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윈-윈 구조…시장 침체로 존재 의미 사라져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서민 울리는 전세난 주범은 저금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466214.1.jpg)
그들의 논리가 옳다면 금리 인하가 전세난의 한 원인이니 금리를 올리면 전세난이 잡힐 것이다. 과연 그럴까.
금리보다 집값 상승률이 더 큰 변수
어떤 사람이 5억 원짜리 집을 사서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 3억 원을 은행에 2% 금리로 예치했다고 가정하자(계산을 간단하게 하기 위해 부대비용이나 세금은 없다고 가정한다). 이때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연간 이익은 은행 이자 600만 원(=3억 원×2%)뿐이다. 차라리 집을 사지 않거나 집을 팔아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1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그러므로 집을 사서 전세를 줄 이유가 없다.
그러면 일부 전문가의 주장대로 금리가 인상돼 10%가 된다면 어떨까. 이때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면 이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연간 이익은 은행 이자 3000만 원(=3억 원×10%)이다. 이때 집을 사지 않거나 집을 팔아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5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아무리 고금리라도 집을 사서 그 일부인 전세금을 예치하는 것보다 집을 사지 않고 5억 원 모두를 예금하는 것이 훨씬 수익이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금리를 올려도 전세 공급이 늘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집값 상승률이 1%라고 가정해 보자. 금리가 2%일 때는 집을 사지 않는 경우는 1000만 원(=5억 원×2%)의 이자가 생긴다. 하지만 집을 사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할 때는 은행 이자 600만 원(=3억 원×2%)과 집값 상승액 500만 원(=5억 원×1%)을 합해 1100만 원의 이익이 생긴다. 저금리 때는 집값이 1%만 상승해도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이익인 것이다. 그러면 금리가 10%라면 어떨까. 집을 사지 않고 5억 원을 은행에 예치하면 5000만 원의 이자가 붙는다. 하지만 집을 사서 3억 원에 전세를 주고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하면 은행 이자 3000만 원(=3억 원×10%)과 집값 상승액 500만 원(=5억 원×1%)을 합해 3500만 원의 이익이 생긴다.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1500만 원이나 손해인 셈이다.
집값 상승률이 같은 1%라고 하더라도 저금리 때는 집을 사는 것이 이익이지만 고금리 상황에서는 집을 사서 전세를 주는 것은 손해다. <표1>이 이를 정리한 것이다. 고금리(10%) 상황에서는 집값 상승률이 4%를 넘어야만 집을 사지 않는 것보다 이익이다.
이번에는 5억 원짜리 집을 사 전세를 4억 원에 줬다고 가정해 보자(전셋값 비율 80%).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전셋값 비율이 높을수록 집을 사 전세를 주는 것이 이익이 된다. 같은 고금리(10%) 상황이라도 전셋값 비율이 60%였을 때는 집값 상승률이 4%가 안 되면 손해였지만 전셋값 비율이 80%가 되면 집값 상승률이 2%만 넘어도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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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때 월세가 유리하다는 건 착각
일부 전문가는 금리가 싸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기 때문에 전세난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이번에는 월세라는 변수를 넣어보자. 매매가는 5억 원, 전셋값은 3억5000만 원(전셋값 비율 70%)이고 월세 전환 비율은 6%라고 가정하자. 월세 전환 비율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하므로, 임대 보증금이 없다면 연간 임대료 수익은 2100만 원에 달한다. 집값이 상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월세 수입이 2100만 원 있으므로 집을 사지 않고 전액 은행에 예치할 때(1000만 원)나 집 한 채를 사서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할 때(700만 원)보다 이익이다. 더구나 집값이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월세가 전세보다 1400만 원 수익이 더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일부 전문가들이 저금리 상황 하에서는 월세가 유리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5억 원의 현금이 있다면 전세를 끼고 세 채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5억 원짜리 집이라도 전셋값이 3억5000만 원이니 실투자금은 1억500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 채를 사고도 500만 원이 남는다.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집을 여러 채 사는 것이 가장 손해이고 한 채만 사서 월세로 주는 것이 가장 이익이다. 하지만 저금리 상황이라도 집값 상승률이 2%가 넘으면 전세를 끼고 집을 세 채 사는 것이 같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월세를 주는 것보다 유리하다.
더욱이 집 한 채를 사서 전세를 주고 그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하는 것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세 채 사는 것이 집값 상승률이 큰 경우 더 이익이다. 다시 말해 집값 상승 가능성이 높을수록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를 사 두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고 임대 시장에는 월세보다 전세 물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2014년 8월을 기준으로 은행의 저축성 수신 금리가 평균 2.36%라는 점과 9월의 전국 아파트 전셋값 비율이 69.1%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값 상승률이 2%만 넘어도 전세를 주는 것이 유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을 보면 7월 1.82%, 8월 2.03%, 9월 2.31%로 8월 이후는 월세보다 전세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7월 0.57%, 8월 0.94%, 9월 1.41%로 아직까지는 월세가 전세보다 유리한 실정이다. 수도권의 전세난이 지방보다 심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세라는 제도는 집값 상승을 전제로 존재 가치가 있다. 집주인은 집값의 일부만 투자해 집값 상승분의 전부를 얻을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 전세입자는 매매가보다 적은 돈으로 그 집의 사용권을 2년간 독점적으로 얻는 것이다. 이런 윈-윈의 전제 조건이 깨지면 전세 제도 자체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집값 상승 가능을 점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에 전세 물량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된다. 결국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는 것이고 일부 전문가의 의견은 틀린 것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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