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유동성 위기에 놓인 쌍용건설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채권단의 자금 지원으로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면하게 됐다. 지난 9월 6일 520억 원 규모의 어음 만기를 앞두고 캠코가 쌍용건설이 발행한 어음 700억 원을 사들이고 KDB산업·KB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채권단이 최대 1300억 원 규모의 담보대출을 하기로 방향을 잡으면서다.

올해 들어 쌍용건설은 여러 차례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8월 31일 채무 600억 원의 만기와 9월 6일 520원 억 규모의 어음 만기가 돌아왔고 올해 말까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1000억 원 규모의 채무 만기가 기다리고 있다.

쌍용건설은 시공 능력 13위로 그룹사를 제외한 건설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고급 건축 분야에서 세계 3위권으로 평가될 만큼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0년 싱가포르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준공해 올해 싱가포르 건설청이 주관하는 건설 대상에서 플래티넘과 골드 상을 받기도 했다.

세계 20개국에서 128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고 올 상반기 해외 건설에서 320억 원의 공사 이익을 거뒀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쌍용건설이 악전고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서 잘나가는 쌍용건설 위기 왜? "자산 할인 ‘ 부메랑’…새 주인 ‘ 오리무중’"
문제는 국내에서 생겼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대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보증 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미분양 상태가 지속되며 시행사가 부실화됐고 시행사의 PF를 떠안게 되면서 2010년 말부터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쌍용건설은 PF 부실 규모를 1조1000억 원에서 5000억 원대로 줄였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분양 주택도 3000여 가구에서 대형 건설사 중 최저 수준인 370가구로 줄이는 등의 자구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이는 제 살 깎아 먹기 식 자구책이었다.

같은 어려움에 처한 다른 대형 건설사들이 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한 것과 달리 쌍용건설은 증자 대신 미분양 등 자산을 30% 수준까지 할인하면서 자금을 조달한 것. 자본금이 1400억 원대에 불과해 획기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대 지분(38.75%)을 보유하고 있는 캠코는 매각을 통한 증자를 고수했다.

매각 시도 또한 모두 실패하면서 그 사이 자산 할인 매각 여파 등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다행히 캠코와 채권단이 담보대출을 하는 등 자금 지원으로 한숨은 돌리게 됐지만 남은 과제가 있다. 결국 종착역은 성공적인 매각 완료다.



올 들어서만 세 번 매각 시도

쌍용건설의 매각 스토리는 인수·합병(M&A) 업계에서도 이례적으로 꼽힌다.

2007년 11월 첫 매각 시도 이후 캠코가 2011년 12월 2차 매각 공고를 냈고 이후 올 들어서만 세 번 매각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2007년 당시만 해도 관심을 갖는 기업이 여러 곳이었다. 쌍용건설이 2004년 워크아웃을 5년 8개월 만에 조기 졸업했고 매년 500억 원의 순이익을 내는 구도로 탈바꿈해서다.

동국제강·오리온·군인공제회·아주그룹·남양건설 등 5개사가 인수 후보군으로 선정됐고 동국제강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혔다. 동국제강에서 제시한 인수 가격은 주당 3만1000원으로 총 인수 금액은 4620억원이었다. 하지만 동국제강과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군인공제회가 포기했고 마침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동국제강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연장과 인수 손실 보전을 요청했고 캠코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의문으로 꼽히는 점은 그 후 지난해 말까지 매각 시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M&A 시장 전문가는 바로 재매각에 들어갔으면 주당 2만 원대 수준에서 M&A가 이뤄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후 동국제강이 캠코를 상대로 입찰 보증금 231억 원 반환 소송을 제기한 상황에서 곧바로 매각을 추진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2차 매각 공고는 3년 만인 지난해 말 나왔다. 하지만 독일계 엔지니어링 업체 M&W가 단독 참여하면서 유효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3차 매각 공고는 올해 3월 났지만 역시 M&W가 단독 입찰해 무산됐다. M&W의 참여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

쌍용건설이 해외 고급 건축에 강점이 있어 이를 기반으로 해외시장 영역을 넓히려 한다는 의견과 경영 목적보다 기술력을 빼가려는 투기 자본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소문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지난 5월 4차 매각 시도에서 결국 M&W가 최종 입찰 제안서를 미제출하며 매각이 또 한 차례 무산됐다.

한 시장 전문가는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였지만 잇따라 실패하면서 M&W가 자존심이 상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편에서는 “M&W 입찰이 유찰로 결론되더라도 수의계약 협상 대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무산된 것은 그만큼 싼값에 쌍용건설을 인수하려 했다는 얘기”라는 의견도 있다.

5차 매각 시도는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공적자금 투입 기업을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면 자칫 ‘헐값 매각’, ‘특정 기업 지원’ 등 각종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의계약을 추진했다는 것은 그만큼 매각이 다급했다는 해석이다.

그 결과 이랜드가 단독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랜드가 제시한 인수 가격은 구주 가격으로 주당 6000원 수준이다. 지난 5월 이전까지만 해도 쌍용건설의 주가가 6000원 이상을 유지했다는 점을 볼 때 프리미엄이 사실상 붙지 않은 셈이다.

동국제강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에는 주가가 2만 원 수준에, 주당 인수 가격이 3만1000원으로 프리미엄이 50~60% 수준으로 붙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랜드가 쌍용건설의 우발채무를 들어 인수가를 최대한 낮추려고 했고 손실 보전금을 요구하면서 캠코와의 입장 차이로 협상이 결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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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정상화·자생력 회복 ‘시급’

또한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이 갖고 있던 ‘우선매수청구권’이 변수로 작용했다. 쌍용건설 매각에서 또 하나 이슈가 된 부분은 ‘우선매수청구권’이다. 2003년 3월 쌍용건설 직원들이 퇴출 직전 회사를 살리기 위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면서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채권단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준 것이 바로 우선매수청구권이다. 감동적인 사연을 안고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이지만 매각에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쌍용건설 지분 10.04%를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이 우선매수청구권 24.72%를 행사하면 경영권 때문에 인수 희망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쌍용건설은 지난 3차 매각 시도 때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이 수의계약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번복할 수도 있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영증권의 한종효 애널리스트는 잇단 매각 무산의 주된 원인으로 건설 경기 침체를 꼽았다. 공교롭게도 처음 동국제강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2008년은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때였고 다시 매각을 진행한 지난해 말부터는 쌍용건설이 유동성 위기를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조7336억 원의 매출과 1321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쌍용건설은 올 상반기 800억 원의 손실을기록했다.

쌍용건설 쪽에서는 김석준 회장의 사재를 털고 직원들의 퇴직금을 정산하면서까지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고 몇 차례 위기를 겪어내며 지난해까지 2조 원 수준의 매출을 유지한 회사다.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 수주 실적을 일궈내 자부심도 강하다. 하지만 인수하려는 쪽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경험이 중요한 건설업의 특성상 인력 관리를 꾸준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매물로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매각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 지원에 따른 쌍용건설의 경영 정상화와 자생력 회복이라는 지적이다. 굳이 정권 말기에 불리한 조건에서 매각을 밀어붙여 ‘특혜 의혹’을 사기보다 쌍용건설이 정상화된 후 시도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의 한 간부는 “향후 매각 추진 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중요한 것은 회사가 정상화되고 해외 성장 동력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한때는 종업원지주회사를 꿈꾼 적도 있었지만 그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회사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에서 인수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 이 기사는 2012년 9월 10일 발행된 한경비즈니스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