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로 피셔 전 총재 영입… FOMC 멤버도 세대교체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거물’들이 올해 대거 물갈이 된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의장과 부의장, 그리고 Fed의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멤버들이 2월부터 상당 부분 교체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닛 옐런 Fed 의장 지명자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71)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부의장에 지명했다. 피셔 부의장은 2월 1일 취임하는 옐런 의장과 함께 4년간 미국의 통화정책 및 금융 감독 정책을 이끌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여성인 라엘 브레이너드 전 재무부 차관을 새로 Fed 이사로 지명하고 임기가 만료되는 제롬 파월 이사를 재지명했다.월가는 Fed의 세대교체가 향후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FOMC는 7명의 Fed 이사(의장·부의장 포함)와 12명의 지역 연방은행 총재가 참석해 토론을 벌이지만 정책 결정에 대한 투표권은 이사 7명과 5명의 연방은행 총재만 갖고 있다.
매파 성향 2~3명 늘어나
이번에 새로 지명된 이사를 포함해 Fed 이사는 대부분이 비둘기파(물가보다 고용을 중시) 또는 비둘기파 성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셔 부의장은 매파적 성향이란 분석도 있지만 중립 성향이란 관측도 있다. 문제는 올해 투표권을 갖는 연방은행 총재 가운데 찰스 플로서(필라델피아)와 리처드 피셔(댈러스) 총재가 강성 매파라는 점이다. 지난해보다 매파 성향이 2~3명 정도 더 늘어난 셈이다.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속도 등을 놓고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
분열된 의견을 한곳으로 모아 이끌어 가는 것은 순전히 옐런 의장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피셔 부의장의 역할이 주목된다.
그는 ‘국제통’이면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로 손꼽힌다. IMF 수석 부총재 때인 1997년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의 구제금융을 주도했다. 멕시코·브라질 구제금융에도 관여하는 등 ‘신흥국 전문가’이기도 하다. 테이퍼링이 신흥 시장에 미칠 충격을 모니터링하면서 신흥국 정책 당국자들과 적극 소통할 것으로 보인다.
피셔 부의장은 매사추세추공과대(MIT) 교수 시절 벤 버냉키 Fed 전 의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한 스승이기도 하다. 도널드 콘 전 Fed 부의장은 “피셔는 전 세계 중앙은행장의 절반을 가르친 사람”이라며 “세계 어디에서나 중앙은행가뿐만 아니라 재무장관이나 총리들로부터 존경 받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피셔를 천거한 인사는 옐런 의장이었다. 당초 백악관 참모들은 피셔를 부의장으로 염두에 뒀지만 일찌감치 포기하고 접촉하지 않았다. 옐런 의장보다 더 명망 있는 피셔 부의장이 옐런 ‘보좌역’으로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 백악관으로 옐런 의장의 전화가 왔다. 옐런 의장이 삼고초려 끝에 피셔 부의장의 수락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월가 일각에서는 피셔 부의장의 매파적 성향이 비둘기파인 옐런 의장과 불협화음을 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피셔 부의장은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시절 종종 예기치 않은 금리 인상으로 시장을 놀라게 한 적도 많았다. Fed의 첫 여성 의장에 오른 옐런 의장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스승’인 피셔 부의장이 만들어 내는 통화정책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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