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밀레니엄 마케팅 패러다임의 경계들

Based on “Frontiers of the Marketing Paradigm in the Third Millennium” by Ravi S. Achrol, Philip Kotler (2012, Journal of the Academy of Marketing Science, 40(1), pp. 35-52)


연구 목적
마케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케팅의 대가’,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 저서와 논문을 눈여겨보게 마련이다. 코틀러 교수는 2010년 발표한 저서 ‘마케팅 3.0’에서 기업의 마케팅 패러다임이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필립 코틀러의 굿워크 전략(2013년)’에서는 세상과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함께 성장하라고 강조했다. 또한 2013년 최근작인 ‘필립 코틀러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서는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시점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며 성장하기 위해 포착해야 할 메가 트렌드를 분석하며 성장 전략 또한 제안했다. 그렇다면 코틀러 교수는 저술한 책 이외의 최근 논문에서는 어떤 인사이트를 도출했을까.

이 논문은 코틀러 교수의 최근작 중 하나로, 코틀러 교수와 래비 애크롤(Ravi S. Achrol)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공저한 논문이다. 마케팅에서 부상하는 영역을 3단계로 나눠 첫째, 하부 현상(subphenomena)의 ‘소비자 경험과 감각 시스템’. 둘째, 현상(phenomena)의 ‘마케팅 네트워크’. 셋째, 상부 현상(superphenomena)의 ‘지속 가능성과 발전’으로 설명했다. 상부 현상의 ‘지속 가능성과 발전’을 강조하며 새로운 마케팅이 떠오르는 시대에서 기업 경영인, 마케팅 학자, 정책 입안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어젠다를 제시하는 논문이다.


연구 대상
이 논문의 제목은 ‘세 번째 밀레니엄의 마케팅 패러다임의 경계’라는 의미다. 세 번째 밀레니엄은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을 기준으로 2001년 1월 1일부터 3000년 12월 31일까지를 지칭하는 시기다. 즉 100년 단위의 관점인 21세기(2001~2100년)를 넘어 1000년 단위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고자 하는 저자들의 의도가 제목에 담겼다고 보인다.

폭넓은 시공간을 담은 듯한 논문의 제목처럼 이 연구의 대상 또한 기존 연구와는 다르다고 저자들은 논문 도입부에서 설명했다. 저자들은 이 논문이 그동안의 마케팅 연구가 진행돼 온 ‘일반적인 이론(general theory)’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기존의 마케팅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분석하거나 종합하는 대신 마케팅의 현상학(phenomenology)적 관점에서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를 바라봤다.

저자들은 최근 마케팅이 ‘쿤주의적 패러다임 시프트(Kuhnian Paradigm Shift)’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1962년)’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과학 발전이 패러다임 변환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마케팅에서도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연구 방법
마케팅에서 나타나는 변화(shift)를 3단계의 틀로 구성, 제시한 이 논문은 3단계의 프레임을 구성하기 위해 ‘하부 현상, 현상, 상부 현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마케팅에서의 하부 현상으로는 ‘마케팅과 인간의 감각’, ’신경생리학과 마케팅’,‘마케팅과 나노 기술’을 끌어들였다. ‘현상’의 영역에서는 ‘생산과 혁신 네트워크의 진화’, ‘분산된 생산-소비 네트워크’, ‘소비 네트워크’를 논하며 생산과 소비 사이가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을 설명했다.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강조한 마케팅의 ‘상부 현상’에서는 ‘지속 가능한 마케팅 콘셉트’,‘니즈(needs)-수단(means) 체계도’ 등을 소개했다. 환경문제에 민감하고 환경 이슈를 지각하는 소비자 세그먼트를 성장시키라는 논리를 담는 등 기업이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소비자의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안을 고민했다.


연구 결과
소비자가 감각에 기반해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하는 현시점에서 신경생리학과 마케팅이 접목되고 있다. 또한 ‘NBIC 기술 혁명’으로 불리는 나노(Nano)와 생명(Bio), 정보통신(IT),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등 NBIC 기술의 융·복합화는 소비자의 감각적 만족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인정되며 현재까지의 마케팅 패러다임이 ‘소비자 만족’에 초점을 맞췄던 반면 떠오르는 패러다임의 중심에는 ‘소비자 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의 감각적인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이를 파악하는 신경생리학의 역할이 마케팅에서 더욱 커진다는 예측이다. 과거에는 컴퓨터 기반의 디지털화가 기업이 예의 주시하는 지배적 기술이었다면 앞으로는 바이오 기술과 나노 기술이 각광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 자체도 급진적 변화를 맞이했다. 극소량의 마이크로 생산 시스템과 소비자와의 공동 창조(co-creation), 공동 생산(co-production)이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기업 경영진의 우선순위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기업의 성장 그 자체가 최우선순위이며 소비자 생애 전반의 라이프타임(life-time)에서 추구되는 가치, 중산층과 고소득층을 겨냥하는 전략이 우선시됐다. 하지만 떠오르는 뉴 마케팅 패러다임에서는 성장 추구 전략이 만병통치약이 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마케팅이 중시되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마케팅에는 기업이 자사 상품에 대한 고객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이며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는 ‘디마케팅(demarking)’과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상품의 소비를 억제하는 ‘카운터마케팅(counter-marketing)’이 포함된다. 또한 기업은 소득 중하위층와 BOP 시장(Bottom of Pyramid), 즉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의미하는 최하위 소득 계층을 염두에 두는 전략을 펼쳐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저널 리뷰] 신경생리학·나노기술이 만드는 ‘멋진 신세계’
시사점
그렇다면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에 기반한 뉴 마케팅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 경영진과 마케팅 관련 학자, 정책 입안자는 어느 방향으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까. 저자들은 먼저 기업 경영진이 네트워크 조직에 대한 본질과 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에 걸쳐 촘촘한 그물망으로 이뤄져 가는 네트워크에 대해 면밀하게 파악해 네트워크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이와 함께 닥쳐올 수 있는 리스크를 염두에 둬야 한다.

뉴 마케팅 시대에서 마케팅 학자는 신경생리학과 나노 기술, 환경 엔지니어링 등에 대한 배경 지식과 마케팅의 접점을 연구해야 한다. 또한 마케팅 학자는 소비자와 사회의 행복·안녕을 위한 철학적 기반을 닦아야 한다.

저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멋진 신세계’가 인류를 기다리고 있다는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며 앞날에 대한 우려 또한 녹여냈다.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에서 문명이 어디로 치닫고 있는지 묘사하며 그 위험을 경고한 ‘멋진 신세계’를 예로 들었다. 뉴로 맵으로 곳곳이 연결돼 있고 나노 기술이 다방면에 적용된 미래가 다가올수록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그 세계를 살아갈 기업 경영인과 마케팅 학자, 정책 입안자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로 풀이된다.

저자들은 이 논문의 제목에 담긴 단어인 ‘밀레니엄’의 1000년이라는 뜻 이외의 함의를 언급하며 논문을 마무리했다. 저자들은 “밀레니엄은 기쁨·평온·번영·정의가 깃든 시기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말”이라고 강조하며 논문의 끝을 장식했다. 기업이 사회문화적 변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 필립 코틀러 석좌교수의 최근 저서와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효정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hyojunglee@kr.kpm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