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희 십년후연구소 대표
엄밀히 따지자면 십년후연구소는 1인 연구소라고 말하기 힘들다. 인디 밴드 ‘황신혜밴드’의 베이시스트 겸 건축가로 홍대에서 ‘희망시장’ 등을 만들고 운영하며 대안적인 문화 활동을 해 온 ‘조윤석’과 문화를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총괄 크리에이티브인 ‘이광준’, 시사 주간지 기자 출신으로 도시형 음식 장터 ‘마르쉐@혜화’를 공동 운영하는 ‘송성희’ 등 세 명의 문화 기획자가 함께 모여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 연구하고 구체적인 실행 사업 등을 도모하는 곳이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일하는 사무실도 없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분량의 일도 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자면 십년후연구소는 결국 개개인의 1인 연구소가 결합된, 좀 더 진화된 방식의 1인 연구소나 다름없다.십년후연구소의 대표로 활동 중인 송성희 대표는 “일종의 ‘동인’입니다. 삶의 지향점을 공유하고 뜻을 같이하는 이들끼리 모인 것이죠. 그래서 일하는 방식도 일반 회사나 연구소와 달라요. 일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기획하곤 하죠”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10여 년 전 오랫동안 몸담아 온 잡지사에서 퇴사한 이후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직접 잡지를 창간하고 만드는 일을 해 왔다. 그간 내용연구소와 적당기술연구소를 거쳐 2007년에 십년후연구소를 설립했다. 그처럼 다양한 일을 거치면서 송 대표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생계를 위해 삶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십년후연구소의 ‘십년’이 무슨 뜻인지 많이 물어봐요. 십년후연구소의 ‘십년’은 구체적인,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흔히 말하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에 나오는 바로 그 십 년이죠, 즉, 질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죠.”
개인의 행복을 연구하고 지원
사실 송 대표가 추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수익성, 개인적 명예, 인생 이모작 등의 일반적인 목적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는 독특한 ‘사회운동’에 가깝다. 현재 송 대표는 십 년 후를 연구, 디자인하고자 하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십년후생활연구 협동조합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송 대표는 서울디자인재단 주최로 ‘동대문 봄장’과 도시형 음식 장터 ‘마르쉐@혜화동’을 기획하고 만드는데 참여하며 십년후연구소와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구체화된 모습으로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 5월부터 매주 일요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야외에서 개최된 ‘동대문 봄장’은 화폐 외의 다른 가치를 인정하고 소유가 아닌 공유를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의 장터였다. 서울디자인재단과 동대문봄장시범운영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이 시장은 ‘돈 없이도 예술과 삶을 살 수 있는 시장’이라는 모토로 많은 풀뿌리 예술가를 비롯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대안적 장터’로 화제를 모았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마르쉐@혜화동’은 송 대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잘 나타나는 또 하나의 대안 문화사업이다. 송 대표는 오가닉 카페 ‘수카라대표’인 김수향 씨와 ‘여성 환경연대 대안 생활운동’ 기획가인 이보은 씨와 함께 ‘마르쉐친구들’을 조직, 공동 운영하고 있다.
“마르쉐@혜화동은 쉽게 말하면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형 장터라고 할 수 있어요.”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혜화동에서 열리는 이 장터에서는 도시농부들이 재배한 농산물과 그 재료로 직접 만든 요리들과 수공예품 등이 판매된다. 생산자는 곧 판매자가 되고 판매자는 또한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데, 정작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평소에 우리가 먹는 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재료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잖아요. 마르쉐@혜화동은 그 과정들을 공유하고 건강한 먹을거리와 핸드메이드를 통해 자립적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응원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도시형 장터죠.” 매회 약 45팀 정도의 도시농부, 요리사, 수공예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마르쉐@혜화동은 청년 창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르쉐@혜화동에 참여해 직접 요리를 만들고 판매하고 그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해 주는 피드백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돼 전업을 결심하고 창업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리사뿐만이 아니다. 핸드메이드 아티스트들 중에도 본격적으로 작업실이나 스튜디오를 가지고 전업 작가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
청년 창업에도 영향 끼쳐
처음 30여 팀이 참여했던 마르쉐@혜화동은 현재 100여 팀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손님도 많이 늘고 매진 사례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쉐@혜화동은 규모를 키우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사전에 입점할 농부·요리사·아티스트를 일일이 만나 매회 45팀 정도만 참여할 수 있게 조절하고자 한다.
“마르쉐@혜화동만의 몸집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대안 장터로서의 의미도 없다고 보거든요. 우리는 혜화동만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서도 마르쉐와 같은 도시형 장터가 형성되기를 바라고 또 도와드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프랑스어로 ‘시장’이라는 뜻의 ‘마르쉐’에 @과 지역명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었죠.”
이 밖에 올가을에는 동대문에서 또 다른 대안 장터를 열 계획이기도 하다.
동대문이 가진 특유의 힘에 주목한 이 대안 장터는 요즘 외국에서 많은 관심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메이커스 운동에 착안해 기획한 프로젝트다. 메이커스 운동은 일반인들에게 기본적인 기계 설비를 갖춘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게 해 누구나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움직임이다. 따라서 이번 장터에서는 ‘만듦’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만든 제품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점점 더 개인의 활동이 더욱 주목받는 사회가 될 거예요. 1인 연구소, 1인 창업, 소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나겠죠. 그렇기에 서로의 정보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의 중요성도 더더욱 부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힘만으로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진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기에 이른바 인맥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년후연구소는 그 개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또 동기부여를 위한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 문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예정입니다. 십년후연구소가 꿈꾸는 십 년 후의 모습은 바로 개인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는 사회니까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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