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데이터 분석에 기반, 펀드별 수익률은 천차만별

지난 8월 13일 ‘퀀트 펀드(quantitative fund)의 전설’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명예회장이 방한했다. 2010년 사이먼스 회장이 은퇴하기 전까지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펀드는 연평균 30% 이상의 수익률을 내며 헤지 펀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 금융 투자 시장은 이제 막 헤지 펀드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헤지 펀드 운용의 기본 중 하나로 평가되는 ‘퀀트 전략’에 대해 재조명했다.
[SPECIAL REPORT] ‘알아서 척척’…퀀트 펀드의 매력
주식 투자자라면 매일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주가가 떨어지면 괴롭고 오르면 더 오르지 않을까 기대감만 부풀어 오른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격언을 지키기는 너무도 어렵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퀀트 펀드’다. 퀀트 펀드는 사람의 판단보다 계량화된 데이터가 주는 신호에 따라 투자한다. 그래서 여러 데이터를 가지고 일정한 규칙을 만든 후 컴퓨터가 이를 바탕으로 빠르고 일관성 있게 매매하는 시스템 트레이딩 방식으로 운용되는 게 대다수다. 쉽게 말해 데이터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 매매하면 시스템 트레이딩이고 이 시스템 트레이딩 방식으로 운용되는 펀드를 퀀트 펀드라고 보면 된다.

시스템 트레이딩은 ‘현재에 기반한 미래’보다 ‘과거에 기반한 현재’를 중시한다. 그래서 현재의 자산 가격 움직임에 따라 민감하게 매수와 매도를 반복한다. 현재 대부분의 퀀트 펀드들은 주식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를 이용하는 차익 거래를 중심으로 운용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시스템 트레이딩은 파생 상품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기본적으로 파생 상품 시장은 가격의 움직임이 주식 현물의 수십 배에 달해 누가 먼저 주문을 넣느냐에 따라 막대한 수익이 생겨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나 기관투자가들이 쓰는 자동 트레이딩 시스템은 1분에 1만5000건의 주문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이후 시스템 트레이딩은 주식이나 원자재 등을 매매하는 데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시스템 트레이딩이 시세가 급변동하는 하는 주식시장에서 그 효력을 단단히 발휘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스템 트레이딩은 특정 추세가 나타난 뒤 반전될 때까지 포지션을 유지하도록 설계돼 있는 게 대부분이다. 급등이든 급락이든 추세 반전 신호가 나올 때까지 이익을 한 톨 남김없이 가져올 수 있다. 이 때문에 퀀트 펀드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장이 급락한 동아시아와 2008년 금융 위기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기존의 퀀트 펀드들은 시장의 변동성이 죽어 있을 때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약점도 지니고 있다. 2011년 한국에서도 여러 자산 운용사들이 퀀트 펀드를 속속 내놓았지만 시장이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멀어진 것이 이를 대변한다.


증권사, 시스템 트레이딩 상품 보강 중
하지만 시스템 트레이딩 역시 달라진 금융시장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즉 시스템 트레이딩의 설계가 최근의 글로벌 투자자들의 추세인 ‘중위험·중수익’에 맞춰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최근 들어 국내 증권사들은 시스템 트레이딩 방식으로 운용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랩을 속속 내놓고 있다. ETF 랩은 개별 종목보다 ETF를 활용, 수익의 변동성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시스템 트레이딩 방식의 랩은 시장 등락에 따라 ETF를 분할 매수해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고 일정 수준 수익에 도달하면 이익을 실현해 장기적으로 수익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전략을 활용한다.

대표적인 게 KDB대우증권의 폴리원이다. 폴리원은 시장 상승기에는 주식 ETF 등과 같은 위험 자산의 비중을 늘리고 하락기에는 채권 ETF 등과 같은 안전 자산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2009년 6월 설정 후 75.70%(7월 14일 기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최근 6개월 수익률은 2.5%(연 5%), 12개월 수익률은 10.8%다.

우리투자증권의 시크릿 타이밍 랩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한 시스템 트레이딩 상품이다. 최근 10년간 수급 정보를 분석해 외국인의 추세를 보다 쉽게 추종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해 적용했다. 특히 외국인 연속 순매수 지속 여부와 외국인의 순매도 강도를 핵심 요소로 모델을 고안했다. KDB대우증권 폴리원이 한 달에 한 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데 비해 우리투자증권의 ‘시크릿 타이밍 랩’은 실시간으로 자동 매매를 수행한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트레이드스테이션 9.5’라는 시스템 트레이딩 플랫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시스템 트레이딩 분야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이 프로그램은 뛰어난 주문 처리 속도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한다.

증권사뿐만 아니라 시스템 트레이딩을 주력 운용 방식으로 내세우는 투자 자문사도 생겨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곳이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세운 옵투스투자자문이다. 고객 일임 영업을 시작한 지 4년째 된 옵투스투자자문은 그동안 주변 지인을 통해 투자 자금을 모으는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현대자산운용·마이에셋자산운용 등과 연계해 사모 펀드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펀드 중 하나인 ‘마이에셋옵티마사모1호(주식)’는 연초부터 7월 말까지 10%가 넘는 수익을 내기도 했다.

물론 시스템 트레이딩이 만능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이 배제돼 있지만 ‘프로그램’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잘못됐다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낼 수도 있다. 즉 주가 추이를 추종하는 액티브 펀드와 달리 퀀트 펀드는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의 실력에 따라 훨씬 큰 수익률 차이를 보인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8년 금융 위기는 르네상스테크놀로지와 같은 ‘초특급 스타’를 만든 반면 상당수의 퀀트 펀드들이 몰락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례로 세계 최대의 금융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가 운용한 퀀트 펀드인 글로벌 에쿼티 오퍼튜니티즈 펀드는 2007년 8월 초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한 주 동안에만 30% 이상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2010년 퀀트 펀드 운용 부서 자체를 없애 버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퀀트 펀드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며 “지난 금융 위기와 같은 블랙 스완(black swan)은 퀀트 펀드들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퀀트 펀드들이 금융 위기 이후 방향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말 월스트리트의 퀀트 펀드가 2009년 이후 단 한 해를 제외하고는 수익을 내지 못했고 큰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퀀트 펀드의 투자수익률이 주요 헤지 펀드 중 가장 낮을 것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이유는 금융 위기 이후 시장이 정치인들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의 정책 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됐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퀀트 펀드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기술의 발전과 펀드매니저들의 연구로 ‘정책 변수’까지 모델링을 해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퀀트 펀드는 일반적인 액티브 펀드에 비해 대체로 변동성이 적어 장기 투자에 유리한 편”이라면서 “다만 펀드별로 최종 수익률 차이가 크므로 펀드매니저의 운용 전략을 꼼꼼하게 따져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