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서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상당할 뿐더러 무엇보다 유명 지휘자로, 또 유라시안 오케스트라 최고경영자(CEO)로, 라움 아트센터의 예술 감독 등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누구보다 바쁜 그가 장기 예능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움 아트센터에서 인터뷰한 날에도 그는 오케스트라 연습과 지방 연주회 사이에 간신히 짬을 낸 터였고 그 사이에도 다음 연주회를 위한 실무 회의가 잡혀 있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또한 ‘한중 교류 20주년 기념 음악회’에 참석하느라 중국에 다녀 온 직후이기도 했다.
“최근 중국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너 번 협연했었는데, 반응이 좋아 이번에 한중 수교 20주년을 기념으로 클래식 페스티벌을 열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와 우리나라 연주자 15명, 베이징대 음악원 쪽 연주자 20명과 함께한 이번 합동 연주회는 중국의 음악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듯하다. 중국에 이어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열기로 한 합동 연주회를 또다시 중국에서 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으니 말이다.
1993년에 국내 최초로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고 이를 유행시켜 온 지휘자 금난새를 눈여겨본 중국 측의 초대로 이뤄진 이번 페스티벌에서 그는 중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금난새 식의 클래식 해설을 선보여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사실 지금까지 중국과 경제 교류는 빈번했지만 클래식 음악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번 합동 연주회는 한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클래식 음악의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은 서로의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이번 교류를 통해 앞으로 서로의 음악을 인정하고 또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죠.”
아직 중국에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가 없는 만큼 이번 교류를 토대로 앞으로 중국에도 그가 한국에서 그랬듯이 ‘음악회 해설 붐이 일지 않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클래식은 어렵고 딱딱하고 자기들만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좀 더 생활 속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바쁜 와중에도 패밀리합창단의 지휘를 맡게 된 것도 이처럼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음악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서다.
“사실, 처음에 섭외 받았을 때는 거절했죠.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도 알지 못하던 상태였거든요.”
합창단의 지휘를 맡는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노래를 정하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데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아마추어들을 모은 만큼 성악 코치를 정하고 연습 과정을 정하고 관련 음악 스태프들을 선정하는 것 하나하나가 그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연습 과정 전부가 TV를 통해 방송되는 만큼 결코 녹녹하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예전 ‘노영심의 프러포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 프로듀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고 마음을 돌렸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오던 그대로 음악을 만들고 보여준다면 음악이 가진 힘을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오디션을 통해 많은 가족을 만나고 많은 사연을 듣고 또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새삼 지휘를 맡게 된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수많은 가족을 만나며 새삼 깨달은 음악의 힘
사실 ‘남자의 자격-합창단’ 프로젝트는 시즌마다 눈물과 웃음 그리고 음악을 통해 진한 감동을 전해줘 왔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이들의 눈물겨운, 때로는 정다운 사연들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곤 했다.
이번에 그가 지휘를 맡기로 한 ‘패밀리합창단’ 역시 오디션 과정에서 다양한 가족들의 사연들로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곤 했다. 농구 선수 박찬숙 모녀를 비롯해 고 최진실의 자녀인 환희와 준희 남매, 가수 아이비 모녀 등 유난히 유명인이나 연예인 가족이 많이 포함돼 화제를 모았다.
“연예인이나 매스컴을 타는 사람들, 유명한 가족들도 많이 포함됐지만 연습하는 데 특별히 달라질 건 없을 거예요. 다들 개성이 뚜렷하고, 또 다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오히려 더 즐거운 작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수많은 오디션 응모자들 중에서도 특히 희귀병에 걸렸던 어린 남매, 갑자기 시각을 잃게 된 청년과 그의 연인의 사연과 노래는 그에게도 잊지 못할 진한 감동을 전해 줬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너무나 해맑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또 음악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전하는 그 모습들을 보며 음악이 가진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어요. ‘아, 이건 시간이 없어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구나’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고요.”
‘남자의 자격-합창단’은 어찌 보면 그가 지난 수십여 년 간 해 온 음악 활동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음악이, 클래식이 거대하고 웅장한 콘서트홀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네 일상생활 속 삶속에 있어야 한다는 게 바로 그의 음악관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것이나 강화도 체육관에서 공연하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클래식에 대한 갈망이나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갈망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어떤 시설을 갖고 있건 그곳이야말로 최고의 음악홀인 셈이니까요.”
‘패밀리합창단’ 프로그램을 위해 11월에 있을 국제합창제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금난새 씨는 오디션에 합격한 가족 단원들과 함께 합창을 연습해야 한다. 영화 ‘대부’에 나왔던 음악 오페라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에 가사를 입혀 합창곡으로 연습할 예정이다.
“연습이나 연주 모두 실제로 하는 이들은 물론 TV를 통해 지켜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 삶에 대한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합창을 만들어야죠. 기존의 합창곡이 아니라 따로 가사를 만들어 입히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고요.”
한편 지금까지 ‘남자의 자격-합창단’의 지휘를 맡아 온 ‘박칼린’이나 ‘김태원’ 등은 각기 저마다의 리더십으로 화제를 모았던 만큼 앞으로 그가 보여줄 리더십에 대해 기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소의 카리스마’라는 별칭답게 온화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진지한 그가 보여줄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하하. 그런가요? 어차피 지휘자는 요구가 많고 또 나쁜 점을 지적해야 하는 위치예요.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상대가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할까’하는 마음으로 미소 짓는 것일지도 모르죠. 어쨌건 제가 하고 싶은 지휘, 하려고 하는 지휘와 음악은 간단해요. 바로 좋은 음악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죠.”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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