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맛의 전도사’ 쓰쓰무 요나구니·오정미 부부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음식은 만들기보다 먹는 게 더 중요해요”
마냥 게으른 토요일 늦은 아침. 이불 속에서 간신히 몸을 꺼내 리모컨을 쥐고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자주 보이는 얼굴이 있다.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인상의 일본인 요리사 쓰쓰무 요나구니 씨다. 그는 전국 곳곳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맛을 보고 평가하는 검증단 중 한 명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MBC의 ‘찾아라! 맛있는 TV’다.
방송의 시작은 대략 이렇다. “저는 잘 몰라요.”
일본 사람이니 한국의 음식에 대해 평하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런데 마지막은 이렇다.
“간이 너무 세다.” “면이 덜 삶아졌다.” “식감이 좋지 않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예리하게 지적한다.
“고기 내장을 굉장히 잘 손질했다.” “담음새가 무척 고급스럽다.” “외국 손님도 모시고 올 만한 곳이다.”
넉넉한 칭찬으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자신의 경험이나 에피소드를 어눌한 일본식 한국어로 구사해 웃음을 준다. 그래서 그를 요리계의 ‘사유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리계의 ‘사유리’
그의 곁엔 띠 동갑 한국인 아내 오정미 씨가 있다. 그녀는 푸드 아티스트로 불린다. 그녀도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다. 쓰쓰무 씨가 ‘자주’라면 오 씨는 ‘가끔’ 등장한다. 쓰쓰무 씨와 마찬가지로 맛 검증단의 일원으로다. 그렇다고 부부가 함께 나온 것은 딱 한 번이다. 대부분이 따로 움직인다. 쓰쓰무 씨가 서울 지역을 돌 때 오 씨는 지방 순회를 하는 식이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둘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녀는 쓰쓰무 씨와 달리 돌직구다. 눈에 보이거나 입에 들어온 음식에 대해 거침없이 말을 쏟아낸다. ‘이 나이에 내가 누구 눈치 보고 살 일 있나’라는 식이다.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 그런데 이들이 한 지붕 아래 산다. 그것도 모자라 함께 음식점까지 경영하고 있다. 요즘 젊은층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서울 이태원과 광화문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키친’이 바로 그곳이다. 상호의 ‘오’가 감탄사 ‘오!’인 줄 알았더니 오정미의 ‘오’란다. ‘오(정미)를 위한 부엌’이라니 입이 살짝 벌어지며 웃음이 난다.

“상호는 나를 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오키친은 우리 부부를 위한 곳입니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레스토랑을 하기로 한 것이거든요.” 오 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요리는 정형화된 틀이 없다. 오정미·쓰쓰무 씨 부부가 그들의 고향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미국 등 해외 생활을 하면서 접했던 음식을 이탈리아 요리에 풀어놓은 형태다. 자신들이 먹었던, 아니면 먹고 싶은 요리를 메뉴로 내놓은 듯하다. 구운 가지 위에 올린 소 내장 볶음은 와인 안주로 딱 떨어지고 홍합·소라가 들어간 파스타는 국물 없는 수제비를 연상케 한다. 다른 메뉴도 식탁에 오를 때마다 ‘깜놀’ 수준의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런데 남편 쓰쓰무 씨가 말하는 레스토랑 경영 이유는 아내 오 씨와 다르다.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이에요. 아내는 원래 요리 아카데미를 했는데 그곳에서 수강한 학생들이 공부가 끝나도 취업할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 일할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오키친을 열었어요.”

몇 년 전부터 쓰쓰무 씨는 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나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을 머리 쓰는 요리사로 키우고 싶어요. 젊은 아이들이 시키는 일만 하면 무슨 발전이 있겠어요.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시야를 넓힐 방향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레스토랑의 신메뉴는 오너 셰프가 만들어 주방 종업원에게 지시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쓰쓰무 씨는 그런 식을 피한다.

“메뉴 개발을 아이들에게 맡겨요. 그런 뒤 만들어 오면 ‘왜 이 요리를 만들었나’부터 물어봐요. 설명을 듣고 맛을 본 뒤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지요.”

