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윈-윈 구조…시장 침체로 존재 의미 사라져
매년 이사철이 돌아오면 전셋값 상승으로 고통 받는 서민의 모습이 보도된다. 그런데 전세난의 원인을 최근의 부동산 거래 정상화 조치와 금리 인하에 두고 금리가 인하되면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넣어 둬도 예전보다 이자 수익이 적기 때문에 집주인(임대인)들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임대 시장에서 전세 물건이 점점 귀하게 되고 이에 따라 전셋값이 급등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그들의 논리가 옳다면 금리 인하가 전세난의 한 원인이니 금리를 올리면 전세난이 잡힐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금리보다 집값 상승률이 더 큰 변수
어떤 사람이 5억 원짜리 집을 사서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 3억 원을 은행에 2% 금리로 예치했다고 가정하자(계산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부대비용이나 세금은 없다고 가정한다). 이때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연간 이익은 은행 이자 600만 원(=3억 원×2%)뿐이다. 차라리 집을 사지 않거나 집을 팔아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1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그러므로 집을 사서 전세를 줄 이유가 없다.
그러면 일부 전문가의 주장대로 금리가 인상돼 10%가 된다면 어떨까. 이때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연간 이익은 은행 이자 3000만 원(=3억 원×10%)이다. 이때 집을 사지 않거나 집을 팔아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5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아무리 고금리라도 집을 사서 그 일부인 전세금을 예치하는 것보다 집을 사지 않고 5억 원 모두를 예금하는 것이 훨씬 수익이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금리를 올려도 전세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집값 상승률이 1%라고 가정해 보자. 금리가 2%일 때는 집을 사지 않는 경우는 1000만 원(=5억 원×2%)의 이자가 생긴다. 하지만 집을 사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할 때는 은행 이자 600만 원(=3억 원×2%)과 집값 상승액 500만 원(=5억 원×1%)을 합해 1100만 원의 이익이 생긴다. 저금리 때는 집값이 1%만 상승해도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이익인 것이다. 그러면 금리가 10%라면 어떨까. 집을 사지 않고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5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하지만 집을 사서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하면 은행 이자 3000만 원(=3억 원×10%)과 집값 상승액 500만 원(=5억 원×1%)을 합해 3500만 원의 이익이 생긴다.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1500만 원이나 손해인 셈이다.
집값 상승률이 같은 1%라고 하더라도 저금리 때는 집을 사는 것이 이익이지만 고금리 상황에서는 집을 사서 전세를 주는 것은 손해다. <표1>이 이를 정리한 것이다. 고금리(10%) 상황에서는 집값 상승률이 4%를 넘어야만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다.
이번에는 5억 원짜리 집을 사 전세를 4억 원에 줬다고 가정해 보자(전셋값 비율 80%).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전셋값 비율이 높을수록 집을 사 전세를 주는 것이 이익이 된다. 같은 고금리(10%) 상황이라도 전셋값 비율이 60%였을 때는 집값 상승률이 4%가 안 되면 손해였지만 전셋값 비율이 80%가 되면 집값 상승률이 2%만 넘어도 이익이다. 이를 공식으로 정리하면 ‘금리×매매가<금리×전셋값+집값 상승률×매매가’이므로 ‘1<전셋값 비율+집값 상승률÷금리’다. 결국 전셋값 비율이나 집값 상승률이 클수록 전세를 놓고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하고 금리가 높을수록 불리하다는 의미다.
저금리 때 월세가 유리하다는 건 착각
일부 전문가는 금리가 싸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기 때문에 전세난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이번에는 월세라는 변수를 넣어보자. 매매가는 5억 원, 전셋값은 3억5000만 원(전셋값 비율 70%)이고 월세 전환 비율은 6%라고 가정하자. 월세 전환 비율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하므로, 임대 보증금이 없다면 연간 임대료 수익은 2100만 원에 달한다. 집값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월세 수입이 2100만 원 있으므로 집을 사지 않고 전액 은행에 예치할 때(1000만 원)나 집 한 채를 사서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할 때(700만 원)보다 이익이다. 더구나 집값이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월세가 전세보다 1400만 원 수익이 더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일부 전문가들이 저금리 상황 하에서는 월세가 유리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5억 원의 현금이 있다면 전세를 끼고 세 채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5억 원짜리 집이라도 전셋값이 3억5000만 원이니 실투자금은 1억500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 채를 사고도 500만 원이 남는다.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집을 여러 채 사는 것이 가장 손해이고 한 채만 사서 월세로 주는 것이 가장 이익이다. 하지만 저금리 상황이라도 집값 상승률이 2%가 넘으면 전세를 끼고 집을 세 채 사는 것이 같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월세를 주는 것보다 유리하다.
더욱이 집 한 채를 사서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세 채 사는 것이 집값 상승률이 큰 경우 더 이익이다. 다시 말해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을수록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를 사 두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고 임대 시장에는 월세보다 전세 물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2014년 8월을 기준으로 은행의 저축성 수신 금리가 평균 2.36%라는 점과 9월의 전국 아파트 전셋값 비율이 69.1%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 상승률이 2%만 넘어도 전세를 주는 것이 유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을 보면 7월 1.82%, 8월 2.03%, 9월 2.31%로 8월 이후는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7월 0.57%, 8월 0.94%, 9월 1.41%로 아직까지는 월세가 전세보다 유리한 실정이다. 수도권의 전세난이 지방보다 심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세라는 제도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존재 가치가 있다. 집주인은 집값의 일부만 투자해 집값 상승분의 전부를 얻을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 전세입자는 매매가보다 적은 돈으로 그 집의 사용권을 2년간 독점적으로 얻는 것이다. 이런 윈-윈의 전제 조건이 깨지면 전세 제도 자체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집값 상승 가능을 점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에 전세 물량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결국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는 것이고 일부 전문가의 의견은 틀린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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