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법정관리 유예하고 자율 구조조정 시작했지만
-2개월 내 차입금 만기 연장하고 새 주인 찾아야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코란도와 ‘무쏘’ 등을 앞세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명가’로 불리던 쌍용자동차가 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쌍용차는 최근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9년 1월 이후 약 11년 만에 되풀이된 악몽이다.

이번에는 외국계 은행들에 빌린 600억원 규모의 대출 원리금이 발목을 잡았다. 쌍용그룹과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중국에 이어 인도 기업에 넘어간 지 10여 년 만에 새 주인을 찾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쌍용그룹 계열의 ‘SUV의 명가’로 불렸지만…

쌍용차는 고(故) 하동환 한원그룹 명예회장이 1954년 설립한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가 모태다. 1977년 ‘동아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1986년 쌍용그룹에 인수되면서 현재의 사명을 갖게 됐다.

쌍용차는 쌍용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은 뒤 ‘SUV의 강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1988년 출시한 사륜 구동 방식의 SUV ‘코란도 훼미리’와 1993년 선보인 중형 SUV 무쏘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그룹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기술 제휴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쌍용차는 ‘벤츠 엔진을 쓴다’는 입소문은 남성 소비자의 지갑을 공략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쌍용차의 SUV는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대우자동차의 승용차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갔다. 코란도 등에 장착한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과 소음은 ‘패밀리카’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격이 비싸다는 평가도 많았다.

쌍용차는 1996년 3월 기존 중형 SUV 무쏘에 상시 사륜 구동 방식의 가솔린 엔진을 얹고 가격을 낮춘 신모델을 선보였지만 시장의 편견을 깨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쌍용차는 그해 2285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졌다. 한때 재계 서열 5위였던 쌍용그룹도 유동성 위기를 비켜 갈 수 없었다. 용평리조트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 쌍용차에 무리하게 투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1997년 12월 기준 그룹 전체 부채가 약 12조원이었다. 쌍용차 몫의 부채는 이 중 25% 이상인 3조4000억원에 달했다. 쌍용차에 딸린 금융 이자만 연간 3000억원이 넘었다.

쌍용은 그룹 정상화를 위해 고강도 구조 조정에 나섰다. 1998년 1월 대우그룹에 쌍용차를 매각했다. 하지만 쌍용차를 팔아 치우면서 떠안은 부채 1조7000억원은 그룹 재건의 걸림돌이 됐다.

주축이던 쌍용건설은 1998년 기업 재무 구조 개선(2005년 워크아웃 졸업) 절차에 돌입했다. 이듬해 쌍용정유(현 에쓰오일), 2000년 쌍용중공업(현 STX) 등 알짜 계열사를 연이어 매각했다. 쌍용그룹은 하지만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 2014년 모태인 쌍용양회공업 등만 남은 채 사실상 해체됐다.

쌍용차의 부침은 대우그룹에 편입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우차는 쌍용차를 인수한 1998년 당시만 해도 2년 전 선보인 소형차 ‘라노스’, 1년 전 출시한 준중형차 ‘누비라’와 중형 세단 ‘레간자’ 등의 인기로 한창 주목받던 업체였다. 쌍용차를 인수하며 버스와 승용차는 물론 SUV 등 전 차종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시장의 기대를 받았다.

대우차는 ‘세단은 대우, SUV는 쌍용’의 각자 브랜드 체제로 소비자에게 어필했다. 쌍용차는 대우차의 유통망을 등에 업고 판매량을 늘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는 듯 했다.

쌍용차는 하지만 1999년 대우그룹의 몰락과 함께 대우차와 나란히 워크아웃(재무 구조 개선 작업) 수순을 밟았다. 2000년 4월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뒤 2004년 10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됐다.

◆상하이차에 이어 마힌드라도 두 손 들어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중국 자본의 쌍용차 인수는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었다. 상하이차 체제 이후 출시한 SUV 모델 카이런과 액티언 등은 이른바 ‘중국 디자인’으로 인식되며 내수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상하이차는 글로벌 금융 위기 사태 이듬해인 2009년 쌍용차에 대한 법정관리(기업 회생)를 신청했다. 쌍용차는 기업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고 경찰력이 투입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2010년 인도의 마힌드라를 새 주인으로 맞으면서 이듬해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었다.

