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과 숫자 몇 개에 한국이 들썩였다. ‘Aa3’. 한국이 지난 8월 27일 국제 신용 평가사 무디스에서 받은 역대 최고 신용 등급이다. 다른 신용 평가사들도 높은 재정 건전성과 경제 활력을 감안해 등급 상향에 가세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로 투기 등급까지 추락했던 한국 경제가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무디스는 이날 한국의 신용 등급을 기존 ‘A1’에서 ‘Aa3’로 한 단계 높이고 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으로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Aa3’는 ‘투자 적격’으로 분류되는 10단계 중 네 번째로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무디스로부터 받은 역대 최고 등급이다. 일본·중국·벨기에와 등급이 같다.

우리나라가 받아온 ‘A(싱글A)’ 등급은 ‘신용도가 높지만 예외적으로 금전적 의무(채무를 갚는 등) 이행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간 ‘AA(더블A)’는 금전적 의무 불이행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만큼 신인도가 높다는 의미다.

무디스는 신용 등급 상향의 이유로 양호한 재정 건전성을 꼽았다.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과도한 빚 부담을 진 스페인·그리스 등과 달리 위기관리를 잘해 왔다는 것이다. 외화보유액이 많고 국가 부채도 적어 비상시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높은 경제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은 그동안 비슷한 경제 여건의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신용 등급을 받았다. 북한에서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경제가 어느 정도 타격을 받을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 신용 등급 상향에서 북한 리스크 완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무디스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 이행에도 한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경제부처 24시] 한국 신용 등급 상향 일등 공신은
양호한 재정 건전성 ‘호평’

한국의 신용 등급 상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주요국의 신용 등급이나 등급 전망이 줄줄이 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신용 등급이 ‘A’ 등급 이상인 국가 가운데 올 들어 신용 등급이 오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A’ 등급 이상을 받아오던 나라들은 최근 수난 시대다. 재정 위기의 근원지인 유럽이 특히 그렇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 초 이탈리아의 신용 등급을 ‘A’에서 ‘BBB+’로 두 단계 낮췄다. 피치도 ‘A+’에서 ‘A-’로 내렸다. 스페인에 대해선 S&P가 4월에, 피치와 무디스가 6월에 신용 등급을 2~3단계 떨어뜨렸다.

프랑스와 일본 등 전통적인 선진국들도 신용 등급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S&P는 올해 1월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트리플에이)’에서 한 단계 아래인 ‘AA+’로 낮췄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의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어 향후 재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은 누적된 공공 부채 때문에 굴욕을 맛봤다. 피치는 지난 5월 일본의 신용 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내렸다.

국가 신용 등급이 올라가면 외국에서 자금을 조달 받을 때 비용이 낮아진다. 정부는 대외 채무에 대한 이자비용을 연간 4억 달러(약 4500억 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적 실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는 ‘자신감’이다.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건전 재정과 가계 부채 종합 대책 등 정부의 경제 운용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며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경제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