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여행은 과거와 다를까
[한경 머니 기고=오형수 K트래블아카데미 대표] “언제쯤이면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고 과거와 같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을까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미래, 미래의 여행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일까.

최근 강의와 컨설팅 현장에서 여행업계 종사자와 일반 시민 모두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언제쯤이면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고 과거와 같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을까요”다.

필자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누구도 그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빠를 것이고, 기대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보다는 늦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여행보다는 덜 위험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전 세계 정부와 기업, 개인이 특정한 과제, 즉 코로나19 퇴치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협업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빨리 코로나19를 퇴치하게 될 것이지만, 인간 생활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상 이번 겨울 내 퇴치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미 실현 불가능한 기대가 됐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완전 종식은 불가능한 목표가 되고 있어서 완벽한 안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위험이 해소된 지역부터 여행이 시작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코로나19와 여행에 대한 우리의 질문과 대응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속도를 예측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코로나19 종식 이후 우리의 삶과 일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여행의 미래, 미래의 여행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미래, 미래의 여행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일까.
미래의 여행은 과거와 다를까
◆등로주의 여행 시대


2018년 10월 네팔 구르자히말(Gurja Himal)산 3500m 지점에서 조난해 사망한 산악인 고(故) 김창호 대장을 아는 일반인은 그리 많지 않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김창호 대장’을 잃은 슬픔이 유달리 컸다고 한다.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오르던 구르자히말은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오지였다. 김 대장과 대원들은 완전히 새로운 등정로로 올라 ‘코리안웨이’로 명명하려고 했었으나, 그 길은 김 대장의 마지막 원정길이 됐다. 김 대장은 2017년 산악계의 오스카상으로 통하는 황금피켈상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국내 대표적인 등로주의 산악인이었다.

등로주의(mummerism)는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서 정상을 정복하는 등정주의와 달리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며 등산의 과정을 중시하는 등반 철학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남보다 빨리 정상에 오르는 데에만 전력투구하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남들과 다른 방법과 루트를 선택해 등산의 과정에 의미를 두는 ‘등로주의(登路主義)’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과 길, 다른 등반가가 어렵고 위험하다고 포기한 불확실한 길을 새롭게 개척해 보려는 시도가 등로주의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여행 산업, 여행 상품의 미래와 등로주의?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오든 위드(with) 코로나 시대가 오든 미래의 여행은 얼마나 자주, 싸게 여행을 갔느냐를 따지는 등정주의 여행이 끝나고 누구와 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게 여행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등로주의 여행 시대’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미래, 미래의 여행이 가리키는 방향은 ‘등로주의 여행 시대’다.

등산의 역사는 속도와 결과를 중시하는 등정주의가 가치와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주의로 변천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의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항공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우리나라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시행됐다.

여행·관광·항공 산업은 해외여행에 대한 억눌렸던 욕망이 분출돼 지난 30년 동안 경제적인 위기가 발생했던 몇 해를 제외하면 매년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초고속 성장을 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 낯선 문화, 그리고 언어(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스마트폰과 다양한 여행 정보 습득 채널의 확대로 더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져 ‘더 자주, 더 싸게’를 내세운 저가 패키지여행과 그것으로 매출과 수익의 많은 부분을 만들었던 전통적인 여행사에 위기가 왔다.

그 위기 위에 코로나19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해를 주고 있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전통적인 여행 산업 붕괴에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저가 패키지여행 중심의 전통적인 여행 산업의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 산업, 여행 상품이 여행자들이 꿈꾸는 여행이 아니라 더 자주와 더 싸게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알려진 지역과 상품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그동안 익숙했던 등정주의 여행을 버리지 못하고 여행자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동시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미래의 여행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여행 산업과 여행 상품의 미래는 없다.
미래의 여행은 과거와 다를까
◆여행에 대한 세 가지 위협과 과제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시점이 연장될수록 여행과 여행 산업에 미치는 위협은 커질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위협이 존재한다. 그중 첫 번째는 여행에 대한 의문 제기다. 기존의 여행은 다소 위험하고 도전적이라 하더라도 거주하던 도시나 국가에서 평소 접하지 못했던 비일상의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여행은 집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믿음에 의문을 품게 만들 것이다.

집을 떠나는 것 자체에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던 여행자들이 스스로 ‘이 여행은 안전한 집을 떠날 만한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여행자가 집 또는 자기 나라에서 할 수 없는 특별한 목적이나 배움을 제공하는 여행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이 질문에 즉각 대답할 준비를 하는 것이 여행 산업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위협은 코로나19 이후 여행 소비 주도권이 기존 50대 이후 베이비붐 세대에서 40세 이하 밀레니얼 세대로 이동해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양한 삶을 만나는 것을 추구하며 여행을 특별한 인생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로 여기는 세대다. 여행을 일상으로 여긴다면 여행 수요가 증가할 것 같지만 반대다.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고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떠날 수 있기에 즉흥 여행은 증가하겠지만 밀레니얼 세대의 여행은 그들의 취미, 레저, 반려동물, 게임, 스마트폰과 한정된 시간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에 전체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 또한 여행에 대한 이들의 질문은 베이비붐 세대의 ‘언제, 어디로, 누구와, 어떻게 여행을 가면 싸게 갈 수 있는가’가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질문은 ‘언제, 어디로, 누구와, 어떻게 여행을 가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가’다. 이들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로서의 여행도 포기하는 세대다. ‘언제, 어디로, 누구와, 어떻게 여행을 가면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여행 산업의 미래는 암울하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 여행은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유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위협은 여행자를 바라보는 거주민의 시선이 코로나19 이전처럼 부드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불편이 길어질수록 거주민과 인종적인 차이가 명확한 여행자에 대한 ‘차별’은 확대 혹은 강화될 것이다. 이 차별과 혐오가 중단되지 않고 확산한다면 코로나19의 종식과는 별개로 여행의 미래를 위협해 여행 수요 회복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비롯된 혐오와 차별 확대는 여행 산업이나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치료제와 백신이 조기에 개발돼 코로나19의 공포가 더는 혐오와 차별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코로나19로 피해 받는 다른 국가, 인종, 지역주민들에 대한 이해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등정주의자는 시계가 중요하지만, 등로주의자는 나침반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등정주의자는 남보다 1초라도 빠르게 산을 올라야 하니 속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길을 만들어야 하는 등로주의자는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를 알아야 하니 방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여행도 이제는 속도보다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여행의 욕망이 넘쳐서 모두가 ‘더 자주, 더 싸게’라는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더 싸게’가 가장 중요했지만, 소비자도 변하고 그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는 현재는 가격보다는 방향, 즉 가치와 의미가 중요하다. 가치와 의미가 없는 저렴한 패키지여행은 코로나19보다 먼저 종식될 것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스피드하게 따라가던 등정주의 여행에서 벗어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길을 걸으며 길을 만드는 등로주의 여행이 여행의 미래이자 미래의 여행이 돼야 한다.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타일, 의미, 감성을 제안하고 기획해 선보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츠타야서점 창립자 마스다 무네아키의 조언은 여행의 미래와 미래의 여행을 찾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이들에게 나침반 같은 말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2호(2021.01.18 ~ 2021.0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