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 분업 재편 가능성, 미 대선 등으로 2017년 초 발효 전망

미일 주도 메가 FTA…‘아태 제도 통합 구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협상이 10월 5일(미국 현지 시간) 타결됐다. 올 초부터 협상 타결을 시도했지만 회원국 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난항을 겪다가 미국의 리더십 발휘와 회원국 간 절충을 통해 5년 이상 소요된 협상이 드디어 종착점에 도달했다.
TPP는 미국·일본·캐나다·멕시코·페루·칠레·호주·뉴질랜드·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싱가포르 등 환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참여하는 무역자유화 협정이다. 이 협정은 2006년 발효된 싱가포르·칠레·뉴질랜드·브루나이 등 4개국의 ‘P4(Pacific 4)’ 협정이 출발점이며 미국의 참여 이후 2010년부터 TPP라는 명칭으로 정식 협상이 시작됐다.

자동차·쌀 놓고 막판까지 조율
TPP 회원국은 현재 12개국까지 확대됐다. 특히 2013년 일본의 가입 이후 TPP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전 세계 2위, 4위 무역 대국이자 상호 무역의존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지 못했지만 TPP라는 장을 통해 처음으로 양국 간 전면적인 시장 개방을 논의하게 됐기 때문이다.
TPP 협상은 TPP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기본적으로 12개국 간 상호 FTA를 체결하는 것과 같다. 12개국이 합의한 원산지 규정, 지식재산권, 환경 및 노동 등의 무역 규범은 공통적으로 적용되지만 상품 분야는 TPP 회원국 각각이 상대 11개국에 대해 상이한 관세 인하 또는 철폐 스케줄을 설정한다. 예상보다 협상이 지연된 이유도 12개국 간에 상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작업 자체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더구나 미일 양국 간 협상에서 민감 분야의 시장 개방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컸는데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분야 중 하나가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철폐 기간과 미국산 쌀에 대한 일본의 시장 개방 이슈였다.
TPP가 발효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6.3%, 교역의 25.8%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협력체가 탄생하게 된다. TPP를 통해 역내 교역 비율이 높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과 일본을 필두로 한 아시아 지역 간 교역 및 투자가 증대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역내 산업 간 또는 산업 내 분업 체계가 변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TPP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TPP는 실질적인 경제 통합에 비해 제도적 통합 수준이 낮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탄생하는 최초의 경제협력체라는 점이다. 현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협력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향후 회원국이 확대되고 경제 통합의 효과가 가시화되면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제도적 통합을 이끄는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TPP는 환태평양 지역의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일본이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가 크다. 특히 일본은 TPP라는 외부적 충격을 통해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개혁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TPP 협상이 타결됐지만 아직까지 합의 내용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협상 과정에서부터 TPP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협정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장 중요한 상품 무역에서 전 품목을 협상 대상으로 하고 있고 원칙적으로 개방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FTA에서 예외 없는 개방을 추진한 미국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상품 무역에 있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방이 예상되며 서비스 및 투자 협정도 개방 수준을 높이기 위해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TPP 협정문은 총 30개 챕터로 이뤄져 있고 세계무역 질서의 새로운 규범과 이슈를 선도하는 차원에서 환경·노동뿐만 아니라 규제 조화, 경쟁력 및 비즈니스 원활화, 중소기업, 개발 등의 분야 횡단적 사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협정문 공개에 시간 걸릴 듯
통상적으로 협상이 타결된 이후 잔여 쟁점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 협정문 전체에 대한 법률 검토를 끝내야만 협정문이 공개된다. TPP 협정문도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친 후 적어도 한두 달 이후에나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후 번역 작업 등의 일정을 고려하면 일러야 2016년 상반기에나 정식 서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식 서명 이후에는 12개국이 각자 국내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의 일정상 회원국의 비준이 이르게 진행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TPP가 발효되는 시기는 일러야 2017년 초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2013년 12월 TPP 참여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이후 TPP 참여국들과 예비 양자 협의를 진행돼 왔지만 TPP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12개국 간 협상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한국 정부는 TPP 협상의 합의 내용이 공개된 이후 참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TPP 협상은 비밀 원칙하에 진행돼 왔기 때문에 12개국 상호간 상품 양허 현황과 새로운 형태의 무역 규범은 협정문이 공개돼야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일본이 가장 민감한 쌀 품목을 비롯한 농산물 분야에서 어느 정도 개방했느냐와 미국이 일본에 대해 자동차 및 부품의 관세 철폐 기간을 어떻게 설정했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TPP 12개국 중 10개국과 FTA를 발효했거나 발효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32쪽 참고) TPP 참여 시 일본과 멕시코의 시장 개방과 함께 기존 FTA를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제조업 강국인 일본에 대한 시장 개방은 일부 경쟁 관계 또는 비교 열위에 있는 산업에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TPP 협정문이 공개되면 모든 분야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 및 국익을 고려해 가입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