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질주' 사모 투자 펀드 누가 이끄나

도입 8년을 맞은 한국의 사모 투자 펀드(PEF) 시장이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다. 벌써 PEF 시장의 규모는 4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작년에 PEF로 들어온 돈만 9조7000억 원에 달한다. PEF는 자금의 모금·운용·청산까지 물 흐르듯 원스톱으로 해내야 한다. 그래서 전문성이 강조되는 금융권 내에서도 특히 ‘최고수’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PEF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금융계의 엄친아’로 부르기도 한다. 급성장하는 한국의 PEF를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봤다.
[SPECIAL REPORT Ⅰ] ‘40조 원’ 주무르는 사람들… 금융계의 ‘엄친아’ 불려
PEF를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국내서 운용되는 PEF는 크게 독립계 PEF와 금융계 PEF로 나눠볼 수 있다. 독립계 PEF는 말 그대로 PEF의 설립과 운용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한국 1호 PEF인 보고펀드나 동북아 최대 PEF인 MBK파트너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금융계 PEF는 은행·증권 등이 PEF의 설립과 운용을 위해 만든 일종의 부서 개념이다. 그러나 PEF의 특성상 일종의 ‘별동대’처럼 조직이 운용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PEF는 전문성이 강조되는 금융권 내에서도 고난이도의 업무로 꼽힌다. 자금의 모금·운용·청산까지 모두 ‘원스톱’으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PEF는 운용하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부족하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증권사 임원은 “금융권에서 꽤 오래 근무했지만 계열사 PEF의 회의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금융권 회의가 일종의 상명하복식인 반면 PEF의 회의는 대표와 말단 직원 간에 수평선상에서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그는 “말단 직원이 대표의 의견에 ‘말도 안 된다’며 제동을 거는 것을 보며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곧 PEF 업계에선 아무리 높은 직책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바로 ‘퇴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종 PEF, 그중에서도 독립계 PEF의 수장들은 업계의 최고수들로 꼽힌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들은 학벌·인맥·재력·경력 등을 모두 갖춘 ‘금융계의 엄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 해외 투자은행(IB) 출신. 둘째, 관(官) 출신. 셋째, 벤처캐피털 및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 출신들이다. 최근에는 대기업 출신들도 PEF 업계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해외 IB 출신의 대표 격이다. MBK파트너스는 동북아 최대의 독립계 사모 펀드다. 상위 10개 PEF 중 무려 3개가 MBK의 것이다. 이를 합하면 규모가 무려 3조5000억 원(출자 약정액 기준)에 달한다.

김 회장은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나와 곧바로 월가에 입성했다. 씨티그룹을 시작으로 1999년엔 미국의 대표적 PEF인 칼라일그룹에 들어가면서 미국 금융의 정수를 배웠다. 2000년 칼라일의 한미은행 인수를 성사시킨 3년 뒤 씨티은행에 매각해 8000억 원에 달하는 차익을 칼라일에 안겨줬다. 2004년엔 칼라일그룹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김 회장은 2005년 칼라일을 박차고 나와 자신의 영문 이름 ‘마이클 병주 김’의 앞 글자를 딴 MBK파트너스를 설립, 동북아 최대 PEF로 키웠다.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는 해외 IB 출신 PEF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다. 1971년생인 한 대표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예일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로 이어지는 학력에 더해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10년 5월까지 모건스탠리 PE 대표로 있으면서 쌍용(현 GS글로벌)과 옛 전주제지(현 한국노스케스코크), 랜드마크자산운용, 현대로템 등 10여 건의 딜을 주도했다.

2010년 말 그의 이름을 딴 한앤컴퍼니를 세운 한 대표는 테마섹 등으로부터 무려 8000억 원의 투자를 받아 일약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한국 국적의 PEF 투자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운용사를 설립, 해외에서 5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인 사례는 흔하지 않다. 현재 이 목표를 달성한 한국인은 김 회장과 한 대표 등 두 사람뿐이다.

한 대표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작년 대한시멘트를 인수한 데 이어 이 회사를 앞세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이 보유한 쌍용양회 소수 지분을 사들여 눈길을 끌었다. 또 최근에는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유진기업 광양공장 인수도 마무리했다.

현 한앤컴퍼니 회장인 윤여을 전 소니코리아 사장도 빼놓을 수 없다. 윤 회장은 20년 넘게 소니뮤직·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소니코리아 등 국내 진출한 소니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한 대표와는 하버드 MBA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한 대표는 투자 부문을, 윤 회장은 경영 부문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주, MBK를 동북아 최대 PEF로 키워

김종훈 이큐파트너스 대표는 김 회장이나 한 대표에 비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았지만 PEF 업계를 주무르는 ‘조용한 강자’다. 김 대표는 맥쿼리증권에서 IB 및 PE 업무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이큐파트너스는 2010년 설립됐다. 이 회사는 2009년 말에 약정액 500억 원으로 만들어진 한투파트너스 제1호(현 이큐파트너스 제1호)를 김 대표가 넘겨받으며 설립됐다.

