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리지만 중국이 기침을 하면 독감에 걸린다는 게 한국 경제의 현실이다. 무일푼의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 그러나 불과 30년 만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굴기는 그 자체로 어떤 역사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다. 중국은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황금의 땅인 엘도라도가 됐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새로운 부를 찾아 중국으로 뛰어들고 있다.
최근 들어선 이 무한한 ‘기회’의 땅이 서서히 ‘위기’의 진원지로 바뀌고 있는데, 중국 경제가 원시적 축적 단계를 지나 첨단 기술을 앞세운 혁신 단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가장 큰 기회의 땅이자 위기의 땅이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올바른 정보가 절실해진다. 지금까지 중국에 대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각자가 맡은 전문 분야의 영역에 국한된 경험을 근거를 토대로 했다. 그러나 14억 명의 인구에 한반도의 40배가 넘는 나라에 대해 하나의 관점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한국만 해도 영호남이 다른데, 하물며 중국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함께 중국인들 마음의 저변에 흐르는 정서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중국의 역사 이후 가장 큰 격변이 난무했던 지난 30년간의 기록이다. 중국인이 직접 써낸 장대한 기록은 ‘중국적 특수성’이나 ‘중화 애국주의’ 혹은 이와 반대의 ‘서구적 보편주의’를 모두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적 특수성을 고려하되 그것을 특수주의로까지 확대하지 않았고 서구의 가치를 고려하되 그것을 무분별하게 중국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책은 이념을 뺀 ‘돈 이야기’와 이 돈을 쟁취하기 위해 인간들이 벌이는 희비극을 흥미진진하게 마치 소설처럼 들려준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념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돈에 취해 가면서 벌이는 온갖 소동과 소음 그리고 결국에는 이 돈이 사람을 집어삼키며 벌어지는 온갖 비극을 ‘실사구시’의 정신에 입각해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역사를 온갖 자료와 증언, 인터뷰 등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현재 중국인이 맞닥뜨린 삶의 현장, 여기서 파생될 미래 중국의 격변이 책 속에 녹아 있다.
이종우의 독서 노트
‘지식 e inside’
지식과 인생의 사이에서
EBS 지식채널e 지음┃북하우스┃396쪽┃1만3800원
2005년 9월 5일 희한한 프로그램 하나가 전파를 탔다. TV 프로이면서 말 한마디 없이 5분 동안 글만 나오는…. 이 이상한 프로가 EBS에서 1000회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식채널 e’다.
지독하게 운 나쁜 인간이 있었다. 하늘을 동경해 공군에 입대, 스물셋에 어렵게 비행에 나섰지만 사고로 두개골이 파열되고 약혼녀에게 파혼을 당했다. 서른다섯에는 비행 대회에 나갔다가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닷새 만에 구조됐고 서른여덟에는 과테말라 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연령 제한으로 조종사 자격이 박탈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마흔넷에 공군에 복귀, 마지막 5회의 비행 허가를 받았다.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비행, 여덟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연료를 싣고 출격했지만 연료 소진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였다. 꿈을 좇아 하늘로 사라진 사람.
1군도 아니고 2군도 아닌 이상한 야구팀이 있다. 프로팀에 한 번도 지명 받지 못했거나 프로팀에 들어갔더라도 부진으로 방출된 40명의 선수들이 모인 팀, 고양 원더스다. 1%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바꿔 가며 이뤄지는 하루 14시간의 훈련, 조련사는 ‘야신’ 김성근 감독이 맡았다. ‘공 하나에 승부를 걸 뿐 다음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구이무(一球二無) 정신의 소유자, 13개 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3번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일궈 냈지만 12번 해고된 경력의 소유자. 패자 부활을 꿈꾸는 외인들과 명장 김성근, 그들을 노력이란 단어로 묶는 것 자체가 진부한 일일지 모른다.
일제 말, 평양에서 무의촌 진료를 시작한 장기려. 피란 시절 부산에서 무료 병원을 열고 청진기만 대면 병이 낫는 줄 알고 가슴에 청진기 한 번만 대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환자를 위한 진료를 시작했다. 건강보험이 시행되기 10년 전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못 먹어 병이 난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라고 처방한 바보이기도 하다.
‘지식채널e’에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당대의 예민한 시사 쟁점도 있다. 5분 동안의 강력한 메시지와 영상을 통해 어떤 다큐멘터리 프로보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좋은 책은 다음 장이 궁금해질 정도의 흡입력과 책을 덮는 순간 잘 끓인 오미자차 같이 오랜 시간 남는 맛이 있어야 한다. 천 가지 지식과 함께 각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책이다.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인포그래픽 세계사
텍스트로 구성된 답답한 역사서에서 벗어나 펄떡이는 통찰과 지식의 결합을 이미지화한 세계사다. 데이터 전문가인 발렌티나 데필리포와 ‘가디언’의 탐사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볼이 만나 단순한 텍스트로는 불가능했던 정보와 지식을 재배열함으로써 데이터의 이면을 파헤치고 연결 고리들을 찾아냈다. 이에 따라 138억 년 전 우주가 태어나 생명이 만들어지고 인류가 진화해 문명을 이루는 오늘날까지 긴 여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한국이 1위로 등장하는 주제는 불명예스럽게도 ‘남녀 간 임금 격차’다.
발렌티나 데필리포 외 지음┃왕수민 옮김┃민음사┃224쪽┃2만5000원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국내외 사례와 관련 근거 법령을 소개하며 체계적으로 사회 현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책이다. 저자인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는 법조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지난 베테랑으로, 각종 사회 현안을 법률가의 시각으로 재분석하고 이에 근거가 되는 법률을 소개했다. 나아가 외국의 법률과 판결 등에 비춰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할 것인지 등 어려운 법률적 견해와 사건을 읽기 쉬운 문장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다. 모두 100여 개의 사회현상을 분석해 해법과 전망을 제시한다.
김승열 지음┃온라인리걸센타출판부┃355쪽┃1만4000원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괴짜 외교관 존 에버라드가 자전거로 누빈 북녘 땅 이야기. 현재 진행 중인 북한의 역사에 대해 저자가 제삼자이자 평양 주재 외교관의 신분으로 흥미롭게 전한다. 저자는 영국이 2001년에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한 뒤 2006년 2월에 두 번째 북한 대사로 임명돼 2008년 7월까지 머물렀다. 재임 기간 동안 북한과 영국 간의 경제·문화 교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둔형 국가의 이면에 있는 사람들에게 느낀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북한 주민에게서 받은 인상, 사람들과의 교류,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등을 담았다.
존 에버라드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364쪽┃1만8000원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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