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암투와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역작 ‘황금의 샘’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가 이번엔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에너지의 미래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에너지 믹스와 에너지 문제가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2011년 초 지구 정반대 편에서 벌어진 두 사건은 현대 문명이 얼마나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후쿠시마 대지진은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이후 최악의 핵사고로 이어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근 다른 발전소 피해와 겹치면서 도쿄와 도쿄 북동부 지역의 전력 수급에 차질을 초래했다.
일본 정부는 순환 정전 조치를 취해야 했다. 현대사회가 갑작스러운 에너지 공급 부족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일본의 공업 생산력 손실은 글로벌 공급 사슬을 교란했고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지구 반대편 튀니지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젊은 과일 장수의 분신은 휴대전화·인터넷·인공위성의 위력에 힘입어 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 거센 민주화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튀니지 정권이 무너지고 이집트 정부도 손을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요 석유 수출국인 리비아도 내전에 휩쓸렸다. 수십 년 동안 중동을 지탱했던 지정학적 균형이 붕괴되면서 국제 원유가는 반사적으로 무섭게 치솟았다.
우리가 에너지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에너지를 둘러싼 불안은 더 증폭된다. 현재 세계경제의 규모는 62조 달러에 이른다. 불과 20년 후면 130조 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몸집을 가진 세계경제를 굴리는 데 필요한 연료를 충당할 자원이 과연 있을까. 지금 거리를 누비는 차는 10억 대 정도이지만 앞으로 20억 대가 넘는 차가 굴러다닌다면 석유 자원에 문제가 없을까. 에너지에 대한 세계의 집착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니얼 예긴 지음┃이경남 옮김┃936쪽┃올┃3만8000원
우주의 오아시스 지구
빌 매키번 지음┃김승진 옮김┃328쪽┃김영사┃1만5000원 이 책의 원제는 ‘Eaarth’다. 한때는 우주의 멋진 오아시스로, 아름답고 시원하고 푸른 행성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너무 습하게 변해 버린 지구를 새로운 행성으로 표현하기 위해 저자가 만들어 낸 신조어다. 1968년 12월 달 주위를 공전하던 아폴로 8호 우주 비행사가 ‘지구돋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그 사진 속 푸른 지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한킴벌리 이야기
정혁준 엮음┃268쪽┃한스미디어┃1만4000원 40년 넘도록 ‘착한 기업’으로 사랑받는 유한킴벌리 탐구서다.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독특한 기업 문화와 혁신 노하우를 파헤쳤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유한양행과 킴벌리클라크의 합자회사로 탄생했으며 생리대와 종이기저귀 등 주력 제품 대부분이 국내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이 회사 전 사원이 혁신 DNA로 무장한 강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지 착하기만 한 것은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착하면서도 강한’ 기업이다.
포르쉐의 전설
슈테판 아우스트 외 지음┃홍이정 옮김┃416쪽┃가치창조┃1만8000원 1875년 설립된 포르쉐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 중 하나다. 천재적인 엔지니어였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모든 국민이 자동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아돌프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폭스바겐 비틀을 개발해 냈다. 그 후 포르쉐 가문은 세계 자동차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현재 페르디난트의 친손자 볼프강 포르쉐가 포르쉐 회장으로, 외손자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폭스바겐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증오 상업주의
강준만 지음┃264쪽┃인물과사상사┃1만3000원 작년 18대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이유를 문화정치학의 틀로 분석했다. 저자의 결론은 극한 이념 대립을 부추기는 ‘증오 상업주의’가 국민의 정치 환멸을 재생산했다는 것이다. 노골적인 우익 성향을 드러내는 미국 폭스 뉴스의 급성장이 ‘우리 대 그들’로 편을 가르는 증오 상업주의의 득세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야권이나 진보 진영도 증오 상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고 국민의 절반이 절망하는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 선거에서 무조건 우리 편이 이겨야 한다고 보는 ‘선악 이분법’도 마찬가지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이종우의 독서 노트
속물 교양의 탄생
개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 인기 끈 이유
오래전엔 자기소개서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쓰는 칸이 있었다. 누가 시작했고 왜 그런 질문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필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썼던 기억이 난다.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였을 텐데 읽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자니 찔렸다, 그래서 책을 사긴 샀다. 30년 넘게 몇 페이지만 보고 책꽂이에 꽂아 둬서 문제지만….
‘속물 교양의 탄생’에서 감명 깊은 책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 이유를 찾았다. 무려 10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양에 대한 과시였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서양 문학을 진짜로 이해하고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어쩐지 내 길을 밝혀줄 것 같으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독서가 이런 형태이다 보니 행세깨나 하는 사람은 대부분 해외 문학 작품에서 글귀 한두 개 정도를 인용할 줄 알았다. 글에서 시작된 과시욕은 서재로 발전한다.
신문이 앞장서 유명 인사의 서재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대부분 ‘서재 내부는 양식으로 꾸며졌으며 그 안에 금박 박힌 영어·독어 원서가 가득하다’로 시작된다. ‘서양식’, ‘금박 박힌 원서’, ‘외국 학술 잡지’가 명사의 서재에 걸맞은 지표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학교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던 서재가 개인 공간으로 좁혀졌고 남자의 공간이었던 사랑방이 사라졌다.
서재를 장식하려면 책이 있어야 한다. 특히 전집이 필요하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고급 양장을 통해 온갖 멋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문학 전집을 얘기할 때 ‘개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을 빼놓을 수 없다. 개조사란 이름의 일본 출판사가 만든 책인데, 당시 글 좀 읽는다는 사람 치고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식민지 시기는 촌스럽지만 책을 통해 시민을 키워내던 진짜 교양의 시대다.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1000년 넘게 선비 계급에 머무르던 교양이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퍼지던 때이기도 하다.
뭐든 처음은 촌스럽게 시작된다. 교양도 그렇다. 지금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처음에는 다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촌스러움은 고급 교양이 만들어지는 기초다. 속물스럽다고 해서 처음 교양을 접하던 당시 우리 선배들의 열정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
박숙자 지음┃411쪽┃푸른역사┃2만 원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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