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진 기업의 경영 혁신 트렌드①
노키아가 심상치 않다. 종이·고무·케이블에 이어 이동전화까지 지난 150년간 변신에 변신을 거듭,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통신업 분야의 글로벌 강자로 손꼽히던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다. 그런 노키아가 위기를 맞고 있다. 경쟁 기업의 혁신 노력에 ‘밀린’ 결과다.
경영 혁신은 기업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 지 오래다. 끊임없는 변화의 노력 없이 영원한 절대 강자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혁신을 수행하고 있을까.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에서는 최근 경영 환경을 변화시키는 3대 동인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정리한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아라
첫째, ‘개방적·협력적 혁신(Open Collaborative Innovation)’이다. 이제 기업들은 과거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고객 및 협력사는 물론 다양한 오픈 소스와 소통하며 경쟁력을 확보한다. 예를 들어 P&G는 외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내부의 연구·개발(R&D)에 연계해 제품을 개발하는 ‘연계 개발(Connect & Develop)’ 방식을 도입했는데, 신제품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의 절반 이상을 외부로부터 착안하고 있다. 투자비용을 낮추면서도 성과를 높이는 접근인 셈이다.
둘째, ‘기술 기반 혁신(Technology Driven Innovation)’이다.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까지 가능하게 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대표 주자 페이스북(Facebook)은 기존과 차별화된 기술을 활용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업계 판도마저 뒤바꿔 놓았다.
셋째, ‘비즈니스 모델 혁신(Business Model Innovation)’이다. 과거의 혁신은 대개 업무 방식, 즉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비해 비즈니스 모델 혁신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고 가격을 책정, 판매하는 등 큰 변화를 가져온다. 델(Dell)은 중간 유통 단계 없이 직접 소비자와 거래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재고 관리 및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인도의 대표적 통신회사 바르티(Bharti)는 최근 몇년 동안 30% 이상씩 성장했다. 물론 인도라는 주요 신흥 시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업의 경쟁력과 성공 비결은 역시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바르티는 마케팅·영업 등 일부 핵심 기능을 제외한 기업 운영의 대부분을 위탁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넓은 인도 시장의 고객 서비스 등 지원 업무를 외부에 맡기는 대신 핵심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고 아웃소싱을 통한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혁신 트렌드는 이처럼 비즈니스 모델을 변화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가치 사슬을 창조함으로써 타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혁신의 규모가 클수록 여타 경쟁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간극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들의 모범 사례를 보면 대부분 혁신 목표, 혁신 전략, 혁신 영역, 혁신 인프라 등의 핵심 요소로 구성된 강력한 ‘혁신 체계’ 하에서 경영 혁신을 추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 참조). ‘혁신 목표’는 최대한 구체적이고도 정량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2001년 신임 회장의 취임 이후 연 8%의 유기적 성장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임직원과 전사적으로 공유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예를 들 수 있다.
‘혁신 전략’은 기존의 혁신 방식과 성과, 기업 문화 등을 두루 고려해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IBM은 작년 말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 통합 기업(GIE: Globally Integrated Enterprise)’으로 거듭나기 위해 ▷혁신 수행 조직 및 보고 체계 등 거버넌스를 우선 정립하고 ▷관련 영역의 업무를 표준화한 후 ▷전 세계 운영상의 최적화 방안을 고려하는 단계적 전략을 갖고 혁신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혁신 영역’은 실질적인 경영 혁신이 이뤄져야 할 분야를 의미하는데,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대체로 ▷성장을 위한 신사업·신제품 개발 혁신 ▷일하는 방식의 혁신 ▷조직·문화 혁신 등 크게 세 가지 영역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혁신 인프라’는 혁신을 실행하고 지원하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대체로 혁신 조직, IT, 혁신 촉진자(enablers) 등으로 나뉜다. 혁신을 주도하는 조직은 통상 기업 내에서 핵심 인재를 선발해 최고경영자(CEO) 직속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 간 공감대 만들어야
언스트앤영에서는 여러 글로벌 선도 기업과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목표 및 전략 수립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장기 전략과 연계한 혁신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조직의 중·장기 전략 방향의 이해를 바탕으로 향후 비즈니스 영역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또 그와 연계해 추진해야 할 신사업과 신제품은 무엇인지 고려해야 한다.
둘째, 혁신 목표는 반드시 정량화해야만 한다. 정량화된 구체적 목표 없이는 혁신을 통한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우며 조직원의 혁신 몰입도도 매우 낮아지게 된다.
셋째, 중·장기적 관점의 혁신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큰 그림 없이는 체계적인 경영 혁신이 어렵다. 혁신 추진 기간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또 혁신 인프라는 어떻게 갖춰 나갈 것인지 등 종합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넷째, 조직 문화와 준비 정도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기업이 한다고 해서 마냥 따라하는 혁신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조직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하고 기존에 추진해 온 혁신 프로그램의 성과와 새로운 혁신 노력을 위한 준비 정도 등을 고려해 최적의 추진 방안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실질적 성과 창출을 위한 변화 관리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전략이 있더라도 혁신의 주체인 조직 구성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전 임직원과 공유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하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효과적인 변화 관리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이정욱 언스트앤영 한영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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