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 버팀목 역할…
시장 침체 시 부동산·뉴딜 등 실패로 끝날 가능성 높아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한국 증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 행진을 지속하면서 2700선을 훌쩍 넘겼고 코스닥지수도 2018년 1월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이후 주가 상승률도 세계 증시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9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런 장세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던 시각은 극소수였다. 대부분이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기축 통화인 달러화만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주가 급등·달러 급락’이라는 정반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위기 때일수록 잘 들어맞는 ‘조지 소로스와 워런 버핏의 자기 암시 가설’로 한국 증시를 진단해 보면 특정국 경기가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사태로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주가부터 추락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투자자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보유 주식을 대거 내다 팔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중순 이후 코스피지수가 35% 급락한 한 달 동안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나오면 투자자 사이에 경기가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예상보다 좋은 ‘서프라이즈’)가 나오기 시작한다. 투자자 심리도 점차 ‘낙관’ 쪽으로 옮겨지면서 주가는 경기보다 빨리 1차 상승기를 맞는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3월 중순 이후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2400선을 넘겼던 8월 중순까지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주가 상승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낙관’ 쪽에 몰렸던 투자자의 쏠림 현상이 흐트러져 1차 조정 국면을 맞게 된다. 주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할 때 이 기간은 1개월 이상 길어지지 않지만 올해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은 대형 이슈로 11월 초까지 2개월 반 이상 길어졌다.
이때 경기가 뒤따라오느냐가 중요하다. 경기가 받쳐주면 투자자 심리가 재차 ‘낙관’ 쪽에 쏠리면서 주가는 2차 상승기를 맞게 된다. 미국 대선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이 속속 상향 조정되면서 코스피지수가 2700선을 넘기자 대세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요즘이 이 국면에 해당한다. 백신 상용화로 세계 경기 회복 가능성
소로스·버핏의 이론대로 앞으로 전개될 증시 상황을 보면 2차 상승기에 ‘낙관’ 쪽에 쏠렸던 투자자 심리가 어느 순간 거품 우려가 높아지면서 2차 조정 국면을 맞는다. 이때 경기가 뒤따라오면 3차 상승기에 들어가지만 반대로 악화되면 투자자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는 경기 여건보다 더 떨어지는 과잉 조정 국면을 맞는다.
한국 증시가 ‘또 다른 기회(ice breaking)’를 만들어 내느냐’와 ‘더 깊은 나락(ice age)에 빠지느냐’는 경기 개선 여부가 관건이다. 일단 투자 환경 면에서는 ‘전자’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미국 대선을 계기로 증시에서 가장 싫어하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리스크’가 해소되고 코로나19 백신 상용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세계 교역이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다자주의 채널 복귀로 0.5%포인트, 코로나19 백신 상용화로 상품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0.7%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교역 증가를 바탕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되면 한국·중국과 같은 수출 지향 국가일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선 이후 1차 상승기를 이끌어 왔던 ‘동학개미’에 이어 외국인이 2차 상승기를 주도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화학·현대자동차·삼성바이오로직스 등과 같은 대표 업종을 사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이 한국과 같은 신흥국 주식을 사는 것은 해당 국가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동학개미들로서는 대형 종목 위주로 증시가 전개되면 지수는 높아지지만 1차 상승기보다 더 실익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1인당 투자 가용액이 2000만원 이내에서는 대형 종목이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해당 주식을 사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혜택을 받은 문재인 정부는 이제부터 동학개미들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동학개미의 활약이 눈부셨다. 동학개미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대외 의존적인 한국 경제 특성상 더 어려워졌고 우리 국민이 받은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적으로는 4·13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도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동학개미의 힘이 떨어져 증시마저 침체 국면에 들어간다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총체적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집권 초기에 주력했던 소득 주도 성장이 유야무야되고 남북 관계마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난 3년 반 동안 무려 23차례에 걸쳐 대책을 내놓을 만큼 최우선 순위를 두고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마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증세, 경제 의욕 꺾어 경기 침체 초래
금융 위기 이후 유동성이 실물 경제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여건에서는 부동산 정책과 같은 대책성 경제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 을 잘 조절하는 것이 생명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강남을 비롯한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해 수요 억제책으로 일관해 해당 지역일수록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증시 침체 국면을 가정해 시중 자금의 향방을 예상해 보면 물가를 감안한 실질 금리가 제로(경우에 따라서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여건에서는 예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다. 최근처럼 금융과의 연계성이 떨어진 이분법 경제에서는 실물 경제로 들어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증시 침체로 이탈된 자금이 들어갈 곳은 유일하게 부동산 시장이다.
집권 후반기의 주력 과제인 뉴딜 정책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뉴딜 정책의 기본 토대인 ‘혁신 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모험성이 짙은 자금이 잘 흐르도록 해야 한다. 담보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은행보다 증시가 활성화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원 조달 수단으로 가장 많이 의존하는 뉴딜 기금도 잘 조성될 수 있다.
재원 조달 차선책인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방안은 부작용이 더 우려된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공공 지출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소화 과정에서 금리가 올라 민간 수요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재정 지출의 승수 효과는 대공황 당시 3.6배에서 최근에는 1.5배 내외로 크게 떨어졌다.
최후 방안으로 고려하고 있는 증세는 오히려 한국판 뉴딜 정책을 망칠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증세로 일관해 한국 기업과 국민은 이미 세 부담을 심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의 증세는 기업과 국민의 경제 의욕을 꺾어 경기 침체와 재정 수입 감소를 초래(래퍼 곡선상 세율과 세수 간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 지대)할 가능성이 높다.
증시가 활성화돼야 미시적 측면에서 기업은 자기 구미에 맞는 자금을 조달하고 국민은 건전한 재산 증식이 가능해진다. 거시적 측면에서는 국민소득 3면 등가 법칙상 생산과 지출 그리고 분배 간의 선순환 관계가 잘 작동된다. 정치적으로도 주식 대중주의가 실현돼야 민주주의 꽃도 피울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처럼 어렵게 돋은 동학개미의 싹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엄동설한을 딛고 돋아난 ‘새싹(green shoot)’이 ‘풍성한 과일(golden goal)’을 맺기 전에 과수원 주인이 전지 작업을 잘못해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모든 증시 정책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유연하게 추진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8호(2020.12.21 ~ 2020.12.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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