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구도 놓고 '갈등의 골' 깊어져…3월 주총에서 표 대결 불가피하지만 박찬구 회장 우세 예상

[비즈니스 포커스]
금호석유화학 ‘조카 박철완’의 이유 있는 반란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에 전운이 감돈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과 조카 박철완 상무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상무는 금호석화 지분을 10%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다. 삼촌 박찬구 회장(6.7%)보다 많다. 물론 박 회장은 자녀들의 지분(아들 박준경 전무 7.2%, 딸 박주형 상무 0.8%)을 합치면 약 14%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격차가 4%밖에 안 돼 누가 우호 지분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행방이 바뀌게 된다. 현 상태라면 3월 열리는 주주 총회에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표 싸움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영권 분쟁은 지난 1월 박 상무가 박 회장과의 특수 관계에서 이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불거졌다. 이때 박 상무는 자신이 사내이사를, 자신과 우호적인 인사 4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하는 추천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 상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2월 8일 서울지방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주주 명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주 명부 열람 가처분 신청은 경영권 분쟁에서 통상적인 과정이다.

‘조카의 난’은 왜 벌어졌고 박 상무가 노리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왜 삼촌 박찬구 회장에게 칼을 빼들었나

현재까지 박 상무 측의 분쟁 의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박 상무 역시 공시 이후 별다른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주주 제안 내용도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알려졌을 뿐이다. 박 상무를 돕고 있는 법무법인 KL파트너스 측도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박 상무의 경영권 분쟁 배경에 대한 해석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어려울 때 품어준 삼촌에게 비수를 꽂았다는 날 선 비판과 최대 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는 박 상무 측에 우호적인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박 회장과 박 상무의 갈등의 골이 상당히 오랫동안 그리고 깊게 파여 있다는 점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조카의 난은 박 회장과 박 상무 간의 누적된 갈등이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박 상무는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로 한때 금호그룹의 다음 세대 후계자로 꼽혔다. 하지만 그가 25세이던 2002년 아버지 박정구 전 회장의 작고 이후 승계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의 금호석화 지분을 상속받고 추가 지분도 매입하면서 최대 주주에 올랐지만 부친이 없는 상황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박 상무는 박 회장과 금호석화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지만 실제는 불안한 동거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형제의 난이 벌어졌을 때 박 상무는 박 회장이 아닌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2010년 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박 전 회장과의 관계가 어긋났다. 이후 입지가 약해진 박 상무를 챙긴 이는 박 회장이다. 당시 박 상무는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박 상무를 챙겼던 2010년 박 상무는 박 회장이 독단적으로 경영한다는 취지의 항의 서한을 KDB산업은행에 보낸 것도 알려졌다. 이 의견이 묵살된 이후 10여 년간 잡음은 없었지만 박 회장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앙금은 박 상무가 2019년 주주 총회에서 박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기권표를 던지면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7월 단행된 그룹 인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전무는 승진한 것과 달리 박 상무는 승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상무 쪽에서는 부친이 일찍 작고한 후 경영 수업도 받지 못하고 삼촌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수도 있다. 금호석화의 최대 주주이지만 경영에 관여하지 못했던 탓에 불만이 쌓여 왔을 것이란 해석이다.

박 상무가 노리는 것은 경영권일까 엑시트일까
금호석유화학 ‘조카 박철완’의 이유 있는 반란
재계와 증권가에선 박 상무의 다음 행보를 주목한다. 오랜 기간 준비해 승부수를 던진 모양새지만 반대로 실패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론 가능한 박 상무의 의도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개인 최대 주주로서 박 회장과의 공동 경영이나 경영권 장악이다. 박 상무는 자기 자신을 사내이사, 우호적 인물들은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회계 장부 등 민감한 내부 경영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감사위원(사외이사) 교체도 요구했다. 마침 오는 3월 감사위원 4명 중 2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다만 주요 기관투자가 등이 박 상무의 경영권 장악에 우호적일지는 미지수다.

둘째는 박 상무가 경영권 자체보다 ‘부대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이다. 삼촌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과의 ‘어색한 동거’에 마침표를 찍으며 경영권 분쟁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주가를 띄우고 엑시트(투자 회수)해 버릴 수 있다.

만약 박 상무가 금호석화 지분을 털고 나간다면 그가 보유한 지분 10%의 행방도 문제가 된다. 박 상무가 박 회장이 아닌 제삼자에게 매각한다면 금호석화의 경영권 불안은 그가 떠나도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박 상무의 우호 세력은 지분 4~5%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박 상무 제외)의 금호석화 지분율은 14%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고 박 회장이 박 상무의 지분을, 그것도 한껏 주가가 뛴 지분을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주총 표 대결에서 지분 8.16%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2018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해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박 상무의 의도가 무엇이든 일단 오는 3월 주총은 박 상무 측과 박 회장 세력 간 표 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화로선 주주, 그것도 지분 10%를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의 주주 제안을 뭉개고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금호석화 이사회가 주주 제안을 거부할 수는 있다. 상법 363조와 시행령 12조는 주주 제안 거부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회사가 실현할 수 없는 사항 또는 제안 이유가 명백히 거짓이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등이다. 만약 금호석화가 주주 제안 상정을 거부한다면 박 상무 측은 법원에 안건 상정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표 대결이 펼쳐지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박 상무 측이 다소 불리할 수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박 상무(10%)와 우호 세력(4~5%)의 지분율이 박 회장 등 특수 관계인(14%)의 지분율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금호석화를 이끌며 성장해 온 박 회장은 국내외 주주들에게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본격적인 지분 다툼이 시작되면 박 회장 측도 세 결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