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목소리에 담는 말맛이 매력이죠”

출근길 버스 안에서 만난 그녀의 목소리는 갓 굽고 갈아낸 ‘토스트 한 조각에 오렌지 주스 한잔’이다. 아삭아삭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고소하며 속 알맹이가 톡톡 터지듯 상큼하다. 버스가 아무리 바쁘게 이리저리 흔들려도 머릿속은 쾌청, 활기찬 하루 일과가 척척 그려진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아나운서 정연주
퇴근길 승용차 안에서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피로 해소제다. 그것도 “풀려라, 5천만!”이라고 외쳐대는 대한민국 피로 해소제 ‘박카O’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까르르 터지고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지만 차에서 내릴 땐 축 늘어진 어깨가 곧추선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화려하고 변화무쌍할 수 있을까. 무지개 깃털을 가진 팔색조(八色鳥)를 닮은 매력의 목소리를 소유한 사람. 바로 FM 95.1Mhz TBS 교통방송 보도제작국의 간판 아나운서 정연주(37)다.

아나운서라고 하면 얼굴부터 척척 그려지는데 정연주 아나운서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TV 모니터에 등장하는 ‘보는’ 아나운서보다 라디오로 만나는 ‘듣는’ 아나운서로 더 친근하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고 TV와 담을 쌓은 아나운서도 아니다. 일반인들이 친숙하지 않은 TBS TV를 통해 꾸준히 얼굴도 내비쳤다. 얼마 전까지 맡은 프로그램이 ‘기적의 TV, 상담 받고 대학 가자’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8시엔 어김없이 나타나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애청자들은 2년 넘게 귀는 물론 눈까지 호사를 누렸다. 정 아나운서는 자신의 말처럼 ‘잘생긴 얼굴’이니 말이다.

“어릴 적에 ‘예쁘다’는 말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남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표현인데….”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니 예쁘다는 말을 더 듣고 싶었나 보다.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한마디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다. 거기에 키도 크고 늘씬하다. 그런데 미스코리아 수영복보다는 군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아나운서가 안 됐다면 경찰이나 군인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목소리는 물론 여성적인 외모로도 한껏 매력을 발산하는 그녀. 그러나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중1·초5의 두 아들의 엄마가 된다. 여기에 하나 더 며느리 역까지 기다린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그런데 그 며느리도 보통 며느리가 아니다. 종갓집 종손 며느리다. 그의 말대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공(孔)씨네 집안 79세손의 아내, 80세손의 엄마랍니다. 푸하하하.” 말을 해놓고 목젖이 보이도록 고개를 뒤로 제쳐가며 호탕하게 웃는다. 자신의 까닭 모를 웃음이 민망한지 곧바로 설명이 이어진다.

“사실 제가 ‘허당’ 종손 며느리거든요.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은 고사하고 평상시 밥상 하나 제대로 차릴 줄 모르거든요.”

결혼 생활 14년 차. 큰아들 첫돌 때부터 여태까지 시집살이를 하면서 살림은 공씨네 ‘79세손의 엄마’인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셨단다. 자신은 상 차릴 때 수저 놓으며 거드는 게 고작이란다. 앞선 문장에서 ‘모시고’에 물음표가 들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아나운서 정연주
“워낙 시엄마 음식 솜씨가 뛰어나 얼쩡거릴 엄두도 내지 못해요.” 아직도 시어머니를 시엄마라고 칭하는 애교 며느리. 아들과 나이가 열한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기 며느리. 그러니 며느리를 본 게 아니라 딸 하나 입양한 기분으로 사시는 모양이다.

“우리 집 밥상 자랑 한번 해 볼까나? 기본적으로 김치만 서너 가지가 오르고 고기를 굽는 날엔 산마늘 장아찌도 등장하죠. 채소 샐러드에 검은콩이 들어간 잡곡밥까지. 된장·고추장·간장도 시엄마가 손수 담그신 것으로 맛을 내 웬만한 고급 한정식 밥상 안 부러워요.” 라디오 목소리를 통해 만들어졌던 ‘똑순이’ 이미지가 한순간에 ‘팔불출’로 바뀐다.


음식 솜씨 ‘허당’인 신세대 종손 며느리
시어머니 덕에 자신의 남편은 물론 두 아들까지 잘 먹고 있기에 아무 걱정 없는 줄 알았더니 아니다.

