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용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구자용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금융 전문가다. 실제로 구 센터장은 CSFB증권(현 크레디트스위스증권)과 도이치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했고 리먼브러더스와 노무라증권 등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20여 년간 외국계 증권사에서 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리서치 업무를 담당해 왔다.

구 센터장은 “펀드의 규모나 투자자의 철학 등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패턴이 모두 다르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상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역별로 구분되는 특유의 투자 방식이 있다”고 귀띔했다.
[증시 ‘큰손’ 외국인 투자자] “한국의 ‘올드 이코노미’에 관심 커”
아무래도 국내 자본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주체는 영미계 투자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외국인 투자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겠죠. 이 중 증권회사에서 투자 유치에 보다 힘을 기울이는 곳들은 단기 투자자보다 장기 투자자들입니다.

영미계 투자자들은 특히 장기 투자에 대한 마인드가 강합니다. 한 번 투자하면 적어도 1년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편입니다. 이들은 매일 매일의 주가 변동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내일 속출하는 뉴스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회사 내부의 투자 전략을 중심으로 투자한 회사의 산업 내 글로벌 경쟁력을 특히 중시하는 편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회사의 매출액 영업이익 등 숫자에 민감합니다. 이와 함께 영미계 투자자들은 투자할 때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하고 들어옵니다. 투자 절차도 굉장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오랜 검증을 거친 후 확신이 섰을 때만 들어옵니다. 대신 규모가 막대하죠.

이들은 그 어느 지역의 투자자보다 ‘금융의 판’을 보는 눈이 말 그대로 글로벌합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에요. 현대자동차에 투자한다고 치죠. 이들은 한국 내에서 현대자동차의 위상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다른 글로벌 경쟁사들, 즉 도요타자동차나 폭스바겐 대비 상대적 경쟁력을 중시합니다.

최근 현대차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가 이뤄졌던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 혹은 유럽의 자동차 회사보다 현대차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본 거죠. 사실 이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꼭 투자할 필요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투자할만한 기업이 한국에 있던 것이죠.

이 때문인지 미국의 자산운용사들은 투자를 진행할 때 섹터별로 결정하는 편입니다. 조직 구조도, 이를 테면 자동차 섹터의 최고 투자 책임자는 뉴욕에 있고 정보기술(IT) 섹터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식입니다.

외국계 투자자의 양대 축은 영미계 투자자와 함께 서유럽계 투자자들이 아닐까 합니다.

서유럽계 투자자는 크게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큰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최근 들어 영향력이 빠르게 줄었습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남유럽 재정 위기 때문입니다. 투자 여력이 없는 것이죠.

이 때문에 현재는 독일과 프랑스가 투자를 이끈다고 보면 됩니다. 펀드의 규모도 양국과 비슷한 상태이고요. 다만 독일의 펀드들이 한국 시장 혹은 아시아 시장에 더 관심이 많은 느낌입니다. 금융 위기 후 프랑스의 펀드들은 예전보다 투자자가 줄어든 편이고요.

이와 함께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도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대형 펀드들이 이곳에 많이 있습니다.

서유럽의 투자자들이 영미계 투자자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서유럽계 펀드들은 영미계에 비해 펀드의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투자할 때도 영미계에 비해 많은 금액을 하지 않는 편이고요. 영미계 투자자들이 한 번에 1000만 달러, 2000만 달러를 투자한다면 서유럽계 펀드들은 100만 달러, 200만 달러 수준의 투자를 진행합니다.

이와 함께 유럽의 펀드매니저는 특히 개별 기업의 가치보다 ‘매크로’, 즉 경제 전반의 흐름을 중시합니다. 실제로 서유럽계 펀드매니저는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보다 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를 만나 시황을 읽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반대로 영미계 펀드매니저는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투자 정보를 듣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아시아 쪽 펀드매니저도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를 더 반기는 편이고요.

