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1주일 만에 하이마트를 인수한 이유는 뭘까. 지난 6월 28일 신 회장은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전사적인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했다. 이는 재계 순위 30대 그룹 가운데 최초다. 더구나 공개적인 비상 경영 체제 선언은 이례적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시장에서 대놓고 어렵다는 점을 고백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인수·합병(M&A)은 항상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승자의 저주’의 덫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M&A로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C&그룹 등이 그런 경우다. 더구나 사장단 회의에서 신 회장은 “지난 몇 년간 롯데는 국내외 대형 M&A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지만 지금은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스스로 경고장을 거둬들인 셈이다.
롯데, 내수부진·해외진출 난관 부딪쳐
우선 신 회장이 비상 경영을 선언한 배경은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롯데의 상반기 실적이 워낙 좋지 않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롯데그룹의 주력은 유통과 화학이다. 2011년 매출액을 보면 유통은 27조 원이다. 화학·건설은 22조6000억 원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양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액(약 73조 원)의 약 68%(49조6000억 원)를 차지하고 있다. 식품(7조3000억 원), 관광·서비스(12조5000억 원), 금융(3조5000억 원) 등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다.
유통·화학·건설 등 주력 계열사의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이 때문에 그룹 전체적으로 수익 구조에 빨간불이 켜졌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9% 떨어진 3649억 원을 기록했다.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서 올 한 해 영업이익은 전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호남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1분기 영업이익이 2196억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비율로는 62%, 금액으로는 3265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케이피케미칼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44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1%나 감소했다. 금액으로는 1826억 원이나 줄었다. 석유화학 업종은 하반기에 더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산업은행이 발표한 ‘2012년 하반기 국내 주요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대 산업 분야 중 석유화학과 철강은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됐다.
과감한 M&A로 국내외 기업들 다수 사들였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로 뒤탈이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비상 경영 선언으로 이어진 원인으로 보인다. 그간 롯데는 적극적인 M&A로 몸집을 불려 왔다. 금융 위기를 전후해 중국의 마크로와 타임스를 인수하며 롯데마트의 덩치를 키웠고 호남석유화학은 파키스탄 석유화학 업체 타이탄을 인수하며 해외 사업을 확장했다. 국내에서도 두산주류BG·AK글로벌·바이더웨이·GS스퀘어·GS마트·CS유통·그랜드백화점 인수 등 롯데의 M&A 행보는 거침없었다. 그러나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인수한 마트들이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비상 경영을 선언한 뒤 1주일 만에 하이마트를 인수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롯데그룹은 하이마트가 매물로 나온 이후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성장세가 더딘 데다 정부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유통업의 대안으로 가전 양판업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발전상을 근거로 국내 가전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아직도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은 도쿄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고 관련 양판 체인이 번창하면서 가전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관련 시장이 성장했다. 이는 사모 펀드인 MBK파트너스가 하이마트 인수를 포기하자 즉각 하이마트 인수에 재도전한 배경 중 하나다.
신 회장이 하이마트에 매달리는 것은 자존심 회복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 회장은 한동안 회사 안팎에서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렸다. 손대는 대형 M&A마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4년 해태제과, 2005년 진로, 2006년 까르푸, 2009년 오비맥주,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 2011년 대한통운 인수 등 경쟁이 치열했던 중요 M&A마다 고배를 마셨다. 올 들어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사모 펀드 MBK에 밀려 탈락하자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후문도 들렸다. 따라서 이번 하이마트 인수는 M&A 시장에서의 명예 회복 차원이라는 것이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9.58%)·롯데칠성음료(5.83%)·롯데제과(3.21%)·롯데삼강(8.60%)·호남석유화학(13.64%) 등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 순환출자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논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확실한 성과를 통해 신격호 총괄회장과 주주들에게 신임을 얻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신 회장이 ‘돌다리도 두드리고 난 뒤 건넌다’고 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스타일의 신격호 총괄회장과 달리 공격적인 M&A로 그룹 외형을 키워 온 것이나 글로벌 경영 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하이마트 인수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한국 롯데그룹의 회장으로서 확실한 위치를 다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하이마트 인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롯데쇼핑이 가전 유통 판로를 개척해 이마트 등 경쟁 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가게 됐다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전국 하이마트 314개를 확보하면서 막강한 유통망을 일시에 갖추게 됐다. 가전 유통 시장점유율 35%로 1위인 하이마트 인수로 롯데쇼핑은 가전 유통 1위 사업자가 될 전망이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장기적으로는 롯데쇼핑의 기존 유통망과 고객 베이스를 이용해 고객층을 늘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제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는 7월 5일 “롯데쇼핑이 하이마트 지분 65.25%를 인수하기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에 따라 회사 신용 등급의 하향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인수 자금으로 쓰기 위해 우선적으로 빚을 낸다면 롯데쇼핑의 재무 안정성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 회장이 내수 및 해외시장에서 부진의 늪을 헤쳐 나와 하이마트 인수 등 공격적 M&A의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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