“남편은 별로 걱정할 게 없어요. 의외로 음식 타박 없이 아무거나 잘 먹거든요. 가공식품을 좋아해 가끔 시엄마와 다투기도 하지만 잦은 해외 출장에서 터득한 생존 전략인 것 같아요. 그러나 문제는 시엄마 맛에 길들여진 두 아들이죠. 특히 큰아들은 된장국 맛의 깊이를 따질 정도로 예민하거든요.” 종손 며느리인데 훗날 조상 모실 일보다 눈앞에 보이는 두 아들의 입맛 맞출 일이 더 앞서는 걸 보니 역시 신세대 며느리다.

“그런데 무척 재미난 일이 있어요. 외식하러 가면 아이들은 피자나 햄버거 집보다 쌀밥이 나오는 백반집이나 한정식을 가자고 해요. 이유요? 매일 할머니표 잡곡밥만 먹다 보니 우리 아이들에겐 하얀 쌀밥이 별식이 된 거죠. 그래서 우리 식구 외식 때마다 “공깃밥 추가요”는 기본 외침이 된답니다. 푸하하.”

시어머니가 없을 땐 어떻게 뭘 먹고 살까. 사실 그녀의 요리 실력이 더 궁금했지만 참고 우회적으로 물었다. 그동안 거의 집을 비운 적이 없는데, 얼마 전에 “김장할 때 오마”하곤 훌쩍 떠나셨다고 한다. 최소 두 달이란 얘기인데 실은 하와이에 사는 시동생네 산바라지 가신 것이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온갖 김치에 장아찌 종류가 가득하더라고요. 역시 시엄마 살림 솜씨는 당할 재주가 없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제가 할 줄 아는 미역국을 끓여 내놓으면 문제가 없겠죠. 미역국은 끓일수록 맛있으니 한 번에 왕창 만들어 며칠 두고 먹지요. 호호호.” 14년 동안 챙겨 주는 밥상만 받다가 챙겨야 하는 입장이 됐으니 “결국 일이 터졌다”고 할만도 한데 세상사 아무 걱정 없는 사람처럼 웃는다.

“시엄마가 한 것처럼 참기름·간장·액젓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볶다가 물을 붓고 끓였는데 모두가 맛있다고 하던데요.” 반전이다. 시어머니 옆에서 훔쳐본 눈썰미가 대단하다. ‘그 엄마에 그 딸’이란 옛말도 확인하고 싶었다. 친정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물었더니 답 대신 시엄마와 요리 스타일을 비교해 줬다.

“오이가 있으면 우리 엄마는 뚝뚝 썰어 시판 고추장이나 마요네즈에 찍어 먹게 주고 시엄마는 채를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서 무쳐 줘요.” ‘친정엄마는 날로 먹기, 시엄마는 해서 먹기’란 뜻이다. 그래도 친정어머니가 열심히 챙겨 주는 음료가 있다. 딸 목소리를 보호하기 위해 손수 만드는데 물이 든 주전자에 대파뿌리·곶감·배·대추·무·감초 등을 넣고 푹 끓여 만든다.

공씨네 집안 79세손의 아내로 시작된 말이 시어머니의 음식 자랑으로 이어지면서 끝날 기미조차 없다. 말로 먹고사는 아나운서라서 그런가 보다. 아나운서의 꿈은 언제 키웠을까.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방송기자나 앵커가 돼야지 한 것은 금옥여고를 다닐 때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진학할 땐 신방과를 택하지 않았어요. 너무 하드웨어에 치우치는 것 같았거든요. 그 대신 행정학과에서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기로 했지요.”

대학에 들어가 마이크를 잡는 꿈을 접지는 않았지만 어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확인하곤 3, 4학년 땐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도 고민했다고 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공중파 3사 입사 목표를 향해 연습 삼아 지원했던 TBS에 덜컥 합격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아나운서 정연주
이에 앞서 한 ‘초딩’ 소녀의 이야기가 있다. TV 뉴스 보기를 좋아하던 6학년 소녀에게 어느 날 끔찍한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또래 아이가 유괴돼 야산에 매장된 것이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들어하던 소녀. 며칠 뒤 청와대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썼다. “돈 때문에 나처럼 어린 아이가 유괴 당하고 죽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나는 부끄럽습니다”라고….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봉황무늬가 박힌 답장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말을 하니 답이 오는 걸 깨달은 소녀는 그때부터 방송기자의 꿈을 키웠을지 모른다. 사회의 불의를 보고 대통령을 향해 목소리를 낸 그 당돌한 소녀가 바로 정연주다.

