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하지 못할 속도로 불어나는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폐 발행권을 지닌 은행이 ‘금융 완화’를 시행한다. 경제 촉진의 수단으로 변신한 돈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물건을 만들어 내는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이웃 나라와의 무역을 촉진하면서 결국 국가 경제의 성장을 가져온다. 돈의 가치(환율)가 하락하는 부작용은 잠시 잊어도 좋다. 새로운 부의 가치가 건강하고 건설적인 투자로 이어진다면 선순환이 이어질 테니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경제 기사의 헤드라인을 끊임없이 장식하고 있는 미국의 양적 완화 이야기가 아니다.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프랑스 루이 15세 때 벌어진 실화다.
존 로(1671~1729)는 스코틀랜드의 수학자·도박사이자 초창기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해 섭정공으로 권력을 잡았던 오를레앙 공작의 절대적인 후원으로, 이미 300년 전 양적 완화 정책을 편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현대 금융경제학의 시조로까지 불리는 그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신대륙(아메리카) 개발이라는 미끼를 토대로 마구 찍어낸 ‘종이지폐’는 개발 실패와 이에 따른 엄청난 크기의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막을 내려야 했다.
1971년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말과 함께 돈은 지폐, 곧 종이가 됐다. 책의 저자인 필립 코건은 “금은 그 어느 누구의 부채도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소유할 수 있지만 지폐나 전자화폐는 은행이든, 정부든 제삼자에 대한 청구권이 있기 때문에 돈이 부채고 부채가 곧 돈”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프랑스혁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돈의 실체를 고증해 냈다. 정확히 돈의 개념이 무엇이고 돈의 기능이 수세기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고찰한다.
부채와 동일시된 돈은 결국 위기와 버블이라는 숙명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돈과 부채, 버블, 위기의 역사를 훑어가던 저자는 현재 당면한 금융 위기의 문제를 살펴보고 앞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이끌어 갈 G2의 미래 관계도 제시한다.
이종우의 독서 노트
‘미스터리와 진실’
과학으로 밝힌 미지의 전설 이종호 지음│북카라반│전3권│각 권 1만6000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게 많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다.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황음(荒淫)에 빠져 나라를 절단 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반대다. 측천무후가 통치하는 동안 백성들은 성대를 누렸고,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당나라는 우위를 점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민란이 일어났어도 몇 번 일어났을 것이다.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측천무후가 괄시를 받은 건 역사가 남자를 중심으로 기술됐기 때문이다.
세계 3대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시를 읊었다고 비난받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각색된 것이다. 화재가 로마를 휩쓸고 있을 때 네로는 소방대를 진두지휘했고, 이재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화재 진압 후에는 새로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 넣을 정도로 로마를 사랑했다. 그런 인물이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건 네로가 기독교를 탄압한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서기 300년 이후 서양을 지배한 기독교인들이 그를 가만 놓아둘 리 만무했다.
헨리 스탠리라는 사람이 있다. 옛날 교과서에 아프리카에서 실종된 리빙스턴 박사와 만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소개됐던 인물이다. 그건 한 단면만 본 것이다. 스탠리는 리빙스턴이 넘겨준 아프리카 지도를 이용해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로 쳐들어오는 걸 도왔다. 그것도 오직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미스터리한 일은 인물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남긴 흔적에도 있다. 기원전 2500년에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다. 돌 하나하나를 사람이 직접 깨고 운반했는데 에펠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4000년 동안 지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만리장성은 더하다. 길이가 7000km에 달하는데 높은 산을 타고 끝없이 이어진다. 왜 맨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 정상까지 무거운 돌을 메고 올라가 성을 쌓았을까.
과학자들은 미스터리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불가사의로 보이지만 과학적 잣대로 분석해 보면 모두 해석이 가능해, 믿을 수 없는 현상은 거의 인간이 조작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미스터리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적 증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만들어 낸 힘의 원동력이 더 중요한 문제다. 인간의 염원이 미스터리를 만들었다. 자발적이든 권력의 강압에 의하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불가사의한 사실들을 탄생시켰다.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무엇 WHAT?
‘대구(Cod)’, ‘소금(Salt)’ 등 미시사 관련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크 쿨란스키의 신작. 제목은 물론 본문까지 처음부터 질문으로만 이뤄진 책이다. 저자는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이 스무 가지 주요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삶과 세상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품게 만든다. 철학·심리학·종교·예술·정치 등 인간의 모든 지식을 끌어다 ‘세상과 나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며 살자’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저자가 직접 창작한 독특한 흑백 판화들이 장별로 소개돼 더욱 눈길을 끈다.
마크 쿨란스키 지음│박중서 옮김│알에치코리아│200쪽│1만2000원
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
경제학은 선악의 구분이나 흑백논리를 초월해 오랜 시간 인간의 행동과 사회구조를 파악해 온 학문이다. 복잡한 수치와 그래프가 난무하지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현상의 본질적인 이면을 들춰내는 수단으로서 경제학의 가치는 특별하다. 책은 어려워만 보이는 경제학의 원리를 일상·역사·문화와 접목해 쉽게 풀어 썼다. 경제학 예비 전공자를 비롯해 경제학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적합한 입문서다. 저자는 26년째 경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오형규 한국경제 논설위원이다.
오형규 지음│한국문학사│360쪽│1만3800원
울트라라이트 스타트업
저자 제이슨 밥티스트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1 10대 신생 업체’ 가운데 하나인 온스와이프의 최고경영자(CEO)이자 공동 창업자다. 자본도 MBA 같은 학벌도 없고 이전에 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도 없는 그가 정보기술(IT) 업계의 스타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저자는 기업가로서 실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IT 기업 창업자들을 위한 모든 단계를 안내한다. 아이디어 도출에서 시작해 제품 출시, 테스트, 법인 설립, 마케팅, 홍보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유명 기업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소개된다.
제이슨 L. 밥티스트 지음│이유경 옮김│디퍼런트│248쪽│1만6000원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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