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처럼 고기·채소 먹고 강렬한 운동

미국 실리콘밸리의 잘나가는 사업가이자 인터넷 방송 5바이5스튜디오 창업자 댄 벤저민은 어느 날 자신이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와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저혈압 등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의사의 처방을 무시한 채 가족들과 함께 10만 년 전 원시시대 조상들처럼 먹는 식이요법을 택했다. 육류와 동물성 지방 섭취를 늘리고 빵이나 파스타, 유제품을 먹지 않는 이른바 ‘구석기 다이어트’에 돌입한 것. 별다른 약을 쓰지 않았는 데도 그의 건강은 차츰 좋아졌다.
[ISSUE&TOPIC] 실리콘밸리 강타한 ‘구석기 다이어트’ 바람
사냥으로 생활하던 원시인처럼 고기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 ‘구석기 다이어트’가 실리콘밸리를 강타하고 있다.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 밤샘 작업을 많이 하며 고칼로리의 야식을 즐겨 먹던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대체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들은 최근 야식 메뉴에서 그동안 즐겨 먹던 피자와 패스트푸드를 빼고 갓 구운 쇠고기를 넣었다.

구석기 다이어트의 가장 큰 특징은 곡물과 유제품을 줄이는 식단이다. 그 대신 채소와 고기를 먹는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조깅 등 유산소운동 대신 사냥 등에 버금가는 강렬한 운동을 1주일에 두 번 한다. 매일 30분 이상 일광욕을 하고 밤에는 조명을 완전히 끄고 자는 등 구석기인처럼 생활한다.

현대인의 유전자가 구석기인과 같다는 것이 구석기 다이어트의 핵심 논지다. 농업이 시작된 것은 1만 년에 불과하고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인류는 구석기인처럼 먹고 살았기 때문에 충분히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석기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세 가지 식품군을 잘 활용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첫 번째는 육류다. 붉은 고기는 몸에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육류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가공된 육류가 나쁘다는 것이다. 순수한 육류의 단백질 함유량은 80%, 지방 함유량이 20%이지만 베이컨 등 가공육은 지방이 85%, 단백질이 25% 미만이다. 몸에 나쁜 건 단백질이 아니라 가공육에서 나오는 포화 지방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생선과 해산물이다. 고단백질인 데다 오메가3가 풍부해 심장을 보호하고 뇌졸중·당뇨병의 위험을 낮춘다. 마지막으로 과일·채소·견과류다. 천연 섬유소를 공급받고 견과류를 통해 지방을 섭취하는 방법이다. 우유·치즈·버터 등 발효 가공식품은 특정 포화 지방을 많이 갖고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등 고지혈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관련 사업도 속속 등장
구석기 다이어트 열풍이 불자 이 아이템을 활용한 사업도 등장했다. 전 마라톤 선수였던 마크 시즌(60)은 자신의 블로그인 ‘데일리 애플’을 통해 구석기 다이어트 프로그램 전파에 나섰다. 이 블로그를 찾는 사람은 한 달에 5000만 명. 출판사의 책 출간 문의도 쇄도했다. 그는 이제 주말마다 더 먹고 제대로 운동하는 법을 가르치는 콘퍼런스를 열어 1인당 849달러의 레슨비를 받는다. 고급 버전의 일대일 코칭은 1인당 2200달러를 받기도 한다.

틈새시장도 있다. 롭 울프는 의료 리스크 관리 회사를 열어 수익을 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구석기 다이어트 전파를 통해 의료비용을 낮추기 위해 울프에게 여러 차례 문의한다. 구석기 다이어트를 비판하는 이도 있다. 미네소타대의 진화 생물학자인 마를린 죽은 “인간 유전자는 농업의 시작과 함께 진화했고 곡식과 유제품을 섭취하는 게 그 결과”라며 “곡식과 유제품 섭취는 구석기 다이어트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대인의 식습관 전체를 통째로 비판하는 것은 잘못됐으며 어느 부분이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가 필요하고”고 덧붙였다.


김보라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