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카이스트경영대학 교수의 ‘경영 의사결정론’ 下
1965년 프랑스의 라프리 씨는 흥미로운 계약을 했다. 당시 90세이던 칼멘트 할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로 500달러씩 지급하기로 하고 그 대신 할머니가 사망했을 때는 그의 고급 아파트를 물려받기로 했다. 할머니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 아파트는 머지않아 라프리 씨가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신이라면 이러한 기회가 있을 때 라프리 씨처럼 할머니와 계약할 것인가.![[MBA 명강의 지상 중계] 미래 예측하는 의사결정에도 ‘훈련’필요](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482839.1.jpg)
칼멘트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30년을 더 살아 세계 최장수 기록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30년간 할머니에게 지급한 돈은 18만 달러를 넘어섰다. 아파트의 시세보다 2배가 넘었다. 더군다나 라프리 씨는 1995년에 할머니보다 먼저 77세로 사망했다. 결국 그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 때문에 막대한 비용만 허비한 셈이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옳은 의사결정과 좋은 결과가 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이야기다. 좋은 결과는 의사결정자의 최선의 선택과 상관이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안재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라프리 씨의 의사결정은 좋았지만 다만 운이 없었다”며 “기업에서 성과가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 그리고 의사결정의 방향이 옳은지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명한 의사결정의 평가 및 보상 시스템을 만들고 옳은 의사결정을 유도할 수 있을까.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통해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마음가짐을 바꿔라’를 주문했다. 불확실성이 많을 때 결과 중심의 성과에 대해 보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과정 중심의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보상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중대한 변수를 가정하라’는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확실성에 대해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옳은 의사결정을 위한 기준을 만들어라’는 것이다.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옳은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체계적인 툴을 형성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옳은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그것이 결정됐을 때 보상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그 결과를 쉽게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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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옳은 의사결정에 어떻게 접근할까
의사결정 할 때에는 수많은 사안을 검토하는 복잡한 사고 과정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머릿속에는 정해진 틀을 갖고 청사진에 따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좋다. 일단 간략적인 과정을 말하면, 우선 초기에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의 분석 단계를 거쳐 평가 작업이 이뤄진다. 그리고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실행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6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문제에 대한 적확한 정의 ▷창의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 만들기 ▷의미 있고 신뢰성 있는 정보의 파악 ▷분명한 목표 설정 및 가치 평가 ▷논리적 분석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와 지원이다. 문제의 정의를 기반으로 정보·대안·선호의 3가지 의사결정 요소를 조합해 의사결정을 논리적으로 할 수 있다. 여기에 상황과 불확실성을 고려하며 실천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엔지니어링을 통해 얻은 결과에 따라 모델을 만든다. 모델은 실제 테스트가 가능해야 한다. 모델 테스트와 분석을 통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현실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치면 조직원들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업에서 과장·차장급은 아이디어가 양산에 들어가지 전에 모델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역할을 실제 하고 있다. 반면 상무·전무급 임원진이 되면 모델에서 얻은 통찰력을 해석하고 경영상의 통찰력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이 내용을 전사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역할도 역시 상무·전무급의 역할이다. 안 교수는 “기업 내에서 엔지니어를 맡다가 경영진에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회사의 전체 큰 그림을 통해 기업의 구체적 사안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회사의 매출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이가 많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비즈니스 이해도가 없으면 경영진으로 오르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사례 연구
서울우유협동조합 ‘제조일자 표기 마케팅’의 의사결정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상 의사결정 과정은 기업과 달랐다. 조합원이 모두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이지만 의사결정 하나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됐다. 대신 한번 결정된 사안은 실행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에서도 의사결정 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한 글로벌 경쟁과 빠른 기술 변동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협동조합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좀 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데이터와 분석에 따른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느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을 모두 공감했기에 결국 서울우유는 3년에 걸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2009년 7월부터 유업계 최초 유통기한과 제조일자의 동시 표기를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서울우유는 제조일자를 표기하기 위해 30억 원의 비용을 들여 물류 과정을 개선하고 생산 과정도 제조 즉시 배송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그 덕분에 서울우유는 제조일자 도입 후 일평균 판매량은 1000만 개, 연간 매출은 1조500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상승곡선을 그리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됐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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