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박 게스홀딩스코리아 대표

‘섹시 피트’로 성장 정체 극복…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신 중
[김나영의 패션 비즈] “한국인의 스키니진 사랑 못 말려요”
패션 업계에선 브랜드 론칭보다 리뉴얼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한 번 하락세에 접어든 브랜드를 다시 인기 아이템 반열에 올린다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게스는 2007년부터 보란 듯이 부활하며 마켓에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청바지 시장의 규모는 약 1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매출 리딩 그룹은 게스다. 2009년부터 2013년 4년간 톱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989년 일경물산을 통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게스는 2006년까지 두산의류BG에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가 프리미엄 진과 국내 청바지 브랜드의 공세에 밀려 당시 매출액은 350억 원 수준이었고 순위 또한 4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게스의 창업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폴 마르시아노 회장은 한국을 글로벌 전략의 요충지로 판단해 2007년 직진출(게스홀딩스코리아 설립)을 선언했다.

이때부터 게스의 체질 개선이 시작됐다. ‘생각은 글로벌하게, 행동은 로컬하게’가 모토였다. 이를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고 지칭한다. 게스의 섹시한 이미지는 그대로 고수하되 상품은 자체 기획하거나 국내 공장 생산으로 한국인의 취향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개발했다. 그러자 매출액이 달라졌다. 게스진은 2007년 650억 원, 2008년 960억 원, 2009년 1130억 원으로 큰 폭으로 늘더니 지난해엔 1800억 원을 기록했다. 또한 게스진을 비롯해 게스슈즈, 게스 언더웨어, 지바이게스 등을 지속적으로 론칭해 회사 전체의 외형이 2560억 원(2013년 기준)으로 커졌다.

예능인에서 연예계 대표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김나영 씨가 두 번째로 만난 패션 브랜드 최고경영자(CEO)는 게스홀딩스코리아의 제임스 박 대표다. 박 대표는 게스의 한국 직진출을 결정하고 브랜드의 부활 신화를 만든 일등 공신이다. 청바지 브랜드 경영자에 앞서 자신이 보유한 청바지가 200벌이 넘을 정도로 ‘청바지 마니아’이기도 한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정말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는다”며 청바지 예찬론을 펼쳤다. 총 57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브랜드 게스는 미국·캐나다·멕시코(지역 1), 유럽(지역 2), 아시아(지역 3)으로 나뉘는데 박 대표는 한국·중국·일본·홍콩 등 아시아권 전체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다. 최근 몇 년 새 아시아 시장의 놀라운 성장세를 인정받아 2010년 게스인터내셔널 부사장으로 승진해 총 14명의 본사 임원 중 한 명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김나영의 패션 비즈] “한국인의 스키니진 사랑 못 말려요”
김나영 게스를 생각하면 항상 1990년대가 떠올라요.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도 게스 관련 에피소드가 나오잖아요.

제임스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 씨가 입었던 스펠링이 틀린 게스를 우리가 직접 제작해 영화사에 제공했죠.(웃음) ‘짝퉁’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김나영 잠시 주춤하던 인기가 2009년부터 살아났어요. 게스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임스 마케팅의 힘이 컸습니다. 게스가 본래 추구하는 가장 섹시한 피트, 그러면서도 입기에 편안한 피트를 만들고 알리는 데 주력했죠. 2007년 당시 ‘미녀는 괴로워’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아중 씨를 내세워 ‘A STAR 진’을 출시했는데 이게 터닝포인트 역할을 할 정도로 대박을 쳤어요. 섹시 스타였던 이효리 씨를 후속 모델로 내세워 ‘효리진’을 출시하면서 기세를 이어갔죠. 스타 마케팅으로 효과를 본 후엔 디테일을 없애고 원단이나 피트를 강조한 심플한 라인으로 경쟁력을 강화했어요. 원래 베이직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렵거든요. 기존 경쟁사뿐만 아니라 SPA 브랜드 등에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청바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마켓 상황이 그리 쉽진 않았어요.
[김나영의 패션 비즈] “한국인의 스키니진 사랑 못 말려요”
김나영 그나저나 아시아 전체 매출의 70%가 한국에서 나온다고요?

