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경력은 기초 역량 지표…대체 위해선 정교한 평가 시스템 필요

‘스펙 초월’ 채용의 함정
우리 회사는 그동안 직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들의 학력과 경력을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평가해 왔습니다. 학력과 경력이 좋은 직원들 가운데 일부는 조직 적응력과 장기근속에서 문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응을 잘하는 직원들의 업무 성과는 좋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학력과 경력이 좋고 조직 적응력과 장기근속에 문제가 없는 직원을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정부가 ‘스펙 초월 채용’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기업들도 채용할 때 학력이나 어학 능력,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특히 정부나 일부 대기업의 관계자들은 직원 채용 때 학력과 경력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걸까요.


정부가 공기업을 중심으로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스펙’이 아니라 ‘역량’을 기반으로 채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역량 기반 채용을 정부 부처와 공기업에 적용해 대학생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 경쟁 열풍을 누그러뜨리고 싶어 합니다.


필요한 직무 역량 어떻게 평가하나
스펙은 이른바 어떤 사람의 기초 역량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펙 중심의 채용을 하는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이력서에서 학력이나 언어 능력 같은 일반적 능력과 자질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이들은 경험도 동아리 활동이나 해외 연수, 사회봉사 활동 같은 것을 중시합니다. 면접에서도 상식이나 논리력, 추리력, 판단력, 대외 관계 능력, 리더십 같은 것들을 살피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똑똑하고 많이 배운 사람을 뽑게 되는 것이죠.

이에 비해 역량은 한마디로 특정 직무를 잘할 수 있는 성향이나 자질, 지식과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즉 일반적으로 역량이 있는 직원을 뽑는 게 아니고 담당할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갖고 있는 직원을 뽑는 것이죠. 신입 사원 전형 절차가 경력 사원과 유사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직무 역량에 따라 직원을 선발하려면 직무별로 평가 요소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 직무를 잘하고 성과를 잘 내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을 추출해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후보자들을 선발하는 게 역량 기반 선발입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후자가 더 합리적인 채용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 직무를 수행할 때 굳이 모든 역량이 뛰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조직 적응이나 장기근속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전반적인 역량에서 앞서 있더라도 특정 직무의 역량에서 뒤처진다면 그의 업무 만족도는 떨어지고 성과도 부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갖고 있더라도 다른 직무의 역량이 탁월하다면 그는 다른 직무를 찾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무에 필요한 역량 중심으로 직원을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 직무에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직무 역량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오랫동안 꼼꼼하게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도출할 수 있습니다. 한두 명이 뚝딱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후보자가 그런 역량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후보자가 해당 직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평가하려면 체계적인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직무 적성검사를 포함해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선발 절차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역량 기반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인 역량 면접에서 오랜 기간 많은 면접 경험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필수적입니다. 짧은 면접 시간 동안 후보자들이 해당 역량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후보자로부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어야 합니다. 역량 면접은 후보자의 의견이나 생각이 아니라 과거 행동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면접관들은 면접 과정에서 후보자의 과거 행동을 통해 역량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역량 기반 채용은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채용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준비가 제대로 된 회사만이 채택할 수 있는 채용 방식입니다. 만약 직무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잘못 파악한다면 엉뚱한 직원을 뽑게 됩니다. 직무 역량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선발 과정에서 후보자가 해당 역량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면 역시 잘못된 후보를 뽑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부머리’보다 ‘일머리’가 중요
특히 역량 기반 채용에 관한 준비가 부족한 곳에서 섣부르게 이 제도를 채택한다면 스펙 채용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학력과 같은 스펙에 기반하면 최적의 인재를 뽑지는 못해도 직무 수행이 아주 불가능한 직원을 뽑는 실수는 줄일 수 있습니다. 범용성 인재를 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량 기반 채용은 제대로 하면 최적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직무 수행 능력이 부족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직원을 뽑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은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체계적 채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채용 경험도 많은 대기업은 역량에 기반해 직원을 채용하는 게 좋습니다. 회사의 브랜드 파워를 기반으로 스펙이 뛰어난 신입 사원을 대거 확보한 뒤 계열사별로 배치해 교육 훈련하는 방법도 인재 확보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직무별로 직원을 뽑는 것도 장점이 많습니다. 최근 들어 상시 채용이 확산되는 것은 기업의 브랜드 파워에 기반한 스펙 중심의 채용보다 직무별로 역량에 기반해 채용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들의 조직 구성과 업무 시스템이 변하면서 역량에 기반한 상시 채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역량 기반 채용과 관련해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특정 직무의 역량을 기반으로 채용한 직원들은 업무 영역 확장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겁니다. 즉 한 가지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뽑았기 때문에 그가 다른 업무를 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순환 보직을 전제로 하는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을 때 특정 직무에 한정되지 않는 공통 역량에 기반해 채용해야 합니다. 역량 기반 채용이 모든 스펙 기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회계사를 뽑을 때 회계사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은 역량 기반 채용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귀하의 회사가 정교한 채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고 역량 기반 채용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면 채용 방식을 바꿀 때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펙에 기반한 채용이 전혀 엉터리는 아닙니다. 학력은 직원을 채용할 때 매우 효과적인 평가 기준의 하나입니다. 정부나 대기업들이 학력을 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학력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학력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귀하의 회사에서도 학력만으로 직원을 뽑기보다 다른 요소들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력만으로 직원을 선발하면 ‘공부머리’만 좋은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공부머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관계머리’도 있고 ‘생활머리’도 있습니다. 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일머리’입니다. 아무리 공부머리가 뛰어나도 일머리가 부족하면 업무에서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직원을 채용할 때 일머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머리가 공부머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머리가 좋다고 일머리가 꼭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머리가 뛰어난 직원을 뽑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스펙을 참고하되 역량적 요소를 더 많이 반영하도록 채용 방식을 조금씩 바꿔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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