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자 개선도 어려워…더 좋은 봉사는 팬과 시민의 공감에서 시작
[박찬희의 경영 전략] SK와이번스 야구단이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전격 매각됐다. 2007년 첫 우승 이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며 ‘스포테인먼트’의 선두 주자였던 구단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놀라움이 더욱 크다. 이를 두고 미디어는 물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도 참신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전략 경영의 시각에서 이번 매각 사례를 연구해 보자.사업 재편에 대한 시장의 요구
최근 세계 주요 통신 사업자들은 본업 이외의 사업들을 분할해 투자를 유치하거나 매각하는 사업 분할과 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콘텐츠·핀테크·인공지능(AI) 등 사업 내용이 좋다면 일단 갖고 있는 통신망에 얹어 수익 구조를 확보한 후 각각 독립시켜 투자를 유치하거나 매각하고 그 돈으로 ‘모빌리티 시대’에 필요한 지능형 통신망이나 위성 통신 체제를 개발하는 데 쓰는 추세다.
2000년대 들어 통신과 미디어가 본격적으로 융합되면서 통신사들의 사업 구조가 복잡해졌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생태계가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과 디바이스 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콘텐츠 사업자들이 가세하자 졸지에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전락할까 우려한 통신사들이 다양한 사업들에 투자하거나 직접 경영에 참여한 결과다.
그 성과는 회사마다 엇갈리지만 전기나 도로 같이 안정된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한 쪽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스포츠 팀에 대한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의 관심은(사실 관계를 떠나) ‘회삿돈으로 취미 활동한다’는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어 투자자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하다. SK야구단의 모기업인 SK텔레콤 역시 이런 시장의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프로야구단은 상시적으로 매년 300억원 정도의 적자가 난다. 이 돈이면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 매년 1~2개의 유망 스타트업 벤처에 투자할 수도 있는데 모빌리티·헬스케어·바이오·AI 분야라면 SK텔레콤이나 그룹의 국내외 사업에 얹어 빠르게 키울 수도 있으니 아쉬운 일이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매년 약 300억원의 적자(부채 포함)를 보는 마이너스 4000억원 가치의 사업에 300억원을 지불하고 SK텔레콤이 제공하던 훈련장 시설에 1000억원을 지불했으므로 SK텔레콤은 5300억원의 금융 여력을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 사업 재편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프리미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쉽게 놓친 사업 기회들이 있다면 도전해 볼만하다.
지역 사회와 야구팬들에게 주는 즐거움, 브랜드 가치에 주는 효과를 무시한 돈 계산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시적 적자 사업이 주는 타격은 위에서 봤듯이 생각보다 크고 시장의 요구는 냉정하다. 아무리 착한 일도 얼마나 착한지, 또 돈은 제대로 쓰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의 흔들리는 사업 가치
프로야구단이 모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이들은 누적 미디어 노출을 광고비로 환산한다. SK나 삼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과연 그런 계산이 의미가 있을까. 더욱이 어이없이 연패를 거듭하거나 팀 운영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회사의 브랜드와 정체성에 부담이 된다.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서 상대팀을 무지막지하게 이기면 상대 팀 연고 지역의 영업에 타격을 받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 영상물을 다 보는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3시간이 훌쩍 넘는 프로야구를 집중해 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인 ‘우리 선수’ 류현진·김광현 선수가 뛰는 메이저리그와 시청자의 시간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방송사들이 재미있는 편집 영상과 해설, 예능적 연출로 야구팬을 지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사업적 계산은 나아지기 매우 어렵다. 한국 프로야구의 몸값은 계속 올라가고 적자는 커진다. 최고 수준의 선수는 일본이나 미국 진출이 가능하므로 비싸고 리그의 정체성을 고려해 외국인 선수의 수입은 제한하므로 일정한 하한선이 유지된다.
고교야구팀이 50개 조금 넘는 나라에 10개 구단을 두니(2군까지 보면 상무를 포함 21개 팀) 선수층이 빤해 경기력의 한계가 보이는 현실에서 말이다.
적자를 줄여 모기업의 부담을 더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시청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의 중계권료는 빤하고 야구 생태계에서 방송사는 여전히 ‘슈퍼 갑(甲)’이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낮은 입장료는 ‘서민 부담’을 이유로 건드리기 어렵고 경기장 내 광고나 식음료 사업은 경기장을 보유한 지자체의 손에서 좌우된다. 낮은 광고비와 임대료가 ‘중소상공인’을 얼마나 돕는지 모르겠지만 그 ‘공헌’이 적자 야구단이 창의적 광고와 부대사업을 포기하고 양보한 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자체 담당자는 광고비와 임대료를 제대로 받아봐야 자기 돈도 아니고 오히려 사업권을 받아간 힘센 사람들의 눈치를 보니 포수 뒤의 광고가 투수의 시선을 방해하고 TV 시청자의 눈을 고문해도 무신경하다. 구단은 무력할 뿐이다.
프로야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사랑이 담겨 있다. 선수는 물론 코치진과 구단 관계자, 응원단,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야구는 돈, 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적자를 보면서도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이유이면서 이른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다. 하지만 더욱 커지는 사업적 불확실성이나 적자를 키우는 불합리한 구조, 상시적 적자가 사업에 주는 무게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경영자로선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로야구는 돈을 벌 수도 있는 스포츠이고 대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애써 부담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훨씬 어렵고 소외된 일들에 그 노력을 투입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여자 핸드볼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코치 월급과 기자재만 지원해도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또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지원이 더 소중한 야구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야구 못지않게 팬덤이 크고 정보통신기술(ICT)이 직접 관련되는 온라인 게임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신세계그룹 이마트와 같이 ‘맡아서 더 잘하겠다’는 회사가 있으면 프로야구단 매각은 충분히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연인이 좋은 사람 만나 더 잘살기를 기원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지만 사람들은 회사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주지는 않는다. 어떤 팬들에게는 야구단 매각이 여전히 ‘돈 생각만 하는 배신’이다.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에 300억원의 적자는 ‘엄살’로 보일 것이니 연고지 시민들과 구단 직원들에게 한순간에 등을 돌리는 매정한 회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팀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다가 다치면 내다 버리는 구단 운영을 보면서 모기업의 ‘비정하고 냉혹한 경영’을 연상하듯이 대중은 야구에서 기업과 경영자의 정체성을 느낀다. 마음을 주었던 시민들과 야구팬들에게 ‘매정한 배신’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확보한 돈으로 무슨 사업을 어떻게 잘해 성과가 있었는지 설명하고 스포츠 지원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차분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구단 직원들에 대한 처우는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는 동료들’에 대한 회사와 경영자의 속마음이 묻어나는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배려는 원래 통장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한번 실망하면 열 번 잘한 일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쩌다 살아난 야구에 대한 로망이 삶을 버텨 주는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으니 부디 잘 마무리해 주길 바란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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