지난해 종합 편성 채널의 등장으로 많은 아나운서가 이동했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도 있다. 방송 환경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것인데 정 아나운서는 아직까지 TBS 교통방송에 ‘짱박고’ 있다.

“여기서 아직 할 일이 많아요. TBS는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국입니다. 단순한 시정(市政) 나팔수가 아닌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송으로 거듭나는데 일조하지요.”

방송국에 입사한 지 16년. 그동안 가장 즐거웠던 프로그램을 꼽으라고 하니 묻기가 무섭게 ‘정연주의 상쾌한 아침’이라고 튀어나온다. 2003년 3월부터 4년 넘게 이어 온 장수 프로그램이다. 시간은 오전 8시 30분부터 10시.


청와대에 편지 쓴 용감한 초딩 소녀
“첫사랑 같은 프로그램입니다. 지금 저를 기억하는 청취자들은 대부분이 이 방송을 통해 만났어요. 작가 등 제작진과도 호흡이 착착 맞아떨어졌지요. 지금도 그들과 만나고 있는데 곧 10주년 파티를 열 계획입니다.” 방송국에선 마이크를 잡은 지 5년, 가정에선 두 아이의 엄마로 ‘햇병아리’에서 벗어난 만큼 새로운 시도도 많았다고 한다. 출근길에 영어 대신 중국어 한마디를 도입한 것이라든가, 인터넷 게시판을 뛰어넘어 방송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활용해 바로바로 청취자와 쌍방향 소통을 한 점을 꼽았다.

캐나다 교포인 남편과의 만남은 대학 4학년 때다. 방송 일을 꿈꾸는 여대생과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는 남자. 나이 차이가 워낙 심해 연인은 아니고 그냥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지인의 소개를 받았다.

“모 방송사의 필기시험을 마친 일요일 오후에 여의도에서 처음 만났는데,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수다가 밤 시간까지 이어졌어요. 그런데 나이나 문화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예비 신랑과의 만남은 주로 여의도 맛 탐방으로 이뤄졌다. 기억에 남는 메뉴는 죽과 메밀온면. 방송국 입사 시험 준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늘 속이 불편해 죽을 많이 먹었단다. 메밀온면은 부드러운 식감과 따뜻한 국물에 즐겨 찾았다고….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안 사실은 남편이 죽과 국수를 싫어한다는 점. 아내에 대한 남다른 배려는 그때부터 이제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힘들었던 프로그램은 2007년 4월부터 3년 가까이 방송된 ‘김흥국 정연주의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오후 6시부터 생방송을 하는 2시간 내내 바짝 긴장해야 했어요. 시청자와 함께 방송 파트너까지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경험이었는데 시트콤을 찍는 기분이었어요.”

헤어지기 전 라디오 방송의 맛은 말맛이라고 했다. 그리고 청취자와 교감하는 맛에 마이크를 잡는다고 했다.

“라디오는 목소리만으로 내용을 전달해야 합니다. 표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모두 말로 나타내야죠. 그게 말맛입니다. 말 속에 그 사람의 인성·지성·습관 등이 모두 담겨 나와요. 그러니 일반인들도 평상시에 맛있는 말맛을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그녀는 가을 방송 개편으로 그동안 진행해 온 라디오(오후 6~8시) ‘여균동 정연주의 생방송 오늘’, TV 밤 10시부터 방송되는 ‘기적의 TV, 상담 받고 대학 가자’를 그만둔다. 그 대신 매일 아침 9시 라디오 시사 매거진 ‘나우( Now)’로 만날 수 있다.

“저녁이 없는 삶 7년을 정리해 너무 홀가분해요. 당분간 개인적으로 저녁에 하지 못했던 일을 실컷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곤 그녀가 첫 번째로 꼽은 일이 ‘손수 장 봐서 저녁상 차리기’다. 그 상에는 꼭 호박과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올릴 것이란다. 허당 종손 며느리의 변신이 기대되는 밥상이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