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급변하는데 국회·정부 딴짓만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국가 정보화와 관련한 최고 정책 심의 기구로 대통령 직속이죠. 국무총리가 공동 위원장을 맡고 행정안전부·지식경제부·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차관급 인사들이 멤버로 참여합니다. 5월 22일 열린 회의에서 보고한 내용 중에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최소 국가’를 만들겠다는 대목입니다.

보고서 내용을 훑어보다가 이 대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한 공무원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고 정보통신기술 분야만큼은 지금 ‘규제 최소 국가’를 지향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애플·구글·페이스북 등이 뜨면서 생태계가 달라진 만큼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인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손뼉을 칠 기분은 아닙니다. 그동안 정부나 국회가 어떻게 했는지 돌이켜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제가 전문 기자로 복귀해 방송통신위원회를 출입한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최시중 위원장 시절인 1년 동안은 4개 종편 채널 개국 때문에 시끄러웠고 이계철 위원장 시절로 접어든 이후에는 조용합니다. 시끄럽지 않아 좋긴 한데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재희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앉아 있다.민주통합당 문방위 의원들은 단독 개의 요구로 회의를 열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방송 장악 의혹과 방송사 파업 대책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2012.4.29/뉴스1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재희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앉아 있다.민주통합당 문방위 의원들은 단독 개의 요구로 회의를 열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방송 장악 의혹과 방송사 파업 대책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정족수 미달로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2012.4.29/뉴스1
정보기술(IT) 담당 기자인 저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국회입니다. 국회가 IT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18대 국회에서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는 문방위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입니다. 문화와 체육과 관광과 방송과 통신을 관장하는 짬뽕 위원회입니다. 짬뽕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기술이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통신과 정치권이 끝없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방송을 묶어 놓다 보니 말썽이 생깁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기술이 발달하고 생태계가 급변하는 만큼 끊임없이 법제를 바꿔줘야 합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 새로운 법안이 상정돼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18대 국회 문방위에서는 통신은 없었습니다.

문방위원들 눈에는 방송밖에 없었습니다. 18대 국회 초반에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싸고 소동을 벌인 후 방송법안만 나오면 여야가 대립하기 일쑤였습니다. 정보통신 법안은 외면하면서 표 얻고 싶어 틈만 나면 “휴대전화 요금 내려라”라고 고함쳤죠. 그 결과 법안 처리 소요 기간이 17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비해 2배 이상 길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을 쫓아다니며 “이 법안 시급하니 빨리 처리해 주세요”라고 하소연한 공무원은 없었습니다. 18대 국회 초반에 상정했는데도 끝내 처리하지 않고 폐기된 법안도 여럿이라고 들었습니다.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런 심정으로 노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정보통신 소관 부처인 방통위가 5인 상임위원 합의제라는 것도 문제죠. 기술이 초고속으로 발전하고 생태계도 초고속으로 변하는데 공무원들은 문외한인 상임위원들을 가르쳐 가며 정책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실·국장은 실권을 잃어 조직 건사하기도 힘듭니다. 실·국장은 힘이 없고 위원들은 모르고….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보고서 내용에 동의하면서도 화가 치민 이유는 또 있습니다. ‘규제 최소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면서 첨부한 6개 정책 과제를 보면 시간을 갖고 차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입니다. 당장 해치우겠다고 해도 시원찮은 판에 중·장기 검토? 그것도 대통령 임기 끝나가는 지금? 기업인들 복장 터질 노릇입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