이 말을 하곤 요즘 자신의 역할은 “오키친의 골키퍼”라며 웃는다. 옆에 있던 오 씨는 “우리가 오키친에서 하는 일은 아이들이 번 것을 관리해 주는 것뿐”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쓰쓰무 씨 부부의 머릿속엔 종업원이 종업원이 아니다. ‘아이’라고 표현하는 제자이자 동료다. 그래서인지 이들에 대한 종업원의 호칭은 ‘사장’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선생님’으로 불린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쓰쓰무 씨 부부의 공통분모는 요리와 예술이다.


요리와 예술로 묶인 부부
‘뉴요커 셰프’로 불리는 쓰쓰무 씨.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그는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며 스물두 살의 나이에 비틀스의 나라 영국으로 떠난다. 먹고살기 위해 접시닦이로 주방 생활을 시작한다. 남다른 요리 재주로 8년 남짓한 기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최한 파티에서 ‘스페셜 요리사 상’까지 받는다. 뉴욕으로 건너가 셰프 생활을 이어가다가 자신의 요리를 담는 접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도자기 학교에 등록한다. 그곳에서 오 씨를 만났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푸드 컨설턴트’로도 통하는 오 씨. 1985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바로 뉴욕행. 석조각·드로잉·보석디자인 등으로 미술 세계를 넓힌다. 그런데 신부 수업 삼아 들어간 뉴욕의 프랑스 요리학교가 그녀의 삶을 바꿔 놓는다. 탁월한 요리 재능에 미적 감각까지 더해져 졸업도 하기 전에 일류 레스토랑에 취업하는 등 승승장구한 것이다. 주방 일을 일하면서 도자기 공예를 배우러 들어간 곳이 쓰쓰무 씨와 같은 학교다.

처음엔 두 사람 모두 상대에 관심이 없었단다. 아시아에서 온 학생이 드물어 그냥 이름만 아는 정도. 그런데 어느 날 오 씨가 갤러리에 들렀다가 ‘쓰쓰무 요나구니’라는 이름이 적힌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작품에 나타난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 때마침 나오는 길에 쓰쓰무 씨를 만난다. 오 씨가 쓰쓰무 씨에게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이야기하면서 둘의 관계가 맺어지고 차츰 서로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면서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쓰쓰무 씨가 서울에 와서 처음 맛본 한식의 이미지는 온통 ‘빨강’이었다.

“매운 음식을 제법 잘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요.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지요. 한동안 흰색·푸른색 반찬만 찾아 먹었어요.”

한국인들이 펄펄 끓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이제 자신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으니 ‘한국 사람 다 된 것 같다’고 한다.

부부가 만들어 먹는 요리는 대부분이 술안주다. 마치 이자카야(선술집) 놀이를 하듯 작은 일품요리 몇 가지를 만들어 술을 마신다. 주종은 메뉴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되는데 한국 스타일이면 ‘빨간 딱지 소주’, 외국 스타일이면 와인이다. 일본 술은 거의 제외다. 값이 현지에 비해 너무 비싸 마실 엄두를 못 낸다고. 두 음식 전문가가 한일(韓日) 합작품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술안주). 역시 대단하다. 파전의 재료는 오직 파·밀가루·소금·물뿐이다. 그것으로 겉은 바삭하면서 파의 단맛을 완벽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낸다. 낫토 덮밥은 밥 온도도 맞춰야 하고 계란은 반숙한 것처럼 프라이팬에서 익혀 낸다.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 음식은 10년 사이에 무척 발전했어요.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지방색 있는 음식이 사라지고 있어요. 맛은 있지만 모두 똑같은 맛인 것이죠. 현지 재료로 그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되살려야 해요.”
한식의 발전을 위한 쓰쓰무 선생의 훈수다.

“음식은 경험입니다. 요리사들은 만드는 것에 너무 집중하는데, 많이 먹어 보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요리는 머릿속의 기억을 풀어내 테크닉을 더한 것이기 때문이죠.”
오정미 선생이 젊은 요리사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