좀 거칠게 일반화하면 영미계 및 아시아의 펀드매니저는 바텀 업 투자에 강하고 유럽계 펀드매니저는 톱 다운 투자에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시 ‘큰손’ 외국인 투자자] “한국의 ‘올드 이코노미’에 관심 커”
국내 투자자 중 일부는 서유럽계 투자 자금에 대해 ‘치고 빠지기’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즉 적게 벌더라도 약간의 수익이 나면 대규모로 주식을 바로 팔고 떠나 시장에 혼란을 주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이야기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네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일부 외국계 증권사의 창구로 들어오는 특정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검은 머리 외국인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서유럽계 펀드가 영미계 펀드에 비해 의사결정의 속도가 분명 빠르다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덩치가 작으니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은 맞을 겁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저 역시 걱정거리가 있긴 합니다. 현재 재정 위기 등으로 유럽 지역에서 돈을 풀어 유동성이 넘쳐나는 상태입니다. 이 유동성이 단기적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겁니다. 한국에서는 환차익도 얻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되겠죠. 문제는 유럽 국가들의 위기가 다시 한 번 재발하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여러 지역에 투자됐던 유동성이 일거에 회수될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분명 금융 위기의 여파가 실물로 전이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한국 증시에서는 아시아계 투자자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아시아 투자자의 자금 규모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들에 영미계 및 서유럽계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글로벌 펀드의 운용 방식을 따져본다면 아시아계 투자자의 기반이 되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한국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글로벌 펀드는 ‘따로 또 같이’ 형태로 운용됩니다. 먼저 같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더라도 지역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용됩니다. 이를테면 같은 피델리티라고 하더라도 홍콩에서 운용되는 펀드가 있을 테고 미국에서 운용되는 펀드들이 있겠지요. 이들은 약간 다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섹터별로 나눠 투자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같은 브랜드를 가진 만큼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때 이들이 함께 투자합니다. 이때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있는 펀드들은 글로벌 펀드의 아시아 지역 투자를 결정하는 일종의 ‘전진기지’가 되는 형식입니다.

또 아시아의 펀드라고 하더라도 자금원이 단지 아시아 지역 내의 자금이 아니라 영미권이나 서유럽권이 베이스가 되는 곳도 많습니다. 대우증권은 물론 국내 증권사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적극 공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 외에 또 어느 지역이 중요한가요.

대부분의 주요 펀드들은 홍콩과 싱가포르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대만의 ‘테크펀드’처럼 특정 섹터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한때 호주도 영향력이 강력했습니다. 지금은 예전만 못한 상황이고요. 일본의 펀드들은 한국 시장에 영향이 낮은 편입니다. 말레이시아도 오일 달러를 기반으로 최근 들어 영향력이 커진 편입니다.

아시아 기반 펀드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아시아 기반의 펀드들은 국내 사정에 더 밝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래도 시간대가 같으니까 실시간으로 한국의 정보들을 캐치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규모가 작고 정보가 많으니 의사결정도 빠른 편이고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펀드에는 한국의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들이 많이 근무합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이 감원하면서 한국인 직원들이 많이 떠났는데요, 최근에는 다시 한국인 금융 전문가들이 부쩍 늘어난 편입니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투자회사에는 아직 한국인들이 직접 진출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시아 쪽의 펀드는 투자 담당이 국가별로 분리돼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한국 담당, 중국 담당 이런 식이에요. 주로 섹터별로 분리된 영미계와는 좀 다른 형태죠. 아시아의 투자자들이 이런 조직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다른 곳보다 주로 아시아 지역에 투자를 진행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증시 ‘큰손’ 외국인 투자자] “한국의 ‘올드 이코노미’에 관심 커”
지금 세계경제의 화두는 아무래도 중국입니다. 중국 투자자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사실 5년 전만 하더라도 중국 투자자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중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았고요. 우리 역시 중국의 투자자들에게 큰 관심을 둘 여력이 되지 않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져 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이미 중국의 펀드매니저들과 관계를 쌓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한경비즈니스의 ‘베스트 애널리스트’ 조사처럼 각국의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세계의 애널리스트를 평가하는 ‘폴(Poll)’이 꽤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조사에 중국의 펀드매니저들을 반드시 참여시킵니다.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조사는 신뢰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국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입니다. 우리 역시 앞으로도 중국의 펀드들은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고 당연히 이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자금 운용 방식이 다른 만큼 펀드매니저도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 따르면 아시아의 펀드매니저가 가장 젊은 편입니다. 미국이나 서유럽의 펀드매니저들은 훨씬 더 연령대가 높습니다. 미국은 60대의 펀드매니저도 많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미국의 펀드매니저는 앉자마자 비즈니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시간은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포인트에 직접 접근하는 편입니다. 반면 서유럽이나 아시아는 문제에 직접 접근하기보다 먼저 커피 한잔 마시며 에둘러 접근하는 편이고요.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어떤 산업에 관심이 많은가요.

잘 알려져 있듯이 자동차와 조선 업종입니다. 글로벌 시황이 좋지 않지만 건설과 철강 업종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시하는 업종입니다. 이른바 올드 이코노미 종목들입니다. 이와 함께 당연히 IT 업종에도 관심을 갖고요. 즉 한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업종들입니다.

반면 금융 쪽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한국의 금융에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아마도 금융 업종은 ‘정책 변수’가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외국인 투자자는 시장 자체를 놓고 볼 때 한국 시장보다 중국 시장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을 포함한 지역 경제의 일환으로 연결해 보는 시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또한 중국의 성과와 연결될 수 있는 섹터 그리고 그 섹터 내 기업이 더 주목받겠죠. 이 때문에 한국의 산업군 중에서 다른 국가 혹은 지역의 산업군에 비해 확실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는 곳에 주목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