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국민연금은 영국 런던에 두 번째 해외 사무소를 열었다. 당시 개소식이 열린 런던 시내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은 유럽 금융계 거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더글러스 플린트 HSBC 금융그룹 회장, 디디에 발레 소시에떼제네랄 회장, 마커스 애귀 바클레이스 회장, 데이비드 루비스타인 칼라일 회장, 콜린 그래시 도이치뱅크 최고경영자(CEO) 등 좀처럼 한자리에서 모이기 힘든 인물들이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국민연금은 380조 원(2012년 8월 말)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연·기금이다. 매년 기금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는 ‘젊은 연금’이기 때문에 신규 투자 여력에서는 다른 연·기금을 압도한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국민연금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개소식에서 전 이사장은 “10년 내에 1000조 원 규모로 성장하는 국민연금은 투자 다변화 및 글로벌 투자 확대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런던 사무소 개소는 이러한 전략에 부합하는 중요하고 상징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작년 6월 뉴욕 사무소에 이은 런던 사무소 개설로 서울↔런던↔뉴욕으로 연결되는 24시간 국제금융 동향 현지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글로벌 금융시장 ‘큰손’ 부상 "세계 3대 연·기금 도약…수익률 ‘1위’"
런던 사무소 개소식에 몰려든 거물들

국제금융 시장에 밝은 전 이사장은 2009년 부임 직후부터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에 힘을 쏟았다. 런던은 국민연금이 해외 진출의 신호탄을 가장 먼저 쏘아올린 곳이기도 하다. 2009년 10월 국민연금은 런던 시내의 상업용 빌딩 ‘40 그로브너 플레이스(1730억 원)’와 ‘88 우드 스트리트(1850)’를 사들였다.

곧이어 다음 달에는 1조4860억 원을 투입해 런던 카나리워프의 상징인 HBSC 타워를 손에 넣었다. HSBC 본사가 입주해 있는 이 건물은 영국에서 가장 비싼 빌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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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민연금이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청(아이다)과 공동 인수한 런던 개트윅 공항은 해외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캘퍼스·아이다와 공동투자 방식으로 1740억 원을 투자해 개트윅 공항의 지분 12%를 확보했다.

국민연금은 투자 1년 만에 원금의 약 44%(760억 원)를 조기 회수한데다 최근 개트윅 공항의 영업이익 성장세가 뚜렷해 추가 수익까지 기대하고 있다. 개트윅 공항은 히드로 공항에 이어 영국 2위, 유럽 6위의 공항으로 매년 3200만 명 이상이 이용한다.

2009년 이후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는 투자 대상과 규모가 매년 큰 폭으로 확대됐다. 국민연금은 2012년 8월 현재 영국을 포함해 일본·호주·독일·프랑스·미국에 상업용 빌딩과 쇼핑몰·공항·파이프라인 등 13개의 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16조1000억 원에 불과하던 해외 투자 규모도 56조3000억 원(2012년 6월 말)으로 3배 이상 불어났다. 여기에는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 투자는 물론 해외 채권과 주식도 포함된다.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글로벌 금융시장 ‘큰손’ 부상 "세계 3대 연·기금 도약…수익률 ‘1위’"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내시장에서는 더 이상 투자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 6월 말 현재 기금 규모가 367조4000억 원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30%에 육박한다. 2035년에는 이 수치가 GDP 대비 50%에 이를 전망이다. 2043년 추정 기금 규모는 2460조 원에 달한다.

과거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채권 투자에만 주력해 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채권에 돈을 묻어 놓으면 안정적으로 10% 이상의 수익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저금리로 지금은 2~3%대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행된 채권의 15.3%를 이미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어 이를 더 늘리기도 쉽지 않다.

사정은 주식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이미 국내 주식시장에만 62조3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는 ‘큰손’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모두 합한 시가총액이 1174조 원(2012년 6월 말)에 불과해 국내 주식시장이 국민연금에는 너무 좁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금 측은 “해외 투자 확대는 균형 잡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글로벌 차원에서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내 투자 리스트를 효과적으로 분산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장기 수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전반적인 부진에 빠진 가운데서도 7조7000억 원대(수익률 2.3%)의 비교적 양호한 투자 수익을 거뒀다. 일등 공신은 해외 투자였다. 주식과 채권, 대체 투자에서 모두 해외 부문이 국내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다. 주식은 국내 마이너스 10.34%, 해외 마이너스 5.9%, 채권은 국내 5.67%, 해외 6.59%, 대체 투자는 국내 9.02%, 해외 12.03%였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해외 대체 투자가 12%대의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이 도드라진다.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글로벌 금융시장 ‘큰손’ 부상 "세계 3대 연·기금 도약…수익률 ‘1위’"
5년 수익률 주요 연·기금 중 1위

국민연금은 세계 주요 연·기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장기 투자가인 연·기금에 한두 해의 ‘반짝’ 성적은 큰 의미가 없다. 국민연금의 최근 5년 연평균 수익률은 6.0%로, 일본 공적연금(GPIF, -2.1%), 노르웨이 글로벌연금펀드(GPF, 1.6%),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3.1%), 미국 캘퍼스(0.4%) 등을 훨씬 앞지른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북미와 유럽 등 선진 시장에 집중돼 왔던 해외 투자를 신흥 시장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투자 통화와 투자 섹터가 다양해지면 그만큼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낮아진다. 올 초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 다변화의 일환으로 중국의 본토 투자 자격(QFII)을 획득했다.

4월에는 1억 달러의 투자 한도를 배정하고 현재 투자를 집행 중이다. 국민연금은 성장 잠재력이 큰 중국에 대한 투자는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 투자 다변화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가격이 급락한 선진국의 저평가 우량 실물 자산을 적기에 사들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런던의 개트윅 공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글로벌 투자 기관들과 치열한 경쟁 끝에 손에 넣은 미국 컬러니얼 파이프라인도 연 6%대의 안정적인 배당 수익과 함께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자본 차익까지 기대되고 있다. 선진국 핵심 상업 지역에 확보한 랜드마크 부동산 자산 역시 안정적인 임대 수입과 함께 자산 가치 상승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국민연금은 부동산·인프라 외에도 사모 펀드 투자를 새로운 대체 투자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만든 공동 펀드(Coporate Partnership)는 기업의 국제 경쟁력과 국민연금의 장기 투자 여력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모델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 등에 국민연금이 재무적 투자자로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2012년 8월 말 현재 국내 17개 기업과 5조7760억 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 8월 국민연금은 공동 펀드 운용 대상을 국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으로 확대했다. 이 조치는 성장 잠재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해외 시설 투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중견 기업 공동 펀드는 위탁 운용사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이 설립한 PEF가 미국 아큐시네트를 인수할 때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