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증권사는 왜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나 [비즈니스 포커스]
“NH투자증권이 이색 브랜드 팝업 ‘엔투, 나이트(N2, NIGHT)’를 오픈합니다.”

증권사의 팝업이라니. 시작부터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증시 방향이나 투자 전략을 소개하고 나갈 땐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가입 시 혜택이나 사용법이 적힌 용지를 받을 게 뻔했다.

여의도 어디에 팝업을 열었나 찾아보다가 눈이 커졌다. 성수동이라고? 낯이 뜨거워졌다. 샤넬, 탬버린즈, 라코스테처럼 MZ세대의 선망템이거나 포인트오브뷰, 원소주처럼 MZ세대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이거나 둘 중 하나는 충족해야 했다. 팝업의 성지 성수동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렇지 않으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성수동에 열린 증권사의 팝업 스토어. 파리가 날리진 않을까 우려가 앞섰다. “나라도 한 자리를 채워야겠다.” 처음엔 살신성인이었다. # 성수 맛집 된 증권사 팝업
증권사는 왜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나 [비즈니스 포커스]
‘0석’,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눈을 의심했다. 파리는커녕 내 한 자리 찾기도 어려웠다. 사전 예약이 필수인 행사는 이미 ‘완판’.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1석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알고 보니 ‘혜자 이벤트’로 MZ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뒤였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살펴본 팝업 홈페이지는 증권이나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명상부터 웰니스 식사, 핫한 명사들의 강연과 밤을 달리는 러닝까지. 사실상 팝업 스토어의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유통도 패션도 아닌 증권사가 기획했다기엔 팝업의 메시지가 신선했다.

회사 측은 이번 ‘엔투, 나이트’의 행사 의도가 ‘투자’가 단순히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성장시켜주는 일상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이 지향하는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에 체험을 통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 팝업 공간을 오픈했다는 설명이다.

슬로건은 ‘자기 성장의 시간, 밤에 투자하세요’로 ‘N2, 나이트’란 팝업 명은 NH투자증권을 줄인 ‘엔투(N2)’에 업무를 마친 ‘밤’ 시간을 활용해 자기 성장을 한다는 점에 주목해 ‘나이트’를 붙였다고 했다. 이 공간을 통해 자기 성장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당찬 포부였다.

기자도 주중으로 선택지를 넓히고 나서야 겨우 한 자리 예약이 가능했다. 지난 5월 17일 MZ들의 성지라 불리는 성수동 연무장길에 도착했다. 길마다 자리한 팝업 매장 앞에는 브랜드 로고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는 이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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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팝업 매장에 눈을 뺏기다가 이색적인 공간이 나왔다. 높이 6m에 달하는 30여 그루의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룬 공간, 지도를 보니 오늘의 목적지. NH투자증권의 팝업 스토어 ‘엔투, 나이트’다. ‘N2’ 로고가 커다랗게 쓰인 건물 외관의 옆으로 180평의 넓은 야외 공간을 나무숲으로 꾸몄다.

어디에도 NH투자증권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주식투자를 하는 이라면 보였을 것이다. ‘나무와 N2’, NH투자증권의 MTS인 ‘나무증권’과 NH투자증권의 약자인 ‘엔투’의 이미지였다.

아직 땅거미가 내려앉지 않은 시간, 나무숲이 된 행사장 밖 야외 공간에는 해먹과 빈백 소파가 깔려 있었다. 성수동의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던 이들도 하나둘 자리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주최 측은 180평의 야외 공간에 도심 속의 숲을 재현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쉼터로 구성했다고 전했다.
증권사는 왜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나 [비즈니스 포커스]
내부로 입장하면 팝업 스토어의 메인 공간이 등장한다. 아파트 10층 높이 크기로 설치된 초대형 LED 화면에서는 ‘N2, NIGHT’를 소개하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낮에도 행사장 내부는 깜깜하다. ‘밤 시간’을 활용해 자기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행사의 기획 의도이기 때문에 조명에도 신경을 쓴 듯했다. 잔잔한 음악은 이곳이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성수동이란 점을 단번에 잊게 만든다.

행사의 첫 프로그램은 자가진단 테스트를 통해 4가지 체질 중 자신의 체질과 관리법을 알아보고 자신의 체질에 맞는 음료와 디저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성수동 인기 카페인 ‘아우프글렛’이 함께해 디저트의 질을 높였다. 선착순 300명에게 디저트와 음료를 제공하는데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매진’이라고 한다.

디저트를 맛보고 나면 힐링 나이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7명의 명상 테라피 전문가들이 리딩 명상, 싱잉볼 명상, 아로마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15분 동안 진행하는데 기자가 참여한 날에는 싱잉볼 명상이 진행됐다.

싱잉볼을 두드려 나오는 음과 울림 파장에 집중하면서 15분가량 자기 명상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건강식이 제공된다. 웰니스 전문업체인 슈리베다가 제공한 독일식 통밀빵과 샐러드, 허브소스에 버무려 오븐에 구운 뿌리채소 등이다. 팝업이라고 대충 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알찬 한 그릇 식사다. SNS상에서는 ‘#성수맛집’으로 ‘N2, 나이트’가 소개될 정도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주 3회 자기 성장의 목표를 탐색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좁은 의미의 투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성장에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미 다 마감됐지만) 빌딩의 신 박준연의 투자 강의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아트테크 강연을 비롯해 이동진 평론가, 신영철 의사, 유현준 대표의 인문학 강의 등도 커리큘럼에 포함됐다. 6월 5일까지 운영되는데 마지막 주차 강연을 제외하면 모두 전석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은 ‘초여름밤 성수동 달리기’라는 주제로 나이트 러닝도 진행된다. 이미 3일 차 모두 마감이다.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서울숲까지 5km 넘게 줄 지어 달리는 장관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는 왜 성수동에 팝업을 열었나 [비즈니스 포커스]
‘투자 문화’ 리드하는 #엔투‘엔투, 나이트’는 NH투자증권의 슬로건인 “투자, 문화가 되다”를 공간 내에 해석한 프로그램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19년부터 “투자, 문화가 되다”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브랜딩 활동을 전개해왔다. 슬로건은 투자 행위가 단순히 수익률을 추구하는 결과 지향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을 지향하는 행위가 돼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올해는 ‘당신의 투자, 문화가 되다’로 브랜드 슬로건을 재구축했다.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려 하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중심에 둬 브랜드 비전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번 팝업은 브랜드 전략의 시작에 불과하다. 회사 측은 앞으로도 N2만의 차별화된 오프라인 경험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윤병운 NH투자증권 대표는 “‘당신의 투자, 문화가 되다’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일관된 브랜딩을 진행하고 NH투자증권만의 브랜드 레벨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고객 경험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문을 연 행사의 만족도는 꽤 높은 수준이다. 5월 21일 기준으로 2만9682명이 다녀갔다. 가고 싶어도 주말 타임은 ‘마감’이어서 못 간다는 이들도 많다.

팝업 스토어 그 어디에서도 계좌 개설이나 상품가입을 유도하지 않았지만 팝업 공간에 방문한 이들에게 MTS 나무증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기 성장 지원금을 줌으로써 팝업의 효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행사를 기획한 노유미 NH투자증권 ESG본부 차장은 “일반적인 금융권에서 이야기하는 수익률, 수수료, 상품가입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투자’라는 것을 매개체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성장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NH투자증권이 그분들의 라이프 파트너가 되어드리겠다는 진심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