김 대표가 이끄는 이큐파트너스는 5월 말 기준 5개의 PEF에 GP(무한책임사원, PEF 운용사)로 참여 중이다. 이큐피포스코글로벌 제1호(포스텍기술투자 공동 GP, 약정액 7056억 원), 이큐파트너스 제1호 글로벌(약정액 4000억 원), 동원 케이디비 이큐피글로벌투자파트너십(KDB산업은행 공동 GP, 약정액 3000억 원), 이큐파트너스 제1호(약정액 500억 원), 이큐파트너스 아시아인프라(약정액 400억 원) 등이 그것이다.

이와 함께 2005년 PEF 출범 당시 국민연금의 돈을 받으며 국내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의 주요 인물들도 대부분 해외파들이다. H&Q는 외국계 IB 출신인 고필재·이정진·이종원·임유철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H&Q는 현재 에이치엔큐제이호(약정액 3725억 원)의 펀드를 운용 중이다.

이 중 고필재 대표는 지난해 12월 H&Q와 결별하고 K&K라는 PEF 운용사를 설립했다. 고 대표는 김병주 MBK파트너스과 함께 국내 PEF 업계에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PEF가 뭔지도 몰랐던 1998년 외환위기 시절에 미국계 사모 펀드인 H&Q아시아퍼시픽 대표로 쌍용증권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PEF의 존재를 한국에 알렸다. 고 대표는 H&Q가 한국에만 투자하는 펀드로 자리를 잡은 후에도 줄곧 공동대표의 좌장 자리를 맡아 왔다.

민유성 티스톤 회장도 외국계 IB 출신이다. 민 회장은 모건스탠리 서울사무소장, 환은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사장,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 KDB산업은행 회장을 거쳤다. 민 회장은 2011년 티스톤에 합류했다.

티스톤은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일했던 원준희 대표가 2001년에 설립했다. 티스톤은 우리홈쇼핑·드림시티방송 등에 투자해 내부수익률(IRR) 108%의 투자 실적을 거둔 바 있다. 2011년에는 KDB산업은행장 출신인 민유성 회장이 합류해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유명해졌다. 2012년에는 뉴스위크 아시아판을 인수하기도 했다.

또 다른 국내 PEF 시장의 주류는 관(官) 출신들이 형성하고 있다. 변양호 보고인베스트먼트 대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 등이 관 출신의 스타들이다.

보고인베스트먼트는 2005년 9월 2일 설립된 국내 1호 PEF ‘보고’의 운용사다. 보고인베스트먼트에는 변양호 대표를 필두로 이재우·신지하·박병무 등 국내 PEF 시장의 거물 4인이 모여 있다.

이 중 변양호 대표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다. 변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19회로 관직에 입문했다. 경제 관료로 재직하면서 ‘천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탁월한 정책 감각과 능력을 인정받았고 외환위기 당시에는 국제금융과장으로 외채 협상 실무를 주도했다. 이후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정책조정심의관·금융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외환위기 이후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한 핵심 경제 관료 중 한 명이었다.

당시 미국 경제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1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도 삼성전자 사장 퇴임 후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쳐 PEF 업계에 몸을 담았다. 스카이레이크는 진 전 장관의 경험을 살려 주로 정보기술(IT) 기업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스카이레이크는 현재 코에프씨스카이레이크그로쓰챔프2010의5호(약정액 2320억 원), 스카이레이크제5호(약정액 2200억 원), 스카리레이크글로벌인큐베스트제이호(약정액 1060억 원), 스카이레이크제4호0901(약정액 1000억 원), 코에프씨스카이레이크글로벌윈윈1호(약정액 1000억 원), 스카이레이크파워컨트롤(약정액 500억 원), 스카이레이크글로벌인큐베스트제일호(약정액 316억2000만 원) 등의 펀드를 운용 중이다. 이 밖에 작년 구본진 전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이 민간 인프라 개발 PEF인 트루벤인베스트먼트를 세웠다.



벤처투자 출신 송인준·도용환 ‘주목’

IMM PE를 이끄는 송인준 대표는 벤처캐피털 및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 출신의 대표 격이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안진회계법인을 거쳐 사모 펀드에 바로 뛰어든 ‘정통 토종 사모 펀드맨’이다. IMM PE가 운용하는 펀드 중 가장 큰 펀드는 아이엠엠로즈골드2다. 이 펀드 하나의 규모만 7361억 원에 달한다.

