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의의 ‘전자제품’돼 유리해져… 배터리 등 부품 시장서 입지 확대
수년 내 삼성전자의 최대 라이벌은 애플이 아니라 테슬라모터스가 되지 않을까. 삼성이 차세대 먹을거리로 전기자동차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전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2월 17일(현지 시간) 삼성이 최근 전기차 부품 관련 기술에 대한 각종 특허 출원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이 이번에 출원한 특허는 전기모터, 타이어, 차와 운전자 간의 정보 공유를 위한 차내 전자장치 등 전기차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신문은 “전기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관련 특허 출원은 삼성에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TV·메모리칩을 넘어 기술력을 확대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기계서 전자 산업으로 변화 중
신문은 삼성이 실제로 전기차 사업을 시작할 것인지, 수익을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면서 삼성 측은 특허 출원 이유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이와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해당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자동차 제조와 전자 업체 간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며 “전기차가 보편화되면 삼성전자가 큰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다만 삼성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조심스럽게 전기차 시장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1990년대 삼성자동차를 세우고 시장에 진출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해 1997년에 이 사업에서 손을 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삼성차를 매각했지만 2020년까지 삼성의 이름을 유지하기로 한 것, 삼성카드가 여전히 르노-삼성차의 지분 중 19.9%를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을 거론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삼성의 애정이 남다르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삼성은 특허 출원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특정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반드시 특정 시장에 들어간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미래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전기차와 관련된 특허 출원을 멈추지 않고 전기차에 들어갈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자 전문가들은 삼성의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전기차’를 거론하고 있으며 결과 또한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기존의 기계 산업에서 전자산업으로 분명하게 변하고 있으며 ‘전자’가 주종목인 삼성엔 유리한 시장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의 입장에서 보면 완성차 시장으로 진출한다기보다 기존에 반도체·TV·스마트폰에서 광의의 ‘전자제품’ 시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원재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보기술(IT) 하드웨어는 반도체→TV→모바일로 성장해 왔다며 “D램이 60조 원, TV가 130조 원, 모바일이 350조 원 시장인데 자동차는 차체를 제외하고 부품만 하더라도 650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삼성은 스마트폰으로 지난 수년간 호황을 누려 왔지만 경쟁 과열로 성장 모멘텀이 둔화되자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NH농협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기차 판매량은 1393만 대로 2013~2020년까지 연평균 96%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박 애널리스트는 “자동차가 IT화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데 그 안에 들어갈 무수한 솔루션을 종합적으로 제공할만한 기업은 삼성·LG 등을 제외하면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말했다. 참고로 LG전자는 지난해 LG CNS로부터 자동차 엔지니어링 설계 회사를 흡수 합병해 자동차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그간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며 미래를 준비해 왔다고 말한다.
이재용, 자동차 업계 CEO와 친분 맺어
삼성전자는 전기차에 내장되는 주요 부품인 전기모터·인버터·컨버터 등의 원천 기술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새 운영체제(OS) ‘타이젠(Tizen)’을 장착한 스마트폰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이를 TV·모바일·자동차 등에 확장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타이젠을 차량용 운영체제로 활용하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처럼 자동차 안에서 e메일을 보낸다거나 혈압이나 맥박 등을 체크해 건강관리를 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자동차용 디스플레이를 개발 중이며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삼성SDI는 테슬라모터스에 이차전지를 100% 공급하는 파나소닉과 함께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독일 BMW의 이차전지 독점 공급 업체로, 향후 유럽 자동차 업체에도 자동차용 이차전지를 대량 공급할 예정이다.
이처럼 삼성이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인 보쉬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의 핵심 부품을 이미 만들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에 진입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세트(완성차) 시장에 뛰어드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미 전기차 시장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 시장의 성장세 또한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그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친환경차 등이 자동차 시장에서 대세가 되고 있기 때문에 삼성이 삼성SDI를 비롯한 다양한 계열사를 통해 전기차에 들어가는 부품만 공급하더라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4년 삼성SDI의 자동차용 이차전지 매출액을 전년보다 371% 증가한 4080억 원으로 예상했다.
관련 업계는 2020년에 전체 자동차 판매량 중 10%만 전기차가 차지한다고 해도 중대형 이차전지 시장은 70조 원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삼성의 전기차 사업 본격화 시기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 업계 전문가는 “완성차 형태의 전기차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예측할 수 있다. 우선 삼성 내부적으로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쉽사리 투자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차와 이차전지 시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고 하더라도 전기차의 경제성, 충전 인프라, 안정성 등의 요인 때문에 전기차의 성공 가능성은 아직까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많다.
한 전문가는 “전기차 부품 사업군에서 순조롭게 영역을 넓히면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데 굳이 완성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미리 선언해 다른 자동차 업계의 미움을 살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삼성은 때를 기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자동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터라 삼성의 자동차 사업 재진출 전망에 힘이 실린다.
현재 이 부회장은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 이사회의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사외이사에 추천된 것은 존 엘칸 피아트그룹 회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존 엘칸은 2010년 34세의 나이에 페라리·마세라티·크라이슬러 등을 포함한 피아트그룹의 총수가 된 인물이다. 이처럼 이 부회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최근 2~3년 전부터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 마틴 빅터콘 폭스바겐 회장 등 자동차 업계 CEO들과 자주 만나며 삼성의 자동차 배터리 사업을 확장해 왔다. 그의 노력 덕에 삼성SDI는 BMW·크라이슬러·델파이 등의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하기도 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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