대화해 글로벌 기술 수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이를 위해 개발 단계에 따라 강점인 신약 물질의 효능과 독성을 평가하는 전임상 연구와 초기 임상 연구를 통한 중개·생산·제제 연구 등 실질적 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사장은 “유한양행은 기술력이 있는 외부 업체와 파이프라인 등을 공유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공동 개발하는 방식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지속 확대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만료된다. 후임으로는 조욱제 부사장이 유력하다. 조 부사장은 내년 3월 중순 열릴 예정인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대표로 선임돼 이 사장의 R&D 성과를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에도 기술 수출 성과 이어 가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은 연이은 해외 기술 수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2009년 엔솔바이오사이언스에서 도입한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을 임상 2상 단계까지 개발한 다음 2018년 7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에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했다.
잇단 기술 수출...‘투 트랙 R&D 전략’ 결실 맺은 유한양행
2015년 오스코텍의 미국 자회사 제노스코에서 도입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은 2018년 11월 미국 얀센바이오텍에 기술 수출했다. 유한양행은 전임상 직전 단계였던 레이저티닙을 물질 최적화와 공정 개발, 전임상과 임상을 통해 가치를 높여 기술 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얀센은 2023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허가 신청을 목표로 하는 10개의 유망 파이프라인에 레이저티닙을 포함한 상태다.

유한양행이 자체 발굴한 파이프라인들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2019년 1월 길리어드에 기술 수출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 파이프라인이 대표적이다. 전임상을 시작하지 않은 탐색 물질 단계에서 계약을 성사시켜 주목받았다.

유한양행은 또한 제넥신의 약효 지속 플랫폼 기술을 접목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 ‘YH25724’를 2019년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YH25724는 유한양행이 자체 개발한 파이프라인으로 제넥신의 지속형 단백질 기술을 활용해 개발했다”며 “유한양행의 바이오 의약품 개발 역량과 함께 외부 기술에 대한 열린 자세가 기술 수출로 이어진 비결”이라고 말했다.

유한양행의 기술 이전 계약은 올해에도 이어졌다. 지난 8월 20일 미국 프로세사 파머수티컬에 기능성 위장관 질환 치료제 ‘YH12852’를 기술 수출했다.

YH12852는 유한양행이 자체 개발한 합성 신약 파이프라인으로 국내 임상 1상을 마쳤다. 임상 1상에서 심혈관 부작용 없이 우수한 장운동 개선 효과를 확인한 만큼 미국에서의 신속한 후속 임상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유한양행의 설명이다. 프로세사 파머수티컬은 내년 미국 현지에서 임상 2상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데이비드 영 프로세사 파머수티컬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사람이 살면서 다양한 위장 문제를 겪게 된다”며 “YH12852를 중증·만성 또는 재발성 위장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제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YH12852는 2018년 9월 적정 투약 용량 설정을 위한 임상 2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 개발이 중단된 상태였다”며 “임상 2상 중단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던 파이프라인을 5000억원 규모로 기술 이전 계약한 만큼 유한양행의 R&D 역량과 엑시트 전략이 돋보인 사례”라고 말했다.

▶돋보기
미국·호주 등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고삐 죈 이정희 사장
잇단 기술 수출...‘투 트랙 R&D 전략’ 결실 맺은 유한양행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1951년생이다. 1978년 영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2015년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유한양행 공채로 입사해 2002년 유통사업부 상무, 2006년 마케팅 홍보 담당 상무, 2009년 경영관리본부장 전무, 2012년 부사장 등을 거쳤다.

이 사장은 2015년 3월 취임과 동시에 연구·개발(R&D) 강화와 미래 신사업 발굴 원년을 선포했다. ‘회사 매출에 비해 파이프라인은 취약하다’는 시장의 평가를 뒤집기 위해서였다. 취임 첫해부터 R&D 인력을 확충하는 등 신약 개발을 위한 체질 개선 작업에 집중했다.

이 사장은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도입하기 위한 공격적 투자에도 공을 들였다. 오스코텍·바이오니어·제넥신·앱클론·파멥신·애드파마·제노스코·네오이뮨텍 등의 바이오벤처에 수천억원을 투자하며 원천 기술 확보에 주력했다.

이 사장은 또한 세계 각국으로 R&D 플랫폼을 확장했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유한USA샌디에이고’를 세운 데 이어 보스턴 법인을 설립해 신규 기술 확보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호주법인을 설립해 현지 제약·바이오 기업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 사장은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의 최종 목표는 개방, 가치 창출, 이익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글로벌로 확대해 유한양행의 기업 비전인 ‘그레이트 유한, 글로벌 유한’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