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색 갖춘 점포 3~4개만 모여도 입소문, 상권 변화 빨라져
‘숨은 골목 찾기’.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가 2015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꼽은 것이다. 이태원은 그중에서도 잘나가는 ‘골목길’이 유독 많은 곳이다. 꼼데가르송길(한강진역~이태원), 우사단길(이태원 이슬람 문화 거리), 독서당길(한남동~옥수동) 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길이 하나씩 ‘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중에서도 2~3년 사이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길이 있다. 연예인들의 단골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경리단길(국군재정관리단~남산하얏트호텔)이다. 최근에는 경리단 뒷골목까지 그 세력이 뻗어나가는 추세다. 경리단길과 시작점을 마주하고 있는 해방촌길(한신아파트~남산 방향)도 ‘핫 플레이스’로 자주 언급된다. 경리단길이 북적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해방촌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 이태원 상권,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녹사평역에서 10여 분 거리인 경리단길과 해방촌길은 이태원 상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용산 미군부대 인근에 자리한 이태원 상권은 오래전부터 국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이 많이 모여들던 동네다. 미국·유럽은 물론 이슬람 문화까지 혼재된 ‘멜팅 포트(melting pot)’ 같은 곳이다. 1997년 국내 첫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본래 이태원 상권은 이태원1동에서부터 한남2동까지 이르는 1.4km 구간이 핵심이었다. 해밀튼호텔을 중심으로 구두·의류·가방 등을 파는 쇼핑 상가와 각종 음식점·유흥오락시설 등 2000여 개의 상가가 밀집된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집약형 구조’가 ‘분산형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유독 이태원 지역에 수많은 ‘골목길’이 번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지형적인 요인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이태원은 남산을 낀 비탈길에 자리 잡고 있어 대도로를 중심으로 개발이 어려운 곳”이라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이어서 골목마다 개성을 입히기 쉬운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에 들어선 대표적인 골목 상권이 바로 해방촌길과 경리단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접근성이다. 선 대표는 “대부분이 이태원 상권과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자리해 있다”고 말했다. 녹사평역을 끼고 있는 해방촌길과 경리단길도 이 공식에 들어맞는다.
중심 상권의 높은 임대료에 밀려난 ‘모험심’ 강한 사업가들에게 골목은 소자본으로 새로운 실험을 펼칠 수 있는 무대나 다름없다. 여기에 더해 골목길로 사람들을 그러모으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요즘에는 골목길에 특색 있는 가게가 서너 개만 모여도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난다”며 “새로운 상권이 생겨나 성장하고 완성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고 말했다.
◆ 모험심 강한 창업자들의 무대
이는 경리단길만 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 불과 2~3년밖에 안 된 경리단길에는 이미 상권이 포화될 만큼 수많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주말이면 이태원 중심 상권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경리단길 뒷골목과 해방촌 같은 새로운 곳을 찾아 옮겨 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새롭게 주목받는 골목길이라고 하더라도 기본 성격은 이태원의 중심 상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방인들의 근거지’답게 이국적인 레스토랑이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다. 또 관광 상권의 특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주말과 평일의 유동인구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녹사평역의 평일 이용객은 1만4858명이지만 주말에는 하루 1만6557명까지 늘어난다. 이태원역은 평일 3만1664명, 주말 3만8960명이다. 평일 지하철 이용객은 출퇴근족의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지하철역은 평일 대비 주말 이용객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녹사평역은 이와 반대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민영 부동산114 리서치센터팀 연구원은 “해방촌길과 경리단길은 뒷골목이 곳곳으로 뻗어 있는 지형적 구조를 갖추고 있어 골목 상권이 계속 확장해 나갈 여지가 크다”며 “다만 골목 상권이라도 유동인구가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동선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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