제임스 게스 본사가 있는 미국 다음으로 한국의 매출이 높고 인구당 매출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게스의 전 세계 매출 가운데에서 약 9%가 한국에서 나옵니다. 한국이 아시아 마켓의 중심이에요.

김나영 대단하네요. 국내 소비자들은 어떤 청바지를 선호해요?

제임스 아직도 스키니 진이 대세예요. 하이웨이스트나 와이드 팬츠가 시즌마다 등장하긴 하는데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해요. 한국 소비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고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스타일을 중시하는 건 물론이고 원단의 소재, 생산 공장까지 다 고려하죠.

김나영 사실 다리도 붓고 좀 불편해서 스키니 진을 선호하진 않아요. 청바지를 좋아하지만 내 체형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줄 청바지를 찾는 건 정말 어려워요.

제임스 그래서 한국인들의 취향과 체형을 고려한 제품을 따로 제작하고 있어요. 국내 디자인실에서 기획하고 미국 본사로 직접 가져가 최종 컨펌(승인)을 받아요. 제작도 국내 공장인 두진양행에서 하죠.

김나영 대표님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메시로파이낸셜에서 11년 동안 선물·옵션 트레이더로 근무했다던데. 어쩐지 패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력 같아요.

제임스 열여섯 살에 미국에 이민 왔는데 그때부터 청바지에 미쳐 있었어요. 대학교 때 부전공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기도 했죠. 대학 졸업 후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증권사에 입사했고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워크홀릭으로 살았죠. 당시 아시아인으로선 최연소 부사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는데 거길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나와 페루 리마의 데님 공장에서 워싱 관련 일을 했던 순간에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죠.

김나영 금융권에서의 경험이 회사 운영에도 많이 도움이 되나요?

제임스 아무래도 크리에이티브한 영역과 기획적인 부분이 균형을 이룬다는 장점이 있죠. 저는 회사 운영의 철칙이 있어요. 설립 당시부터 매출·이익·재고 이 세 가지 요소를 철저히 관리한다는 점입니다. 마켓에서 보면 앞으론 남기고(매출) 뒤론 빠지는(실제 이익) 한국 기업들이 너무 많아요. 무조건 많이 파는 것보다 재고를 적게 남기는 것이 수익률을 관리하는 데 더 효율적입니다. 저는 지금도 국내 전 매장의 재고 물량을 파악하고 직접 관리합니다. 이 때문에 그 어느 회사보다 수익률이 높고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습니다. 아울렛 재고까지 관리해 수치를 보고 물량이 너무 많이 남았다 싶으면 구입을 중단시켜요. 3년이 지난 제품은 아예 소각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김나영 저도 제가 입는 브랜드가 아무 데서나 팔리고 파격적으로 할인해 재고 물량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그 브랜드는 더 입고 싶지 않아요. 그나저나 본사의 임원이잖아요. 게스의 의사 결정 방식은 어때요?

제임스 한마디로 속전속결이에요. 제가 본사 임원이다 보니 폴 마르시아노 회장과 직접 통화로 보고하기 때문에 마케팅 전략, 신제품 계획 등에 관한 결정이 단 5분이면 됩니다. 석 달에 한 번씩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이때는 소비자의 트렌드나 시장 상황에 대해 아주 심도 있게 의견을 나누죠.

김나영 패션 업계에서 일하는 게 즐겁나요?

제임스 물론입니다. 게스에서 일하면서 지난 9년간 2주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강행군이에요. 1년 중 250일은 해외에서 일합니다.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잔 날이 없어요. 패션 시장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 전쟁터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그래도 너무 좋아요. 제 아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일에 빠져 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하거든요. (웃음) 오늘 하루 일을 생각하면 너무 설레고 기대가 돼요.

김나영 저도 도전이 되네요. 2014년 게스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임스 논데님, 즉 ‘데님을 탈피하자’입니다. 3년 전부터 진 캐주얼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데님의 매출 비중을 점차 줄이고 있어요. 물론 데님의 기본적인 매출 금액은 유지하면서 슈즈·액세서리·향수 등 브랜드 라인의 외형을 키우는 것이죠. 과거에는 청바지 브랜드들만 경쟁사였지만 이제는 SPA 브랜드의 습격으로 모두가 경쟁자가 됐습니다. 안주할 수 없고 변화해야 합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