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것없는 집안 여식을 왕비로 앉혔더니 날 배신해?”

정략결혼에 실패한 대원군
소설 ‘삼국지’에서 천하제일의 재상은 단연코 제갈량이다. 공명은 관옥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흰 학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羽扇)를 부친다. 나관중이 묘사한 공명의 모습은 흡사 신선의 풍채다.

공명은 항상 부채를 지니고 다녔다. 공명의 부인 황 씨는 공명에게 평소 대화를 할 때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리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전 당신이 얼마나 큰 포부를 가진 사람인지 알아요. 하지만 주군인 유비와 조조·손권 등 어떤 사람을 언급할 때마다 안색이 확 바뀌더군요. 당신이 도모하는 그 이상을 실현하려면 표정 관리부터 제대로 해야 해요!”


짝짓기에는 일정한 법칙 존재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남녀가 서로 짝짓기를 하는 데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철칙에 가깝다. 여성들은 신랑감을 고를 때 자신의 2세를 잘 양육시킬 능력, 즉 권력이나 경제력을 가진 남자를 가장 선호한다. 반면 남성들이 선호하는 신붓감은 자신의 DNA를 전파하는 데 유리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다. 즉 임신할 가능성이 높은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공명의 부인 황 씨는 소문난 박색이었다고 한다. 천하의 제갈량이 이런 보편적 원칙을 무시하고 왜 추녀 황 씨와 결혼했을까. 제갈량은 유비의 삼고초려를 받을 즈음에 남양에 머무르고 있었다. 황 씨의 아버지 황승언은 남양의 명사이자 소문난 재력가였다.

황승언이 먼저 공명을 사위로 점찍었다. “자네가 결혼 상대를 구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네. 내 딸이 좀 못생겼지만 재능으로는 자네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자네 의향은 어떤가?”

제갈량은 즉각 황승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놀랐다. 그러나 공명은 딸을 본 것이 아니다. 장인과 그 가문을 본 것이다. 그 덕분에 공명은 부인의 내조에 힘입어 훗날 촉나라 재상이 될 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제갈량의 마인드는 정략결혼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정략(政略)결혼은 신랑 신부 두 사람의 내적인 감정과는 무관하게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다. 정략결혼은 쌍방이 우호적인 관계라면 동맹을 강화할 것이고 적대적인 관계라면 적대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거나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 20여 명의 딸들과 결혼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흥선대원군이 아들 고종의 아내로 민치록의 딸 민자영을 간택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에 신물이 났던 대원군. 그는 비록 인현왕후의 친정 집안이긴 했지만 이미 몰락해 아버지도 없고 변변치 않은 혈육도 없는 민 씨 집안의 민자영을 간택했다.

그런 민자영이 훗날 명성황후가 돼 자신을 배신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집안 여식을 왕비로 앉혔더니 날 배신해?” 어쨌든 대원군이 민자영을 간택한 심리 역시 정략결혼 마인드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구나!”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시의 주인공은 전한시대 왕소군(王昭君)이다. 양귀비·서시·초선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그녀도 정략결혼의 희생자다. 한족이면서도 흉노족 추장의 부인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한 맺힌 삶을 살아내야 했던 그녀에게 봄이 온들 봄 같았겠는가.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도 정략결혼을 주제로 한 비극이다. 에스파냐 황태자 돈 카를로는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스와 약혼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가 개입되면서 공주는 돈 카를로의 아버지 필리페 2세와 정략결혼하게 된다. 부자가 한 여인을 놓고 삼각관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시 새롭게 해요. 사랑에 취해 우리를 하나로 한 맹세를! 우리는 말하고 하늘은 듣고 계시네.” 곧 닥쳐올, 연인 관계가 모자 관계로 바뀌는 비극적인 운명을 짐작조차 못한 채 두 연인은 사랑의 노래를 합창한다.

여포와 원술도 정략결혼으로 사돈이 될 뻔했다. 원술이 제 분수를 모르고 황제를 참칭하고 국호를 중(仲)이라고 했다. 이 일로 원술은 공공의 적이 되면서 한순간에 민심을 잃었다. 당황한 원술은 주변과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그 전략의 일환이 자신의 아들과 여포의 딸을 결혼시키는 일이었다. 멋모르는 여포는 선뜻 이를 승낙했다가 참모 진규가 말리자 결혼을 취소하면서 원술과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돈 카를로보다 더 비극적인 사람은 후한 헌제일 것이다. 헌제는 황제인 자신을 옆에 끼고 호가호위하는 조조를 제거하려다 발각된다. 그는 사랑하는 동귀비에 이어 복황후와 복황후와의 사이에 난 아들마저 잃게 된다. 조조는 비정하게도 그의 세 딸을 헌제에게 시집보낸다. 처자식을 죽인 원수를 장인으로, 원수의 딸을 아내로 맞아야 했던 헌제보다 더 기구한 삶도 드물지 않나 싶다.


여포와 원술도 정략결혼으로 사돈 맺을 뻔
여기에 비하면 유비의 정략결혼은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유비는 그의 아들 유선을 장비의 두 딸과 결혼시킨다. 경애황후 장 씨와 장황후 둘 다 장비의 여식이다. 의형제간이면서 군신의 관계이기도 한 유비와 장비. 이들이 자식끼리 결혼시킨 것은 형제간의 의리와 군신간의 의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정략결혼이었다.

유비는 아들 유선을 정략결혼시켰지만 자신도 그랬다. 유비는 유선이 어린 시절 오나라 손권의 여동생 손부인과 정략결혼한다. 손부인은 손견의 딸이자 손책과 손권의 이복 여동생이다. 그녀는 무술도 뛰어난데다 무장한 시녀 100명을 거느리고 다녀 유비가 두려워하고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손부인과 결혼하게 될 당시에 유비는 사면초가였다. 북쪽으로는 조조의 위나라가 위세를 떨치고 있고 동쪽으로는 손권의 오나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나라도 입장은 비슷했다. 자연스레 오나라와 촉나라는 정략결혼을 통해 조조의 위나라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손부인은 촉오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물론 촉오 동맹이 성립하기 전에 조조가 사촌 동생 조인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조카딸을 손책의 동생 손광에게 시집보낸 일도 있다. 또 손책의 사촌 형인 손분의 딸과 자신의 셋째 아들 조창을 정략결혼시킨 일도 있다.


사족: 동서를 막론하고 정략결혼의 배경에는 대개 일부일처제가 아니라 일부다처제라는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략결혼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자식을 혹은 친인척의 자녀를 볼모삼아 ‘상호부조의 보험’에 든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다.

수많은 정략결혼의 이면에서 얼마나 많은 갑돌이와 갑순이가 눈물을 흘렸을지, 얼마나 많은 등소군이 봄이 와도 봄이 봄 같지 않은 그런 한 맺힌 세월을 보냈을지 모를 일이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