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펀드, 자산 매각·채권 늘리기 나서…부동산 등 ‘역발상 투자’ 늘어날 듯
2014년 이후 유가 하락과 저유가의 지속,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상품 수출국에서 운용하는 국부 펀드(SWF)의 보유 자산 운용에 변화가 예상된다. 상품 가격 하락에 따라 재정수지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국부 펀드 등의 자산 매각을 통해 재정을 보전, 유지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관점이다.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국부 펀드의 보유 자산 매각은 자산 가격의 변동성과 자산 배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국부 펀드의 현황과 자산 증가 속도, 운용 방향 등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원자재 붐 타고 연평균 17.9% 성장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부 펀드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안정화 펀드(Stabilization Fund) ▷저축 펀드(Saving Fund) ▷개발 펀드(Development Fund) ▷퇴직연금 펀드(Retirement Investment Fund) ▷외화보유액 운용 펀드(Reserve Investment Fund) 등이다.
안정화 펀드는 중동과 남미 등 원자재 수출국들을 위주로 운용된다. 주로 상품 가격 변동이 가져오는 매크로 환경 변화의 완충 역할을 수행한다. 저축 펀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적립 개념의 펀드다. 원자재 수출국들의 펀드들은 저축 펀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외화보유액 펀드는 국가별로 무역수지와 대외 채무에 대한 신용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유한 자산의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한국의 국부 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외화보유액의 운용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운용되는 펀드로 분류할 수 있다. 또 노르웨이 국부 펀드(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는 안정화 펀드이면서 저축 펀드라는 2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국부 펀드의 자산 규모는 최근 크게 늘어났다. IMF 및 국부 펀드 정보 업체 소버린국부펀드기구(SWFI)에 따르면 2007년 3조2000억 달러에서 2014년 말 7조600억 달러로 2배 정도 늘어났다. 국부 펀드는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도 연평균 17.9%의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이 같은 성장률의 높았던 것은 금융 위기 전까지 원자재의 가격 상승에 따라 원자재 연동 국부 펀드 자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제조 공장’이라는 이머징 국가들의 역할에 기인한 상품 수지 증가가 외화보유액의 증가로 이어지면서 외화보유액 운용 목적의 펀드들이 한국과 중국에 설립됐다. 또한 이머징 국가의 성장률과 선진국의 성장률의 차이에 따라 이머징 국가에 대한 투자 매력이 증가하면서 이머징 국가로 자금 유입이 가속화한 것도 외화보유액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부 펀드의 투자 목적, 자금 출처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 펀드별 자산 배분도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안정화 펀드는 매크로 변화에 따른 자산 매각 가능성을 고려해 유동성이 높으면서 안정성이 높은 국채의 비율이 70% 수준에 달한다. 반면 저축 펀드는 미래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라는 장기적인 투자의 목표를 반영해 주식 및 기타 자산의 비율이 70%를 웃돌고 있다. 퇴직 펀드 및 외화보유액 자산도 투자자산의 장기적인 목표 추구와 높은 운용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주식 및 기타 자산의 투자 비율이 70%를 웃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기타 자산은 부동산, 사모 투자(Private Equity), 인프라 자산 등의 실물 자산, 유동성이 높지 않은 장기 투자자산 등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해 지난 7년간 국부 펀드의 자산이 크게 늘어난 것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이머징 국가의 외화보유액 증가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분간 국부 펀드의 성장세가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낮은 원자재 가격, 선진국 경기 회복에 따른 자금 환류의 지속, 이머징 국가의 소비경제로의 전환 때문이다. 이런 요인에 따라 국부 펀드의 자금 유입이 제한적이거나 펀드 성격에 따라 오히려 자금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펀드별로 보면 원자재에 기반한 안정화 펀드는 매크로 정책 목표에 따라 재정 수지를 보전하기 위해 자산 매각 등에 나설 수 있다. 저축 펀드의 자금 흐름은 둔화되거나 정체될 수 있다. 외화보유액 펀드는 이머징 시장의 소비화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선진국으로 자금이 환류하는 움직임을 보여 보유액이 정체될 수 있다.
실제로 중동의 국부 펀드는 연초부터 자산 매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화 펀드의 성격이 강한 중동 국부 펀드의 성격을 고려하면 자금 운용의 중심이 주식 등 위험 자산보다 채권 자산 등에 집중됐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 금리 인상 전망과 맞물려 원자재 가격의 하향세가 유지된다면 글로벌 채권의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투자 전략…시장 영향은 제한적
최근 들어 국부 펀드의 자산 규모, 투자 경험, 성격에 따라 투자자산의 영역이 상장된 유가증권을 넘어 사모 부채, 부동산 및 인프라 자산 등 실물과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자산의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부 펀드의 투자 영역 확대는 유가증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 시장 가치 평가의 위험도를 감소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국부 펀드의 ‘역발상 투자(Contrarian Investment)’ 전략은 시장 전체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이에 기반을 둔 국부 펀드의 환매 압력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을 살펴보면 아직까지는 시장의 자산 가격에 큰 변동성을 초래하는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원자재 기반의 펀드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국부 펀드들이 있어 자산 가격의 변동을 상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장기적인 운용을 중시하는 국부 펀드의 성격상 운용 자산의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국면에서는 오히려 저평가된, 혹은 할인된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부 펀드가 아닌 이머징 국가의 공적연금·사적연금 시장의 성장으로 글로벌 자산 수요의 증가 요인이 존재한다. 이상으로 볼 때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국부 펀드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 KTB자산운용 해외투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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