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안경사’ 직업 만든 김태옥 시호비전 회장…“디지털은 숙명, 중소기업·자영업자는 플랫폼 활용이 대안”

“70대지만 애플 마니아…변화 먼저 읽는 퍼스트 무버 꿈꿉니다”
2020년은 대전환의 시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요동쳤고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얼어붙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와 통제는 중소기업에 더 가혹했다. 중소기업의 60.3%가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의 공장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1년 만에 5개월 연속 60%대에 머물렀다.


경제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기존 질서는 무의미해졌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는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한경비즈니스는 신년을 맞아 외환 위기, 금융 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극복해 온 중소기업 경영인을 만났다.


한국에 안경사라는 직업을 탄생시킨 김태옥 시호비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회장은 한국 안경 산업 역사의 산증인이다. 안경사가 지금처럼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산업 발전을 이루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1989년만 해도 한국 안경 산업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안경사가 아니더라도 안경원을 열 수 있었고 시력 검사를 위해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 회장은 발로 뛰며 안경사 제도를 정착시켰고 학문과 산업 발전을 위해 새 이정표를 세웠다. 30년 동안 나눔 경영을 실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20년 12월 29일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빨간 안경을 끼고 등장했다.


70대 중반이지만 ‘애플 마니아’로 유명한 그는 최신 아이폰과 애플워치·아이패드를 들고 있었다. 김 회장은 “산업의 흐름에 도태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경영을 이어 올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안경 산업 발전을 이끌며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를 비롯해 숱한 위기를 헤쳐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기 때마다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시대가 변해도 기업가 정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고민하고 변화를 먼저 읽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죠. 시호비전은 안경 산업에서 ‘최초’의 이정표를 세워 왔습니다. 한국 안경업계 최초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추진하면서 선진 시스템을 도입했죠. 안경업계 최초로 마케팅 정보 시스템(MIS), 전국 가맹점 매출 현황과 재고 현황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전사적자원관리(ERP)를 통해 시스템을 만들고 브랜드력을 강화했습니다. 1995년 당시 10억원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은 후발 주자들의 모범 답안이 됐죠. 지금은 매장에 자이스 등 글로벌 광학 기업의 최첨단 검안 시스템을 도입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3D 피팅을 통해 안경 착용 습관을 분석하거나 정밀한 굴절력 검사,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렌즈까지 제공하며 시대에 맞춰 가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대입니다. 경영인으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기업이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은 늘 문제 안에 있어요. 2021년의 키워드는 화합과 통합입니다. 분열과 갈등에 지친 미국은 치유와 화합을 외치는 조 바이든을 택했고 다자주의 질서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죠. 수출 지향적인 기업들은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디지털 전환(DT) 역시 피할 수 없는 흐름이죠. 코로나19는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던 디지털 전환을 앞당겼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로 2년간 일어날 디지털 전환이 단 2개월 만에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를 뚫고 호실적을 낸 기업들은 모두 변화를 선도하고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유연한 대처를 보여준 기업입니다. 사업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 분야예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대격변의 시기에 시대가 겪는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경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봤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대기업처럼 기술을 개발하고 데이터 환경을 갖추며 투자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대신 많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플랫폼에 올라타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IT 업체들이 이커머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중소 자영업자의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물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합니다.”

-코로나19로 안경업계도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상권이 죽고 유동 인구가 줄면서 안경업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반짝 회복했다가 다시 많은 안경점의 매출이 급감했죠. 안경은 불편하더라도 지금 당장 바꿔야 하는 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에 경기의 흐름이나 삶의 질이 개선되는지 여부를 많이 따릅니다. 경기가 좋아져야 안경을 새로 맞추기도 하고 멋도 내죠. 또 안경업은 10개 중 6~7개가 재고로 남는 유통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IT와 접목하는 노력도 하고 유통 방법도 달리 하는 방법을 고안해 봐야죠.”
“70대지만 애플 마니아…변화 먼저 읽는 퍼스트 무버 꿈꿉니다”


-상당히 젊게 사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나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이상 운동을 하고 다양한 업계 사람들과 만나 교류합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가입해 음식을 주문해 봤어요. 저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60대 이상 세대가 온라인에 유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든 사람들도 숙명처럼 디지털을 받아들여야 해요. 작게는 음식을 주문하는 일부터 모바일 뱅킹을 통한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배워야 합니다.”



-업계에서 최고경영자 학위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유명하시던데요.
“최고경영자 과정만 30개 이상 수료했습니다. 경영부터 IT·생명과학·언론 홍보까지 분야도 다양하죠.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예술 과정을 듣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 과정을 30개나 수료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고경영자 과정은 시대의 변화를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할 수 있고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내가 젊음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2020년대까지 계속 듣다 보니 10년마다 바뀌는 산업의 패러다임이 다 그 안에 있더군요. 수업의 내용뿐만 아니라 수업 방법도 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회장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공적이죠. 한국에 안경사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89년 내가 대한안경인협회 9대 회장에 취임할 당시 안경업계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발의한 의료기사법 개정안 중 문제가 되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안경을 맞추려면 시력 검사를 위해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이 조항에 반발하기 위해 전국 모든 안경인이 임시 휴무하고 한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냈고 그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안경사법 재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국가 안보건을 위한 안경사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전국 각 대학에 안경학과가 급증했고 석·박사 과정까지 개설됐습니다. 안경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이상의 안경광학과를 졸업하고 필기와 실기로 이뤄진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죠. 우리는 단순히 안경사의 이익을 위해 싸웠던 것이 아닙니다. 안경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체계적인 이론 및 실습이 필요한 학문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거죠.”



-안경사 제도 도입 후 안경업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안경사 제도는 안경사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큰 영향을 줬습니다. 세계에서 전문 검안사가 안경 판매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검안사와 안경 조제사 시스템을 따로 갖춰 활동하고 있지만 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은 아직도 국가 자격 안경사 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89년 법률 재개정으로 안경 역사를 바꿨죠. 그렇기에 한국은 안경사가 시력 검사 후 10~15분 만에 뚝딱 안경을 조제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 안경원이 해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외국인 출연자들이 핀란드에서는 안경을 맞출 때 최소 2주, 프랑스도 굉장히 오래 걸린다며 한국 안경원을 방문해 감탄하는 내용이 방영됐죠. 안경사 제도는 이런 좋은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안경 쓰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좋은 안경을 쓰는 팁이 있나요.
“스마트폰처럼 시력을 약하게 만드는 전자 기기와 가까워지면서 안경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또 최근에는 패션이자 하나의 즐거움이 됐죠. 드라마를 보면 안경 스타일 하나로 모범생·부자·기업인·전문직까지 다양한 개성과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잖아요. 안경이 없었다면 수많은 캐릭터들은 표현하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패션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거죠. 스티브잡스 등 유명인 중에서도 안경과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많잖아요. 나는 주변인들에게도 안경을 좀 더 편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권하고 안경 스타일을 바꿔 줍니다. 안경의 변화만으로도 더 젊어지거나 또렷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죠.”



-어려울 때일수록 나눔 경영을 실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매년 소년소녀가정과 보훈 가족, 노인과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몽골 등에도 안경을 전하고 있죠. 특히 2014년부터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통일희망나눔재단을 설립하고 탈북자들에게 안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탈북민은 시력 검사 후 안경을 평생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요. 또 2019년과 2020년에는 탈북민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더 밝게 보고 더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정리 =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