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프로야구 경영학
대중에게 기업의 정체성을 각인하는 프로야구, 막상 국내 리그는 메이저리그에 익숙해진 팬들에게 초라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국내 리그 나름의 감동과 정체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프로야구 경영학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대통령녹색성장위원회, 대우그룹.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
아이들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봉인했던 야구의 로망이 다시 풀렸다. 프로야구 전 게임이 중계되고 하이라이트에 전문가 토크까지 나오는 데다 경기 수준은 물론 방송 중계나 구단 운영까지 엄청나게 달라졌다. 프로야구 관계자, 스포츠 경영 전문가들에게는 외람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첫째, 프로야구는 기업의 정체성이 전달되는 채널이다. 구단 운영을 모기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대중은 구단 운영과 인사에서 기업과 경영자의 정체성을 느끼게 된다. 경영 서적이나 언론 경제면에 흔히 나오는 기업 문화, 리더십 스타일은 대중에게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대부분이 빤한 말들이고 카리스마 경영인지, 독불장군인지, 섬세함인지, 소심함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은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다가 다치면 내다버리는 감독을 보며 (이런 짓을 조장하는) 모기업의 ‘비정함’을 생각하고 개성 없이 자리만 챙기는 감독을 정리하는 구단을 보면서 ‘과단성’을 느끼게 된다. 감동 없는 연승, 얼빠진 플레이는 그대로 기업의 정체성으로 각인된다. 관중석에서, TV앞에서 3~4시간 동안 회사 이름을 들어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니 당연한 일이다.
둘째, 프로야구는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있다. 강정호·추신수 선수의 활약이 중계되면서 야구의 인기는 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눈높이가 메이저리그(MLB)에 맞춰지면 국내 프로야구는 ‘수준 낮은 리그’가 될 수도 있다. 수입 고가품에 초토화된 고급 의류 시장, 사람이 날아다니는 NBA 농구에 빛바랜 우리 농구와 비슷하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를 어떻게 뽑고 운용하느냐가 전력의 핵심이 됐다. 국내 스타 선수들의 위상이 다소 초라해진 셈인데, 펄펄 나는 외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선 통하지 않았고 국민 스타가 마이너리그도 버거울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수십억 원대의 몸값은 외국인 선수 숫자를 제한한 ‘수입 규제’ 때문이란 점도 드러났다.
글로벌 경쟁의 전략을 생각해 보자. 우선 프로야구가 살아남으려면 ‘그래도 죽기 살기로 하면 메이저리그 못지않다’는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해외 진출 선수들의 성공, 외국 리그와의 선제적 교류는 이런 ‘믿음’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어린 선수들이 국내 리그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외로 가면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해외로 유학 가면 국내 일자리가 막히는 셈이다. 스타 선수들은 국내에서 할 만큼 해야 외국에 갈 수 있다. 자칫 ‘단물 빠진’ 다음에야 갈 수 있다면 구단의 본전 빼먹기에 이용될 뿐이다. 외국 리그와 좀 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면 선수와 경기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가혹한 마이너리그 환경, 한국 선수에 대한 편견이 숙제라면 외국 구단에 대한 투자나 인적 교류로 풀 수 있다. 구장을 쥐고 있는 지자체들의 헐값 광고만 제대로 관리해도 재원은 마련된다.
글로벌 전략의 다른 한 축은 국내 팀과 선수에 대한 팬덤(fandom)이다. 과거 고교야구의 인기는 경기력이 아니라 감동과 스토리에서 비롯됐다. KBO가 지역 연고를 넘어 리그 자체의 정체성과 흡인력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연습생 신화의 감동은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무명 선수의 소박한 재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