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반도체 필수…인텔·퀄컴 등 글로벌 업체 ‘올인’, 국내 기업도 ‘박차’

사물인터넷에 반도체 업계 왜 반색하나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이자 한 해 정보기술(IT) 트렌드 전망의 장인 CES 2015에서 핵심 화두는 사물인터넷(IoT)이었다. 그간 IoT가 뜬구름 잡기에 가까웠다면 이번 CES에선 세계 주요 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IoT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구체적인 기술을 시연했다. CES가 주관하는 전미가전협회(CEA) 캐런 추프카 수석 부사장은 “CES 2015에서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모습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IoT는 사람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사물과 소통하는 환경을 의미한다. CES에선 냉장고 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스마트 워치가 이를 알려주고 방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조명이 깜빡이는 등 미래 가정의 모습이 펼쳐졌다.

시장 분석 기관인 머시나 리서치(Machina Research)에 따르면 2022년 세계 IoT 시장 규모는 1조2000억 달러, 한국은 22조8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모바일 AP 두뇌 역할 할 것으로 기대
IT 기업들은 IoT를 전략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다. CES 2015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CES 2015를 통해 자체 개발한 개방형 운영체제(OS) ‘타이젠’과 ‘웹OS 2.0’을 공개하고 이를 IoT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스마트 홈의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TV가 주를 이루는 가전 전시회이지만 올해 CES에는 인텔·퀄컴·엔비디아 등의 반도체 업체의 참석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IoT에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업계가 IoT에 반색하는 이유는 대표 수혜 업종이기 때문이다. 흔히 IoT의 4가지 요소로 처리(프로세서)·기억(저장)·인식(센서)·전달(통신)을 꼽는다. 이 가운데 기억을 담당하는 게 메모리 반도체다. 단순 저장보다 복잡한 연산 작업이 필요한 처리는 시스템 반도체 영역이다. 센서와 통신에도 반도체가 필요하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센서와 반도체 칩이 IoT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삼성전자 반도체가 IoT 구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20여 종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는 초소형 후각 센서, 미세 움직임을 파악하는 동작 인식 센서, 임베디드 패키지 온 패키지(ePOP) 반도체(모바일 AP·모바일 D램, 낸드플래시를 하나로 묶은 웨어러블 전용 반도체)를 직접 소개한 것도 가전 시장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에 반도체 업계 왜 반색하나
쉽게 말해 IoT의 개념은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각각의 사물에 카메라와 같은 센서와 통신 칩 등이 필요하고 본격적인 IoT 서비스가 시작되면 그만큼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다는 얘기다. 단순히 센서를 인지하는 단계를 넘어 필요한 정보로 가공하고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두뇌’와 같은 프로세서가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여러 기능을 묶어 하나의 칩으로 ‘융합’하는 시스템 온 칩(SOC)의 기술력을 확보해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는 IoT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퀄컴은 강점인 모뎀 칩(통신칩)에 무선 기능을 추가하는 IoT 전략을 가지고 있다. CES 2015 퀄컴 전시관에는 IoT를 적용해 만든 콘셉트 카 등이 선보였다. 퀄컴 관계자는 “이들 제품에 우리 반도체가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은 360도 방향을 한 번에 촬영하는 드론,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는 로봇 등을 전시했다. 인텔 반도체가 이들 제품의 두뇌로 쓰인다. 인텔은 본사 차원에서 IoT 전담 조직을 가동 중이다. 이 밖에 그래픽 처리 장치(GPU)를 만드는 엔비디아도 스마트 카용 센서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엔비디아 반도체를 탑재한 아우디 자율 주행 자동차 ‘호켄하임’은 실리콘밸리 엔비디아 본사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운전자 없이 달려오기도 했다.

최대 반도체 설계 자산(IP) 업체인 ARM은 현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TI·프리스케일 등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과 협력해 IoT 시장 공략을 위한 생태계를 구성 중이다.


소프트웨어와 융합해야
국내에서 반도체는 수출 1위에 해당하는 효자 산업이다. 하지만 위상에 걸맞지 않게 시스템 반도체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성장 동력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확대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달았다. 비증으로 볼 때 2 대 8로 훨씬 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IoT 시대엔 특히 시스템 반도체가 주역 역할을 한다. 그동안 수요가 없어 마땅히 투자하지 못했던 기업들도 새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시스템반도체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경기 평택에 총 15조 원을 들여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생산 라인을 세운다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도 시스템 반도체 설계 인력을 대폭 보강하는 중이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를 모두 가지고 있고 이와 별개로 세트 사업을 영위하고 있어 IoT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의 조건이나 요구 사항을 잘 알고 있다”며 “전 세계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위탁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IoT의 역량은 융합 능력으로, 미세 공정에 조 단위 투자를 하지 않아도 현재 장비와 인력을 활용해 여러 기회를 만들 수 있어 매력적인 사업이다.

긍정적인 대목은 삼성전자가 영위하는 시스템 LIS 사업의 실적 개선이다. 최첨단인 14나노 핀탭(FinFET) 공정 기반의 파운드리 사업이 애플의 AP(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스로 스마트폰의 CPU에 해당)인 A9 수주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지난해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업계에선 올해 흑자 전환해 2분기께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최근 AP는 옛날 AP에 퀄컴의 통신 칩을 더해 통합 칩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세 군데에서만 글로벌 파운드리를 한다. 삼성이 대만 TSMC에 빼앗겼던 물량을 되찾으면서 AP 비즈니스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LG전자도 자체 모바일 AP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IoT시대 모바일 AP의 활용처가 크게 늘 것으로 관측되며 포기할 수 없는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AP 이외에 감가상각이 끝난 메모리 공장을 시스템 반도체 라인으로 활용하는 중고(Used) FAB 사업도 주목해 볼만하다. 카메라 반도체 칩인 시모스 이미지 센서(SMOS), DDI(Display Driver IC:디스플레이 구동 칩), 스마트폰용 PMIC (Power Management IC), 퀄컴 통신 칩 위탁 생산(파운드리) 등 4가지 영역에서 중국 등 해외와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기업은 시모스 이미지 센서와 파운드리 사업에서 비교적 강점을 갖는다.

IoT에 탄력이 붙으면 모바일 AP 등 시스템 반도체 확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모든 반도체 업계에 핑크빛 성장 가능성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태희 교수는 “메모리 반도체가 치킨게임을 했듯이 IoT 시대 시스템 반도체 중에서도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존 강자들이 계속 독식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소·중견기업 육성 차원에서 생각하면 국내 기업 중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별로 없어 정부 육성 정책과 연구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현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SW-SoC 박사는 운영체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박사는 “반도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며 “시스템 반도체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통합해야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