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략]

분위기는 협상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재빠른 상황 판단과 순발력 필요해
협상장에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이태석의 경영 전략]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협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가져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초반에 형성된 분위기가 협상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많다.

분위기가 좋으면 불필요한 긴장을 덜 수 있고 적대적이거나 비협조적인 분위기라면 협상 내내 답답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양측 모두 심리적 부담감이 커져 협상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협상장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가볍게 시작하라

고급 가구 회사 사장인 A 사장은 새로 지은 콘서트 홀 의자 납품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수많은 가구 업체들이 의자를 납품하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경쟁은 치열했다. 그런데 모두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콘서트 홀 B 대표와의 협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수성가로 돈을 모은 B 대표는 깐깐하기로 소문났다. 이제 A 사장의 차례가 왔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선 후 무척 바빠 보이는 대표에게 곧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사무실 내부를 둘러봤다. 잠시 후 B 대표가 용건을 말하라고 했을 때도 A 사장은 사무실 인테리어를 칭찬했다.

그러자 B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실 그는 실내 인테리어를 본인이 직접 꾸미는 등 애착이 강했다. A 사장은 회의용 테이블을 만지며 “이 테이블은 캘리포니아 월넛 아닙니까. 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하기로는 최상급 품질의 나무죠”라고 말했다. A 사장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B 대표는 이것저것 소개해 줬다.

그의 이야기는 재료와 색상, 사무실 전체의 인테리어를 자신이 기획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A 사장은 적절하게 맞장구를 쳐주며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의 주제는 개인사로까지 번졌다. B 대표는 어릴 때 부친을 잃고 혼자 막노동하며 고생했던 이야기, 자수성가해 기업을 일군 과정 등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줬다.

두 사람의 대화는 무려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심지어 B 대표는 A 사장에게 점심을 같이하자고 청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전까지 의자 납품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A 사장은 의자 납품 건을 따는 데 성공했고 두 사람은 계속 만남을 이어 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협상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고 마음을 쉽게 털어놓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면 협상은 잘 풀리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 가벼운 주제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날씨·건강·스포츠 등 가벼운 화제로 긴장감을 해소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족이나 취미 등 가벼운 일상생활에 관한 주제는 서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고 알게 모르게 친근감도 생긴다.

2. 초반에 프레임을 통제하라

치과 전문의 C 씨는 자신이 근무 중인 병원과 재계약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지난 1년간 병원에 적지 않은 돈을 벌어 줬기 때문에 협상이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원장은 연봉을 15% 인하하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병원장은 병원이 적자 상태고 C 씨가 맡은 파트에서도 손실이 나고 있다는 자료를 들이밀었다.

자료에는 각종 의료 기기 설치비를 비롯해 소모품비, 병원의 고정비, 시스템 개선비 등 항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말문이 잠시 막혔던 C 씨는 정신을 차리고 비용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다. 항목들 중 어떤 것이 공정하고 무엇이 타당한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대화는 점점 수렁에 빠졌다.

엄청나게 자료를 준비한 병원장의 논리 앞에 당초 연봉 인상을 기대했던 C 씨는 이대로 무너지는 듯했다. 협상 초반에 병원장이 만든 프레임이 갇혔던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연봉 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도리어 깎이지 않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C 씨는 이제 어떻게 협상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이 협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해결 방법은 논의의 기반을 완전히 다른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핵심은 공정성에 있다고 결론 내린 그는 병원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제삼자에게 맡겨 공정 시장 가치로 분석하는 것이 어떠냐고 병원장에게 제의했다.

지역의 많은 병원에서 의사의 연봉 책정을 위해 이런 비교 분석법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런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회사도 존재했다. 관련 자료가 도착했을 때 그가 예상했던 대로 1년간 벌었던 수익에 비해 낮은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협상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인상을 뒷받침하는 타당한 이유 앞에 병원장은 백기를 들었고 결국 적절한 수준으로 인상을 승인했다.

협상의 프레임은 심리학적 ‘틀’이다. 당면한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도구다. 같은 사안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프레임의 수와 종류는 제한이 없다.

예컨대 장기적 관점이냐 단기적 관점이냐,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 재무적 관점이냐 전략적 관점이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옳거나 그른 프레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프레임이 협상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3. 유머로 긴장감을 해소하라

프로 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 리그가 시작됐다. 유명 투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맡은 D 씨는 선수를 대신해 구단 측과 연봉 협상에 나섰다.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선수와 구단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구단에서는 전체 선수들 중 기여도에 따라 연봉을 책정하는 제도를 갖고 있었다.

해당 선수는 시즌 동안 11승을 올리며 호투했기 때문에 기여도 측면으로 본다면 5억원 정도의 연봉 인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구단은 지난해 입장료 수입 부진으로 연봉을 동결하고 싶어 했다. 협상 자리에는 구단 대표이사와 운영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협상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봉 금액을 두고 밀고 당기던 중 표정이 좋지 않았던 대표이사가 발끈했다.

“도대체 말이 안 됩니다. 어떻게 대표이사보다 세 배나 많은 수입을 그 선수가 가져간다는 말입니까.”

의사 결정권을 가진 대표이사의 한마디에 회의실 안에 침묵이 흘렀다. D 에이전트가 물러설지 아니면 맞대응할지 긴장 속에 서로의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대표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선수가 대표님보다 공은 더 잘 던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재치 넘치는 농담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팽팽하던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그들은 다시 협상을 시작했고 연봉을 재조정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협상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협상 분위기는 유동적이다. 유쾌하게 시작했던 협상이 끝까지 간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분위기는 팽팽해진다. 긴장감이 감돌고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노련한 협상가는 좋지 않은 분위기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농담이나 태도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협상을 주도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2호(2021.01.18 ~ 2021.0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