2006년 벤처캐피털사인 IMM인베스트먼트에서 분리돼 설립된 IMM PE는 2012년 우리금융지주·교보생명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며 PE 업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엔 제약 업계의 굵직한 M&A와 투자를 주도해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독약품과 근화제약 투자에 이어 세계 최대 복제약 회사인 ‘테바’와 합작사 설립까지 그가 주도했다. ‘제약 업계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국내 사모 펀드 IMM PE의 송 대표를 찾으면 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벤처캐피털인 스틱을 설립한 후 이를 사모 펀드로 변신시켜 업계의 리딩 컴퍼니로 만든 인물이다. 1982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한 그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제일종합금융에서 심사 및 주식, 채권운용을 담당하며 기업을 보는 눈과 자금 운용 노하우를 쌓았다.

이후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신한생명보험 투자운용실장을 맡은 뒤 1996년 스틱을 설립했다. PEF에는 2009년부터 진출했다. 스틱인베스트가 운용하는 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펀드는 코에프씨스틱그로쓰챔프2010의2호로 약정액은 5052억 원 규모다.

국내 대기업 간부 출신들이 세운 PEF도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애니콜 신화’로 유명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케이더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며 PEF 대열에 합류했다. 글로벌 PEF인 어피니티의 한국 대표인 박영택 부회장도 삼성그룹 재무팀 출신이다. 큐캐피탈파트너스는 총약정액 약 9000억 원 규모로 현대증권 M&A팀이 독립해 만든 회사다.
[SPECIAL REPORT Ⅰ] ‘40조 원’ 주무르는 사람들… 금융계의 ‘엄친아’ 불려
국내 PEF 시장 현황
연·기금 수요 탄탄 …‘앞으로 더 큰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되는 건 PEF밖에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저금리로 은행업과 보험업은 ‘역마진 위험’에 시달리고 있고 증권은 수수료 감소로 고사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자산 운용업 역시 증권업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PEF 시장은 제도 도입 8년 만에 40조 원 시장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5월 3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PEF는 228개로, 약정액은 총 42조2169억 원에 달한다. 약정액은 투자자가 출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으로, 일종의 예비 투자 자금을 뜻한다.

국내 PEF 시장은 2004년 말 제도 도입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성장 속도가 배가됐다. 2007년 9조 원이었던 PEF 약정액은 2008년 14조6000억 원으로 62% 이상 급증했고 2009년에는 20조 원으로 커졌다. 이후 유럽 재정 위기가 본격화된 2010년에는 26조 원을 넘어섰고 2011년 말에는 31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후 1년 반 만에 또다시 11조 원이 늘어난 것이다.

PEF 시장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약정액 5000억 원 이상의 초대형 PEF들도 잇따라 출현했다. 지난해 설립된 약정액 5000억 원 이상인 PEF는 총 6개로 전년에 비해 배로 늘었다. 약정액 5000억 원 이상이면 차입 한도까지 최소 1조 원 이상의 투자 여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국내외 빅딜에 대한 투자 기회를 노리는 PEF가 많아진 것이다. 최근 대기업 및 은행 인수·합병(M&A)에 PEF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이처럼 PEF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저금리와 경기 불황에 대응해 대체 투자를 크게 늘린 덕택이다. 지난해에는 제도 도입 이후 사상 최대인 9조7000억 원(약정액 기준)에 달하는 자금이 PEF로 몰렸다. ‘위기를 먹고 자란다’는 PEF의 특성이 금융 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설립된 대규모 PEF를 보면 신한프라이빗에 쿼티투자자문과 스톤브릿지캐피탈이 ‘신한스톤브릿지 페트로’가 약정액 8182억 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이 PEF는 SK에너지 인천 공장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국민연금·정책금융공사·사학연금·교보생명 등 다수의 기관들이 투자했다. 다음은 IMM PE가 지난해 초 설립한 ‘IMM로즈골드2’가 7361억 원, 우리자산운용과 EIG글로벌에너지코리아가 지난해 3월 세운 ‘포스코-우리EIG글로벌’이 5600억 원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PEF 시장의 고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금리와 저성장 기조로 국내 기관들이 대체 투자를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이 지난 4월 17일 개최한 2013년 2013년 글로벌 PEF 포럼에 참석한 국내 기관투자가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국내 기관투자가의 72.2%가 올해 1000억 원 이상의 PEF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규모별로 보면 2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44.4%나 됐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