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회동 KB투자증권 사장의 성공 비결
지난 7월 19일 KB금융은 전체 10개 계열사 가운데 계열사 7곳의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 새 대표가 선임된 부문은 은행을 비롯해 카드·증권·자산운용·생명·부동산신탁·신용정보 등으로 모두 KB금융의 성장을 책임지는 주력 사업부들이다. KB금융 계열사의 대표에 새로 오른 여러 인물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바로 KB투자증권을 이끌게 된 정회동 사장이다. 정 사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는 이번 KB투자증권을 포함해 흥국증권·NH농협증권·아이엠투자증권 등 무려 4개 증권사의 수장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증권사의 대표는 여러 금융업의 수장 자리 중에서도 ‘매력적인 자리’로 꼽힌다. 타 금융업에 비해 다이내믹한 증권업의 특성상 실력 있는 경영자라면 빠르게 실적을 성장시킬 수 있다. 또 전문성이 특히 중시돼 본인 스스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점, 아울러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정보를 빠르게 입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그러다 보니 증권사의 수장을 두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쟁쟁한 인물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렇다면 정회동 사장은 어떻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어떻게 무려 네 곳의 증권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됐을까. 정 사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합리적이고 원만한 성품’을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정 사장은 자신의 커리어 중 상당 기간을 LG그룹에서 보냈다. 1980년 외환은행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정 사장은 4년 뒤인 1984년 LG그룹 기획조정실(회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구자경 회장(현 LG그룹 명예회장) 밑에서 일하며 그룹 업무 전반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흥국·NH농협·아이엠 거쳐 KB에 둥지
최근 들어 ‘성과’를 강조하긴 하지만 LG그룹은 특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인화(人和)’다. 경영 환경이 좀 힘들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는’ LG그룹만의 따뜻하고 합리적인 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의 성품은 올 초 아이엠투자증권 사장 시절의 에피소드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 2월 19일 아이엠투자증권 본사와 전 지점에서 ‘피자 파티’가 열렸다. 아이엠투자증권은 과거 솔로몬저축은행의 계열사로 예금보험공사가 경영관리 중인 회사다. 현재 증권 업황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관리 중인 회사가 연 이 ‘조촐한 축제’는 여의도의 증권맨들은 물론 여러 매체에서 기사로 다룰 정도로 조용한 화제가 됐다. 피자 파티가 열린 까닭은 정 사장이 2012 회계연도 실적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면 ‘피자를 쏘겠다’고 선언한 정 사장이 사비를 털어 약속을 지킨 것이다.
정 사장은 취임 2개월이 지난 지난해 8월 2012 회계연도 경영 목표로 세전이익 254억 원, 당기순이익 203억 원을 제시했다. 전년도에 비해 눈높이를 낮춘 것이지만 업황 악화 속에서 아이엠투자증권으로서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목표였다.
정 사장의 ‘피자 공약’은 예상보다 일찍 실현됐다. 회계연도 종료를 한 달 이상 앞둔 2월 18일 경영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것이다. 상당수 증권사들의 2012 회계연도 실적이 급감하거나 심지어 적자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실적이다. 정 사장이 이날 지출한 피자 값만 어림잡아 200여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엠투자증권은 그보다 더 값진 전체 직원들의 자신감과 사기 진작이라는 수확을 거둔 셈이다.
사실 금융 투자업이 ‘인화’만 강조한다고 잘되는 업종은 결코 아니다. 금융 투자업은 치열한 자본주의의 ‘끝단’에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 사장의 장점으로는 금융 투자업에 대한 전문성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금융 투자업에 첫발을 디딘 때는 지금부터 20년도 넘은 1989년이다. 정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당시 LG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 투자업과 인연을 맺는다. 이후 LG투신운용 상무, LG증권 상무 및 부사장 등을 거치며 자산운용과 증권업을 모두 경험했다.
정 사장의 금융 투자업에 대한 전문성과 경영에 대한 감각은 NH농협증권 사장 시절의 기록적인 실적 성장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그는 2008년부터 NH농협증권을 이끌었다. 그는 임기 2년인 NH농협증권 사장을 맡으며 뛰어난 실적으로 한 차례 연임해 4년간 이 회사의 성장을 이끈다.
취임 1기(2008~2010년)에는 NH농협증권의 체질을 확 바꿔 놓은 시기로 거론된다. 정 사장이 처음 부임한 2008년 3월 말 당시 자기자본 규모가 4186억 원이던 NH농협증권은 매출 2108억 원과 당기순이익 257억 원을 내는 중소형사에 그쳤다. 그러나 정 사장이 ‘투자은행(IB)과 채권에 특화된 증권사’를 표방하고 내실을 다진 결과 재임 2년 만인 2010 회계연도 매출액과 당기순익은 6487억 원, 724억 원 규모로 각각 3배씩 늘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6.7%에서 16.0%로 수직 상승하며 업계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그 결과 당시 한경비즈니스가 금융사의 성장성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베스트 금융 CEO’에서 증권업계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경영에서는 거창한 구호보다 내부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성장 방안이 중요하다”며 “NH농협증권은 ‘농협과의 시너지’가 그것이었고 이에 ‘선택과 집중’을 해 투자은행(IB) 부문과 채권 영업이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 LG증권 재직 시 최하위 사업부의 경상이익을 10배 이상 신장시킨 결과를 내며 업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2006년 흥국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CEO 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 회사의 태광산업으로의 인수 작업을 성공리에 마치며 2년간 회사를 이끌기도 했다.
증권업계의 대표적 ‘마당발’로 통해
정 사장은 또 업계에서 ‘마당발’로 통하기도 한다. 충청도 출신이면서 일찍 서울로 상경해 용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치며 다양한 인맥을 쌓았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 원장과 절친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고정석 일신창업투자 사장, 한승희 한국자금중개 사장 등이 대학 졸업 동기다.
이 밖에 KB금융의 우리투자증권 인수·합병(M&A)을 이끌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로도 꼽힌다. 그가 증권업에 입문한 LG증권이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이며 NH농협증권 역시 우리투자증권의 M&A를 처음 ‘공론화’한 증권사이기 때문이다. 또 흥국증권에서 경험한 M&A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그는 지난 7월 26일 KB투자증권 사장 취임식에서 “회사의 대형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약력:1956년 충북 진천 출생. 1974년 서울 용산고 졸업. 1980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0년 외환은행. 1984년 LG 기획조정실. 1989년 LG증권. 1991년 LG그룹 구조조정본부. 1999년 LG투자신탁운용 상무. 2002년 LG투자증권 종합금융사업부 상무. 2004년 LG투자증권 지원총괄 부사장. 2006년 흥국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8년 NH농협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2년 아이엠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2013년 KB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현).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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