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글로벌 진출 이해 맞아떨어져, 1조 원대 거부 등극
“카카오의 강력한 모바일 플랫폼 경쟁력, 다음이 보유한 콘텐츠 경쟁력과 서비스 비즈니스의 노하우, 전문 기술 인력이 결합하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5월 27일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알리는 최세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의 표정엔 미래를 향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석우 카카오 대표이사도 “국내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며 합병의 의미를 전했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 이어진 두 사람의 포옹은 대한민국 정보기술(IT) 기업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장면이었다. 웹 기반의 대형 포털과 모바일 시대를 리드하는 거대 메신저 기업이 손을 잡은 것이다. 이로써 만년 2위였던 다음은 부동의 포털 1위 네이버와 진검 승부를 펼칠 무기를 손에 쥐게 됐다. 카카오 역시 ‘안방 1등’이라는 한계를 넘어 글로버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네이버 모바일 메신저 ‘라인’과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됐다.
오는 10월 ‘다음·카카오’의 신설 법인이 출범할 예정인 가운데, 다음과 카카오는 당분간 독자적인 사업을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 합병은 양사의 주가에 따라 약 1 대 1.556의 비율로 진행된다. 형식상 다음이 흡수 합병에 나선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카카오가 다음을 통해 우회 상장의 길을 택했다는 게 중론이다. 두 기업의 합병으로 시가총액 3조 원대, 코스닥 2위 수준의 IT 공룡 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양사의 합병 소식이 속보로 전해진 5월 25일 이후 세간의 관심은 단연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게 쏠렸다. 합병 이후 최대 주주로 등극하면서 그의 (주식)재산 가치만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카카오의 지분 29.9%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카카오의 지분 23.8%를 보유하고 있는 케이큐브홀딩스는 김 의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곳이다. 결국 카카오 지분의 53.6%를 김 의장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 4월 17일 기준으로 장외거래에서 카카오의 주식은 주당 12만2000원에 거래됐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김 의장의 지분 가치는 1조1000억~1조9000억 원에 이른다.
‘네이버·라인’vs‘다음·카카오톡’
새 통합 법인인 다음·카카오가 출범했을 때 김 의장의 지분율은 22.23%이고 케이큐브홀딩스 지분까지 합치면 39.8%에 달한다. 반면 다음의 기존 최대 주주였던 이재웅 창업자의 지분은 14.16%에서 4%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지분 관계의 변화는 기존 경영진 체제도 자연스럽게 바꿔 놓을 전망이다. 다음의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사내이사에 김 의장을 비롯해 이제범·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 송지호 카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서해진 카카오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현 카카오 임원진이 대거 포함됐다. 카카오의 2대 주주인 텐센트도 텐센트코리아 대표가 사외이사로 참여한다.
합병 발표 전만 해도 다음의 주가는 7만 원대 머물렀다. 하지만 합병 소식 다음날인 5월 26일 월요일부터 무섭게 뛰기 시작해 현재는 10만 원을 훌쩍 넘은 상태다. 시가총액도 단숨에 1조3600억 원으로 올랐다. 코스닥 전체 8위 수준이다.
양사 합병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김범수 의장은 한국 IT 산업을 이끈 ‘황금의 86학번 세대’ 중 한 사람이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첫 직장으로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한다. 이때 입사 동기가 바로 이해진(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두 사람은 서울대 86학번 동기다. 오늘날 최고의 IT 부호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김 의장이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컴퓨터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유능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개발 능력 부족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웹 기반의 인터넷보다 도스 기반의 PC 통신이 대세인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앞서가는 게 힘들다면 남들과 다른 길을 걷겠다’는 그의 생각은 당시만 해도 생소한 ‘윈도’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회사의 모든 핵심 프로젝트가 윈도 기반으로 바뀌었다. 통신의 시대가 저물고 인터넷의 시대가 시작된 것. 김 의장은 이후 ‘유니텔’ 개발의 핵심으로 일했다. 유니텔은 활자 위주의 기존 PC 통신에서 벗어나 모든 서비스를 클릭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였다. 김 의장은 유니텔 기술 개발은 물론 기획·설계·유통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 참여했다. 1996년 첫선을 보인 유니텔은 김 의장이 퇴사한 1998년 당시 ‘하이텔’을 제치고 부동의 1위인 ‘천리안’을 거의 따라잡고 있었다.
1998년 잘나가던 회사를 떠난 그는 그때부터 샐러리맨이 아닌 최고경영자(CEO)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7년 유니텔의 OX퀴즈에 7만 명이 넘게 몰리는 것을 보면서 온라인 게임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바둑·장기·고스톱 같은 초기 온라인 게임을 론칭했지만 처음부터 신통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김 의장은 한양대 앞에 초대형 PC방을 오픈했는데, 여기서 만든 PC방 관리 프로그램으로 뜻하지 않은 대박을 안게 된다. 다른 PC방에 프로그램을 무료로 깔아주는 대신 컴퓨터 초기 화면을 한게임으로 설정한 것. 프로모션은 기막힌 홍보 효과를 거뒀다. 이후 한게임은 서비스 개시 석 달 만에 100만 명의 회원을 유치했다.
김 의장, 합병 법인 최대 주주 등극
2000년 7월에는 서울대 동기인 이해진 의장의 네이버와 전격 합병해 NHN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네이버는 포털 순위 4위에 머물렀지만 검색과 게임의 양대 축이 현재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이 됐다. 공동대표에서 NHN USA로 발령이 난 2007년에는 또 한 번의 모험을 감행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직원 e메일을 보낸 후 또 한 번의 사직서를 던졌다.
‘무료 문자’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카카오톡은 2010년 출시 직후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4월 기준으로 카카오톡의 누적 가입자 수는 1억4000만 명에 이른다.
마흔 살에 다시 백수로 돌아온 그는 부인, 중·고생 자녀와 함께 1년간 세계 각처를 돌아다니는 여행을 떠났다. 2009년 귀국했을 때는 한국에서 아이폰이 처음으로 유통되던 시기였다. 이미 미국에서 스마트폰의 진가를 확인한 그는 모바일에서 미래를 찾기 시작했다.
PC 통신 시절부터 ‘소통’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모바일 운영체제(OS)를 플랫폼으로 하는 메신저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무료 문자’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카카오톡은 2010년 출시 직후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올해 4월 기준으로 카카오톡의 누적 가입자 수는 1억400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서강대에서 강단에 서며 오랜만에 공개 석상에 나선 김 의장은 카카오의 비전과 목표를 설명하며 “매출이 아닌 카카오가 추구해야 할 바만 고민한다”고 말했다. 수익에 급급하기보다 비전에 충실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 김 의장은 이어 “행복의 비결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성공의 비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IT의 역사를 바꿀만한 합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튿날 김 의장은 홀연히 가족들과 함께 유럽으로 떠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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