쌍용차는 이후 안정화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마힌드라는 쌍용차 인수 자금 5225억원을 비롯해 두 번의 유상 증자를 통해 1300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쌍용차가 2015년 1월 출시한 티볼리는 한국 소형 SUV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쌍용차는 덕분에 2016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28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할 수 있었다. 9년 만의 반전이었다.

쌍용차는 하지만 이듬해부터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7년 1분기 이후 2020년 3분기까지 15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20년 4월 가수 임영웅 씨를 모델로 기용하며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힘이 다한 상황이다.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내수 시장이 위축된 데다 제네시스와 수입 고급 브랜드들이 SUV 신모델을 내놓으면서 쌍용차의 판매량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쌍용차는 2020년 11월 누적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8.3% 감소한 7만9439대의 내수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은 30.7% 줄어든 1만7386대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16분기 연속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쌍용차는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2020년 1분기 분기 보고서 이후 세 차례 연속 회계 법인의 감사 의견 거절을 받기도 했다. 자산 매각을 통해 버텼지만 관리 종목 지정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마힌드라는 2020년 4월 쌍용차에 대한 투자 중단을 선언했다. 6월엔 쌍용차의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쌍용차의 경영 악화에 사실상 두 손을 든 셈이다.

◆구조조정 등 과제는 ‘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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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는 결국 기업 회생 절차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0년 12월 21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날 재산 보전 처분과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쌍용차는 회생 절차가 개시되기 전까지 채무를 갚을 수 없고 채권자 역시 강제 집행할 수 없다. 쌍용차 임원 전원은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접적 원인은 2020년 12월 14일 만기가 돌아온 외국계 은행 차입금 600억원을 갚지 못해서다. JP모간 200억원, BNP파리바 100억원, BoA메릴린치 300억원 등이다. 이날은 KDB산업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900억원과 우리은행 대출금 150억원의 만기일이기도 했다.

쌍용차는 “경영 상황 악화로 자금이 부족해 외국계 은행과 만기 연장을 추진해 왔지만 실패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쌍용차가 법정관리 신청서와 회생 절차 개시 여부 보류 신청서(ARS 프로그램)를 같이 내면서 매각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2018년 도입된 ARS 프로그램은 법원이 채권자의 의사를 확인한 뒤 회생 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해 주는 제도다. 이 기간 회사는 정상적 영업 활동을 하고 이해관계인들이 회생 방식에 합의하면 법정관리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2020년 12월 28일 쌍용차가 신청한 ARS 프로그램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와 채권자들 사이 구조 조정에 관한 협의를 지원하기 위해 2021년 2월 28일까지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쌍용차는 남은 2개월 동안 국내외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하는 등의 숙제를 안게 됐다. 2개월 동안 문제를 풀지 못하면 법정관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계속 기업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높다고 판단돼야 경영 정상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주인 7번 바뀐 쌍용자동차…11년 만에 다시 생사기로에
쌍용차는 가장 먼저 국내외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작업도 마무리해야 한다. 미국 자동차 유통 업체인 HAAH는 앞서 쌍용차에 3000억원 정도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 대신 기존 주주의 지분 정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힌드라가 기존 지분을 감자하면 HAAH가 유상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협상이 답보 상태가 되면 HAAH가 인수 여부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마땅한 대안도 없다. 2개월 동안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고 채권단의 합의까지 이끌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용차는 구조 조정 문제도 풀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구조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노조의 반대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노조는 채권단이 요구하는 인력 축소나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쌍용차는 계속 기업 가치도 증명해야 한다. 파산이 아닌 회생 절차를 시작하려면 청산 가치보다 계속 기업 가치가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법원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과 채무자 사이의 법률 조정을 돕고 관리인이 작성해 온 회생 계획안을 검토한 뒤 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법원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날 체력이 있는지가 기업 회생의 핵심이다.

서울회생법원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쌍용차의 자산은 1조6906억원이다. 부채는 1조5894억원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쌍용차가 계속 기업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재판부도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파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